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새해에도 ‘따뜻한 참견’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


질문은 더 나은 세상의 문을 여는 ‘노크’다. 좋은 질문은 문제인지도 몰랐던 문제에 눈뜨게 해주고 훌륭한 질문은 해답 너머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런 까닭에 질문의 계절인 서울시의회의 겨울은 여름만큼 뜨겁다. 한 해의 서울 살림 전반을 점검하는 ‘행정사무감사’부터 62조 원이 넘는 예산의 적재적소 쓸모를 찾아주는 ‘예산 심사’까지 111명의 서울시의원은 두 달간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며 발전하는 서울의 새 판을 마련했다.


필자 역시 이 지면을 빌려 질문을 건넸다. 가사 돌봄 노동의 경력과 발밑 안전, 청년안심주택의 안심, 안전을 지키는 시민의 안전을 물었다. 종묘와 세운의 ‘갈등’을 ‘공존’으로, ‘집값 안정’을 ‘내 집 마련의 꿈’으로 ‘지방자치’를 ‘더 오래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로 질문의 초점을 바꿔 새 답을 모색해 왔다.


이유는 하나였다. 당연하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들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자는 당연한 것들에는 누구도 감사하지 않기에, 감사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당연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관성처럼 버티고 선 풍경을 다르게 보고 질문해야만 한다.


마지막 질문은 축복의 빛이 흘러넘치는 세밑의 거리, 화려한 빛에 가려져 외로움의 그림자가 더 짙어지는 도시를 향한다. 프랑스의 정치 철학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말했다. ‘사막에서의 고독이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느끼는 고독보다 덜 가혹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서울은 가혹할 만큼 ‘외로운 도시’다.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밀도는 높지만 1인 가구 비율은 40%에 육박할 정도로 관계와 연결은 약하다. 정부가 올해 첫 실시한 ‘외로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시민 셋 중 한 명은 외로움을 호소했다.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거나 교류할 사람이 전혀 없다’는 시민도 5.8%나 됐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24시간 외로움 상담 전화 ‘외로움안녕120’에도 올해만 3만여 건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초 목표치의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가을 필자는 그 상담 현장을 방문해 외로움의 실체와 마주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기쁨을 나눌 이가 없는 청년의 아픔도, 생계와 돌봄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중년의 애환도, 직장에서 물러나면서 연락할 이들이 사라져 버린 어르신의 쓸쓸함도 이 도시가 품어야 하는 외로움의 모양이었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말해줬다. 외로움을 방치할 때 삶은 고립으로 향하지만, 외로움에 사회적 시선이 닿는 순간 그 삶은 고립에서 한 걸음 멀어진다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외로움을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넓히는 일이라고 했다.


도시는 결국 어디에 투자하느냐로 마음을 드러낸다. 서울시는 ‘외없서(외로움없는서울) 시즌2’로 연결의 공간과 기회를 더 넓히겠다고 발표했고, 서울시의회는 외로운 이들이 머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립 예방 사업 예산을 대대적으로 증액했다. 시민의 고독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제도와 예산의 언어로 묻고 답했다.


제11대 서울시의회의 종착지가 가까워지자 많은 이들이 다음 행보를 묻는다. 그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하나다. “따뜻한 참견”. 다가오는 새해, 외로운 도시에 더 분주히 말을 걸겠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차가운 도시의 온도를 1도쯤은 높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치의 치(治)가 치유의 첫 글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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