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나에게 졌다'는 느낌이 들어 속상한데 내년은 저 스스로를 이길 수 있는 한 해를 만들고 싶어요.”
한국 여자 골프의 살아 있는 ‘전설’ 신지애(37)는 20번째 시즌이었던 올해 3월 개막전 다이킨 오키드 레이디스 토너먼트에서 준우승하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통산 상금 1위에 올랐다. 5월 메이저 대회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살롱파스컵에서는 통산 29승의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한 해를 보낸 것.
하지만 10일 서울 강남구의 의류 후원사 매드캐토스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만난 신지애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올 시즌에 대해 “1승을 일찍 이룬 덕분에 편하게 갈 수도 있었는데 힘든 한 해였다. 여름에 힘들다가 가을에 마무리할 때쯤 벗어나는 느낌이 들어서 막판에 우승하며 끝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동계 훈련부터 살롱파스컵 하나만 바라보면 준비했는데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니 자만심이 생긴 것 같다. 과정을 놓치고 결과만 바라보며 결과만을 위한 훈련을 하고 있더라”면서 “(10월) 일본여자오픈쯤에서야 그런 것이 느껴지고 경기의 흐름이 보이면서 안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신지애는 5월 우승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다 9월 메이저 대회 소니 JLPGA 챔피언십 공동 10위를 시작으로 10월 일본여자오픈까지 3개 대회 연속 톱10에 들었다. 11월 토토 저팬 클래식과 투어 챔피언십 리코 컵에서는 우승 경쟁을 벌인 끝에 공동 6위, 공동 3위에 오르며 최고의 시즌 마무리를 선보였다.
올해 투어 통산 29승이자 프로 통산 67승(아마추어 1승 포함)을 쌓은 신지애는 내년 목표로 우선 ‘1승’을 꼽았다. 그는 “1승을 빨리하고 더 많은 우승을 만들어내고 싶다.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는 1승을 이루고 나면 부담감도 적어질 것 같고 안정적으로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생으로 며칠 뒤면 서른 여덟이 되는 신지애는 은퇴 시점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여자 골프 황금기를 이끌었던 동갑내기 친구들 박인비, 최나연, 이보미, 김하늘 등이 은퇴를 결정했거나 투어를 떠나 있지만 자신은 현역 생활을 끝낼 마음이 없다는 것. 그는 “은퇴하는 친구들이 늘면서 저도 은퇴에 대한 그림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직은 생기지 않고 있다”며 “현역으로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상황을 좋아하는 중이다. 그런 열정이 있으니 조금 더 현역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배들에게 힘 있는 목소리를 내려면 계속 현역 선수로 있어야 하고 또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지애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대거 진출하게 된 후배 선수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초반에는 정신이 없어서 오히려 어려움이 덜할 것”이라며 “시즌 중반을 넘어가면서 어려움이 분명 생길 것이다. 오롯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낯선 곳에서 무조건 달리기만 하면 힘들고 달릴 때와 쉴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지애는 12일 절친한 후배 유소연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뒤 일본을 거쳐 다음 달 초 호주 멜버른으로 이동해 한 달 간의 동계 훈련을 시작한다. 신지애 특유의 ‘혹독’한 훈련 방식이 입소문이 나며 한국과 일본의 후배 선수들도 그와 함께 한다. 그는 “호주에서 동계 훈련을 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해가 길어서 오후 9시까지도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일본 투어가 보통 3월 첫 주쯤 시작하니 거기 맞춰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