지난해 환율 불안이 고조되면서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통화 파생상품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최근 급격한 원화 약세로 환 헤지를 선택한 기업의 파생상품 손실이 발생하자 향후 환 헤지 전략을 놓고 기업과 투자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파생상품 거래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통화 관련 파생상품 거래액은 1경 5702조 원으로 2023년 3분기(1경 4679조 원) 대비 7.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 관련 파생상품은 통화선도, 통화선물, 통화스와프 등으로 구성된다.
통화 파생상품 대부분을 차지하는 통화선도 계약 규모는 1경 2985조 원에서 1경 3656조 원으로 5% 늘었다. 통화선도는 환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미리 정한 가격으로 미래 시점에 특정 통화를 매매하기로 한 계약으로 대표적인 환 헤지 수단으로 꼽힌다. 통화선물 계약도 746조 원에서 1142조 원으로 52%나 급증했다.
거래 주체별로 살펴보면 은행의 통화 파생상품 계약은 1경 2371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 늘었고, 증권은 2212억 원으로 21.8% 증가했다. 은행·증권사의 파생상품 거래 상대방 80%가 외국 금융회사, 외국 은행의 국내지점, 국내 은행인 만큼 기업들의 환 헤지 수요에 대응해 통화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주요국 통화정책과 지정학적 위험 등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위험을 피하려는 헤지 수요도 커진 결과다.
문제는 지난해 4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예상치 못한 수준까지 높아지면서 환 헤지에 나선 기업에 파생상품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1300원 수준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4월 이후 1340원대로 높아지더니 지난달 1472.3원까지 급등한 바 있다.
이에 LIG넥스원은 지난달 31일 통화 선도거래 등으로 704억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LIG넥스원은 “환율 변동위험을 회피하고자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했으나 환율 급등으로 손실이 발생했다”고 했다. 코스피 상장사 신일전기는 통화 선도거래로 64억 원, 코스닥 상장사 동아엘텍은 통화 선물계약으로 337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급격한 원화 약세로 환 헤지 전략에 오히려 발목을 잡힌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환율 예측이 어려워진 만큼 환 헤지와 환 노출 전략을 놓고 기업이나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내 경제 부진과 금리 인하로 인한 한미 금리 차 확대가 원화 약세로 이어진다면 환 노출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길게는 원·달러 환율이 현 수준보다 더 오를 여지보다 내려갈 가능성이 큰 만큼 장기 투자를 목표로 한다면 환 헤지 전략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미국 주식이 10% 올라도 원·달러 환율이 10% 떨어지면 세금이나 거래비용 등을 감안했을 때 손실이 발생한다”며 “단기적으로는 환 노출 전략을 선택하되 장기적으로는 환 헤지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