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기준 우리나라 다문화 가구는 약 43만 9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약 2%를 차지한다. 수치만 보면 아직 적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중 70% 이상이 결혼 이민자 여성을 포함한 가구라는 점은 이들이 이미 한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임을 보여준다.
결혼 이민자 여성들은 다양한 문화적·언어적 배경을 지닌 채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며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지만 출발선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언어 장벽과 사회적 고립, 제도와 정보에 대한 접근성 부족은 일상을 제약하며 이러한 취약성은 특히 보건의료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필리핀 출신 결혼 이민자 여성 A 씨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임신 후 병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의료진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검사와 치료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증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진료를 받으면서 불안감이 커졌고, 병원 방문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경험은 결혼 이민자 여성들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2008년 시행된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따라 정부는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해왔다. 법과 제도상으로는 다문화가정이 보호 대상이지만 제도의 존재가 곧 접근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언어와 정보의 장벽, 사회적 관계망의 부족은 정책 이용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제도는 있지만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이 다문화가정 보건의료 문제의 핵심이다.
이 격차는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전체 국민의 일반 건강검진 수검률은 약 75.9%였으나 결혼 이민자 여성이 최근 2년 내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2.2%에 그쳤다. 표본조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건강검진 접근성의 차이는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격차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2022년 다문화가정 영유아의 건강검진 평균 수검률은 60.5%로 내국인 가정(81.6%)보다 크게 낮았다. 반면 2021년 기준 정밀 검사나 추가 평가가 필요하다는 권고 비율 또한 다문화가정 영유아가 더 높았다. 이는 예방적 의료 서비스 이용은 적은 반면 실제 건강 위험은 더 클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문제를 개인의 적응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을 왜곡한다. 캐나다·영국·독일 등 주요 이민 수용국들은 이러한 문제를 개인이 아닌 의료 시스템과 서비스 설계의 문제로 인식해왔다. 이들 국가는 임신·출산, 산후 관리, 영유아 건강관리, 예방접종과 정기 검진 등 예방적이고 포괄적인 의료 접근을 이민자 여성에게 적극 제공했고 그 결과 건강 격차가 완화되고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이 향상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의료 행위 자체만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료 통역사 배치, 문화중개인 활용, 다언어 정보 제공, 지역사회 연계 등 비의료적 지원을 보건의료 체계의 핵심 요소로 포함시켰다. 이는 정보 격차를 줄이고 신뢰를 형성하며 문화적 이해를 높이는 기반이 됐다.
이러한 접근은 의료 접근성을 비용이나 시설의 문제가 아닌 정보와 이해, 신뢰, 그리고 문화적 안전성의 문제로 바라본다. 문화적 안전성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차별이나 배제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환자의 언어와 문화적 배경 차이를 의료의 장애물이 아닌 고려해야 할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건강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다. 특히 임신과 출산, 영유아기의 건강은 평생의 건강을 좌우한다. 다문화가정 출생아가 이미 전체 출생의 5~6%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이들의 건강은 곧 한국 사회의 미래와 직결된다.
다문화가정의 건강 문제를 여전히 소수집단의 특수한 어려움으로 치부한다면 이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의 언어 지원 체계 강화, 예방 중심의 보건의료 접근성 확대, 문화적 이해를 갖춘 서비스 제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제 다문화가정의 건강 문제를 공공의 문제로 명확히 인식하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현장 변화를 통해 답해야 할 때다. 건강 격차를 외면한 사회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