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다음 달로 예상되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의제로 다룰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부에서 이미 CPTPP 가입 추진을 공식화한 가운데 그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직접적인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다음 달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면 CPTPP 가입 논의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일본·호주·캐나다·싱가포르 등 12개 회원국이 상호 시장 개방을 목적으로 체결한 무역협정이다. 사실상 일본이 주도하는 협정인 만큼 다음 달 중순께 일본에서 열릴 가능성이 있는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회담에서 한국의 가입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CPTPP를 어느 나라가 주도하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현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CPTPP 가입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고 어느 정도 진척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교 당국은 이미 우리 정부의 CPTPP 가입 추진을 공식화한 상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9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에게 “우리 경제의 영토를 넓히기 위한 CPTPP 가입을 추진하고 일본과도 경제협력을 심화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15일 국회 ‘선진 외교를 위한 초당적 포럼’ 조찬 간담회에 참석해 “(변화하는 세계 무역질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CPTPP 가입을 이제는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CPTPP가 한일 간 새로운 무역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게 위 실장의 판단이다.
이처럼 정부에서 CPTPP 가입을 꾸준히 거론하고 나선 데는 이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급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개된 10월 21일 국무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외교·안보·보훈 전략 집중 토의 중 이 대통령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보다는 한중일 FTA, 한중일 FTA보다는 CPTPP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지금까지 미국·중국 등 주요 국가 위주로 관계를 이어왔다면 이제는 수출시장도 다변화해야 하고 시장 개척도 정부 차원에서 많이 나서야 한다”며 “경제·안보 분야를 최대한 다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조 장관이 “CPTPP와 한중일 FTA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하자 이 대통령이 콕 집어 “CPTPP로 접근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외교부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CPTPP 가입을 위한 준비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에도 불확실성은 트럼프 행정부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수출시장 다변화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한국이 CPTPP에 가입할 경우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회원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일 정상회담과 별개로 외교부 차원에서의 CPTPP 가입을 위한 준비를 이어오고 있다”면서 “CPTPP 가입 추진이라는 방향성 아래에서 우리의 전략적·경제적 차원의 실익을 관계 부처와 협의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농가를 비롯한 CPTPP 가입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산업계의 반발이다. 호주·뉴질랜드 등 농축산물 강국이 회원국으로 있다 보니 농수산물 시장 개방이 확대될 경우 국내 시장이 입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간 CPTPP 가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해오던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외교부 업무보고에서 조 장관에게 “CPTPP가 당장 진행될 것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며 “한일 경제 문화 교류를 높이는 데 FTA나 CPTPP 말고 다른 프로젝트를 고민해서 따로 논의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