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 남편의 꿈 [국경복의 드림 톡]

국경복 꿈 연구가(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1977년 신경생리학자 앨런 홉슨은 맥컬리(McCarley)와 함께 한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꿈을 꾸는 렘(REM) 수면은 원시뇌인 뇌간(brain stem)에서 시작하는 무작위적인 신경의 활성화(activation)를 바탕으로 꿈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꿈의 주된 동기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리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는 꿈을 무의식적 소망의 표현으로 보았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신경생물학적 이론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아내인 리아의 부정을 의심하는 꿈을 꾼다. “리아와 내가 유럽을 여행 중인데, 우리는 아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리를 건너고 있다. 높은 아치형 중세 건너편에 있는 작은 마을을 향해 아주 작은 강을 미끄러지듯 간다. 배가 강기슭에 다다르자 이미 서로를 찾아내기가 어려워진다. 리아가 힐끗힐끗 보인다. 그녀가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남자다. 우리가 배에서 내리기 전 아니면 직후에 그녀가 나의 드릴 촉을 그 남자에게 주는, 또는 팔아버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 드릴 촉은 내가 버몬트주에서 나무에 구멍을 내기 위해 커다란 손잡이가 달린 드릴에 꽂아서 사용하던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고 속이 좀 상했다. 또한 그 남자가 메고 있는 숄더백에 그 드릴 촉을 사용해서 완벽한 구멍을 낸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 숄더백은 내 것과 아주 비슷한 것이다.”


꿈은 이어진다. “리아는 그 드릴 촉을 팔고 받은 돈을 나에게 주겠다고 해명한다. 내가 가장 아끼는 공구 중 하나를 나에게 묻지도 않고 낯선 사람에게 넘겼다는 사실이 여전히 뜻밖이다. 나는 아주 불안하고 짜증이 난다. 뭍에 다다르자 여관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여러 차례 서로 헤어진다. 같이 헤메는 어느 한때 그녀는 나에게 자기만의 비밀스런 삶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힌다. 내가 그 남자에 대해서 묻자 그녀는 자신이 원하면 자유롭게 그 남자와 연인관계가 될 뜻이 있음을 명백히 한다. 나는 매우 당황스럽고 불안해서 내 걱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마침내 그 여관 같아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또다시 그녀를 찾기 힘든 이상한 상황이 된다. 그러다가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 그녀가 있는 게 보인다. 그녀는 무언가 음식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나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나 알팍한 핑계이기 때문이다. 요리가 언제 끝날지를 물어보자 그녀는 시계를 보더니 45분이라고 답한다. 나는 그녀가 어느 낯선 남자를 선택하든 간에 45분이면 그와 사랑을 나누는 데 충분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럼 그렇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꿈은 홉슨이 뇌졸중을 앓고 있던 60대 후반에 꾼 꿈이다. 병든 홉슨이 40대 초반으로 젊은 아내와 살면서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뇌졸중이 발병한지 38일 지나서 이 꿈을 꾸었다.


홉슨은 이 꿈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이 꿈은 바로 나의 장애로 인해 리아와 계속 함께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나 자신의 두려움이다. 깨여 있는 동안에는 이 두려움의 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꿈 속에서는 리아가 다른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녀가 남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 자신이 분명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꿈속에서는 나의 두려움과 과거 나의 외도의 내력이 합세해서 그녀를 결혼이라는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갈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홉슨은 렘 수면 상태에서 이 꿈을 꾼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꿈 속에서 질투했던 낮선 남자는 정체불명에다가 행동도 이상하고, 드릴 촉과 내 숄더 백에 난 구멍은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해야만 말이되고’, 호텔에서 내 아내가 요리를 한다는 것도 그럴듯하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은 하나로 묶는 일관적이고 강력한 정서가 이 꿈에 명백한 의미를 부여한다. 즉,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동반자이자 강력한 지지자인 내 아내를 잃을까 봐 걱정을 하는 것이다.”


홉슨의 말대로 이 꿈은 심리몽으로 젊음과 건강을 상실한 홉슨의 두려움이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해야 말이 된다’는 의미는 드릴촉은 남성성, 백에난 구멍은 여성성을 상징한다는 뜻이다.


2005년에 발간한 홉슨은 자신의 저서 『프로이트가 꾸지 못한 13가지 꿈』의 서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꿈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열쇠라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믿음은 올바른 것이었다. 또한 과학적 심리학은 뇌에 토대를 둘 필요가 있다는 그이 가정도 올바른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토대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가 마음의 과학에 기여한 바는 좋게 말하면 진부하고 나쁘게 말하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홉슨은 프로이트의 꿈 해석에 대한 관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신경생리학적 측면에서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철회하지는 않았다. 꿈에 대한 신경생리학적인 홉슨의 견해는 또다른 신경생리학자에 의해서 크게 논박을 당했다. 그의 이름은 마크 솜스(Mark Solm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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