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에 가혹했던 트럼프 1년, 내년은 더 집요해진다[이태규의 워싱턴 인사이드]

내년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
경합주에 무리한 투자 종용 가능성
美빅테크 요구 반영해
韓 디지털규제도 압박 가할 듯
美 막연한 선의 기대하는 시대 끝
무리한 요구 대비 시나리오별 전략을

대럴 아이사 미 하원의원(공화·캘리포니아)이 16일(현지 시간) 워싱턴DC 연방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한국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의 과거 칼럼 부분을 발췌한 팻말을 비치한 채 발언하고 있다. 미 하원 법사위 반독점소위 유튜브 캡처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직후 주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전임 (조 바이든) 정부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동맹국 당국자에게 밥을 사며 테이블 밑으로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은근슬쩍 내밀었다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노골적으로 돈을 내놓으라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1년은 힘을 앞세운 미국이 유독 동맹국에 가혹했던 한 해로 요약할 수 있다.


올 7월 말 한미가 구두로 관세 협상에 합의했을 당시 우리 정부의 설명은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금 중 대부분이 대출과 보증으로 이뤄지고 현금 투자는 5% 미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선불(up front)”이 아니면 안 된다며 한국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지난달 발표된 한미 ‘공동 설명 자료(조인트 팩트시트)’, 투자 양해각서(MOU)에서 우리의 현금 투자액은 2000억 달러로 급격히 불어났다. 또 투자처 역시 양국이 사전에 합의해 결정하기로 했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거부한다면? 미국의 관세 보복이 뒤따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이는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압박’이 내년에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그 근거로 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꼽는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2기 집권 후 최저인 30%대이며, 생활비 부담이 높아지면서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1기와 2기 통틀어 최저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다수당 지위를 놓칠 경우 국정 동력이 급속히 약화하면서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중간선거 필승 전략을 짤 것이다.


그리고 그 불똥은 한국으로 튈 수 있다. 올해는 한국 등 동맹에 대미 투자금 총액을 설정하는 데 집중했다면 내년에는 구체적인 투자처 선정을 놓고 집요하게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 결과 접전이 벌어지는 경합주에 상업성이 없는 공장을 세우겠다고 공약하고, 한국에 이에 대한 투자금을 대라고 강요하는 방식 또한 불가능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운동에 나서 ‘내가 관세로 한국을 압박해 지역 경제를 살렸다’며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뿐만이 아니다. 막대한 선거 후원금을 대는 미국 빅테크의 이익을 대변해 한국 디지털 규제에 대한 압박 수위 역시 높아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미 행정부, 공화당 의원들은 구글과 페이스북, X(옛 트위터)에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매기는 유럽연합(EU)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EU식 디지털 규제가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은 EU식 규제를 도입하려는 한국을 첫 타자로 삼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이달 16일 하원 반독점소위 청문회에서 대럴 아이사 미 하원의원(공화·캘리포니아)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의 교수 시절 한글로 된 칼럼을 영어로 번역해 패널로 만들어 들고 나오는 등 미 의회는 한국의 규제 움직임을 매우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도 소식통을 인용해 이달 18일 개최 예정이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가 한국의 디지털 관련 규제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내년 초로 연기됐다고 보도하는 등 압박 수위가 높아질 조짐도 뚜렷하다.


민주당 정부의 집권으로 우려됐던 한미 관계의 이상기류는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팩트시트 도출 등으로 큰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내년에는 더 큰 파도가 덮칠 수 있다.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지 시나리오별 대응 태세를 준비하고, 최악의 경우 관세가 다시 올라갈 때를 대비한 계획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동맹의 사정을 들어주며 막연한 선의를 베푸는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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