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1년, 대통령의 경청·통합 행보 절실한 시점"

◆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민주적 위기 벗었지만 여전히 불안정
정치권 충돌, 성장 잠재력 갉아먹어
여권, 사법부 압박 등 극단 상황 지속
대통령 국민통합 적극적 역할 필요
미래전략원장직 맡은 것도 계엄 영향
대학 싱크탱크로 소신껏 목소리 낼것

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이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국가 주요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한국은 민주적인 위기에서 막 벗어났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분열과 갈등이 심화될수록 민주주의가 위협받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고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중요한 과제죠.”


강원택(64)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정치외교학부 교수)은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은 지금 정치가 성장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면서 “국민 통합을 위한 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정치 시스템을 오랜 기간 연구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학자인 강 원장은 올 2월부터 서울대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전략원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후 한국 사회는 현대사의 질곡을 떠올리게 하는 격변을 겪었지만 계엄 직전 극단으로 치달았던 정치권의 대치는 여전하다. 이에 대해 강 원장은 “계엄이라는 정치적 위기 상황은 국회에서의 빠른 해지 결의와 탄핵 절차를 거쳐서 해결됐다”면서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보수 진영은) 정치적인 책임도 지게 됐지만 극단적인 충돌까지 이어지게 만든 정치적 양극화나 정파 간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국가 주요 권력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도 45년 만에 계엄을 경험한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과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원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하는 등 ‘사법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강 원장은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인데 정부와 국회가 사법부를 압박하는 일 또한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시민사회에서도 온건하고 합리적인 중도층은 말하지 않고 극단적인 성향의 사람들만 정당을 압박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강 원장이 서울대 총장 직속 기관으로 2021년 말 출범한 국가미래전략원의 3대 원장직을 맡게 된 데도 계엄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계엄 직후인) 지난해 말 총장님이 한 번 저를 만나자고 하시면서 원장직을 맡아달라고 하시더군요. 지금처럼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 속에서 서울대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원래 따로 보직을 맡지 않아 왔지만 그 말에 원장직을 수락하게 됐어요.”



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이 대학 싱크탱크로서 국가미래전략원의 발전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국가미래전략원은 특정 연구 분야가 아닌 종합적인 시각으로 국가의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국가정책포럼’과 ‘국가전략위원회’를 거쳐 2021년 12월 정식 출범했다. 산하에는 민주주의, 경제안보, 인구, 탄소 중립, 지역 균형 성장, 과학과 기술의 미래, 글로벌 한국 등 7개 클러스터가 있어 각 분야별로 특화된 전문가가 모여 관련 연구를 수행한다.


롤모델은 대표적인 대학 싱크탱크로 꼽히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후버연구소다. 후버연구소는 1919년 미 대통령을 지낸 허버트 후버의 이름을 따 제1차 세계대전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후 200명에 달하는 연구진이 정책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미국의 주요 정책을 만드는 싱크탱크로 거듭났다. 강 원장은 “대학의 싱크탱크가 가진 장점은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소신껏 국가에 필요한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라며 “우리 사회가 서울대에 거는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 각 영역의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중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구상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후버연구소처럼 독자적인 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국가미래전략원의 목표다. 그는 “지금은 대학본부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별도의 재원이 확보된다면 더 독립적인 형태의 연구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미래전략원은 극심해진 사회의 분열상을 극복하고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올 4월 현행 헌법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고 개헌의 필요성을 진단한 데 이어 이날 ‘비상계엄 사태 1년-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하다’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내년 초에는 국민 통합 방안을 논의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강 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인종·종교 등 구조적 요인이 분열을 초래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감정적인 요소가 양극화를 불러온다”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합의를 도출하려는 대통령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라고 국민 통합을 위한 대통령의 역할을 거듭 주문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