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등 야생동물 포획 과정에서 사람을 동물로 오인하는 총기 사고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유해 동물 퇴치를 위해 수렵에 나서는 엽사들이 늘고 있지만 선발이나 관리 체계는 여전히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멧돼지의 활동이 활발한 겨울철에는 사고 위험이 더욱 큰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유해 야생동물 퇴치 중 발생한 총기 사고 사상자는 24명으로 이 중 사망자는 11명에 달했다. 2022년 6건, 2023년 5건, 2024년 7건 등 매년 5건 안팎의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11월에는 전남 여수시에서 멧돼지를 포획하던 엽사가 동료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총을 쏜 A 씨는 “어두워서 사람을 멧돼지로 착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여수경찰서는 A 씨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과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유해동물포획단’을 운영하고 있다. 포획단은 수렵면허를 보유한 엽사들로 구성돼 주로 야산에서 멧돼지나 고라니를 수렵하는 역할을 맡는다. 최근에는 멧돼지 출몰 빈도가 증가하고 있어 포획단의 규모도 확대되는 추세다. 소방청에 따르면 멧돼지 출몰로 인한 112 출동 건수는 2022년 567건에서 지난해 1623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
현장에서는 오인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엽사 간 전문성 편차’를 꼽는다. 환경부가 2019년 포상금제를 도입한 후 신규 엽사 수가 늘면서 숙련도 격차도 커졌다는 것이다. 정부는 멧돼지 포획 시 크기에 따라 마리당 20만~3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박복규 전국수렵인참여연대 부회장은 “엽사들 사이에서는 ‘산에 수표가 돌아다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며 “포획단 선발 시 대부분 5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거나 ‘장롱면허’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인적이 드문 야간 시간대에 포획이 이뤄지지만 보호장구와 열화상카메라 착용이 의무 사항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된다. 엽사에게 지급되는 장비의 성능 또한 지자체별로 천차만별이다. 50년간 서울에서 엽사로 활동한 김 모(72) 씨는 “오래된 열화상카메라로는 사물이 단순한 빨간 점으로 보여 사람인지 동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며 “조급해진 엽사들이 일단 쏘고 보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총기 사고 안전교육 강화 △포획 실적 우수 엽사 선발 △산간 지역 경고판 부착 등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엽사의 발광 밴드 착용을 권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의무가 아닌 권고 수준에 그쳐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 부회장은 “이론 위주의 안전교육에서 벗어나 이동 표적 사격 능력을 기르는 훈련을 강화하고 이를 수렵면허 발급과 갱신에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야간 포획은 위험성이 큰 만큼 보호장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장비 성능도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