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창] 미국과 중국, 전쟁에서 경쟁으로

■남동준 텍톤투자자문 대표이사

남동준 텍톤투자자문 대표이사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달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향후 4년간 미국의 정치·경제·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다. 이 문서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이 설정한 핵심 이익과 정책 우선순위가 담겨 있어 글로벌 질서와 국제 시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7월 6일 단행된 대중국 보복관세는 2017년 12월 발표된 트럼프 1기 국가안보전략을 토대로 추진된 정책이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정부와 달리 중국을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파트너로 보지 않았다.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자이자 적대적 체제, 수정주의 국가로 규정했다. 무역적자와 기술 유출 역시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국가안보 위협으로 격상시켰다. ‘경제 안보가 곧 국가 안보’라는 기조는 이후 고율 관세 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로 작동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미·중 관계는 신냉전, 패권 경쟁, 지정학적 위기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 이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접근 방식과 명칭만 달랐을 뿐 대중국 강경 기조를 오히려 강화했다. 수출통제는 무역을 넘어 첨단 기술 제한으로 확대됐고 갈등은 이념과 체제 경쟁으로까지 확산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번에 발표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적잖은 놀라움을 준다. 취임 직후 200%가 넘는 보복관세로 갈등 수위를 끌어올렸던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전략은 분명한 완화 신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국을 이념이나 체제 차원의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중국을 경제적·지역적 파트너로 재정의했다. 체제는 다르지만 국익이 맞닿는 영역에서는 경제·산업·기술 분야의 협력 가능성을 확대하겠다는 메시지다. 경쟁은 유지하되 사안별 협력을 병행하겠다는 전략적 전환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틱톡을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에서도 확인된다. 2020년 틱톡 매각을 강하게 압박했던 미국은 트럼프 2기 들어 협상 채널을 통해 합작법인 설립이라는 절충안을 도출했다. 이달 초 매각 계약이 공식 발표되면서 갈등은 관리 국면으로 전환됐다. 이는 기술 패권 갈등이 완화됐다기보다 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실용적 접근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미·중 관계는 전면적 대결보다는 경쟁과 협력이 병존하는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희토류, 첨단 반도체, 농산물 분야의 후속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2018년 이후 글로벌 시장을 압도해온 미·중 갈등이 전쟁 수준에서 경쟁 관리 국면으로 제한된다면 시장 전망의 가시성은 높아질 수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력이 줄어들 경우 투자 환경은 보다 예측 가능해진다. 이 변화는 내년 주식시장의 핵심 테마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그 전환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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