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물가 상승’이라는 지적에도 둘의 상관관계를 부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최근 잇따라 관세를 인하하고 있다. 새해 전날인 지난해 12월 31일 가구 등에 대한 관세 시행 시점을 슬그머니 1년 연기하는가 하면 이탈리아산 파스타에 대한 관세도 대폭 인하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를 낮추기 위한 조치로 관세가 물가를 올린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소파·의자 등 천으로 덮인 가구와 주방 캐비닛, 세면대 등에 대한 관세 인상을 1년 연기하는 대통령 포고령을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홈페이지에 띄웠다. 백악관은 지난해 9월 포고령을 통해 천으로 덮인 가구에 대한 관세를 2026년 1월 1일부터 25%에서 30%로, 주방 캐비닛과 세면대는 25%에서 50%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이들 품목의 관세 인상은 2027년으로 1년 유예하고 그 기간 동안 기존 25% 관세를 계속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탈리아산 파스타에 부과하기로 한 90%가 넘는 반덤핑관세도 10% 내외로 인하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외무부는 1일 미 상무부가 올해부터 자국 파스타 업체 13곳의 제품에 물리기로 한 91.74%의 반덤핑관세를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보면 ‘라 몰리사나’가 2.26%, ‘가로팔로’는 13.98%를 부과받았고 나머지 11곳은 9.09%가 적용됐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파스타 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가격을 지나치게 낮춰서 팔고 있다며 유럽연합(EU) 제품에 대한 미국의 상호관세 15%에 더해 올해 1월부터 이들 제품에 90%가 넘는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다만 외신들은 미 상무부의 반덤핑 조사 최종 결론이 3월 12일 발표될 예정이며 최종 반덤핑관세율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13개 업체는 미국 파스타 수입량의 약 16%를 차지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14일 커피·소고기·바나나·토마토·아보카도·견과류 등 200여 개 식료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조치는 같은 달 13일 0시 1분(미 동부 시각 기준)부터 소급 적용됐다. 이어 20일에는 브라질산 식료품에 대한 40% 추가 관세도 철회했다.
관세 부담에다 미국 내 소 사육 두수 급감, 이상기후에 따른 커피 작황 악화 등으로 식료품 가격이 치솟자 부랴부랴 관세를 내린 것이다. 지난해 11월 현재 미국 소고기 가격은 1년 전보다 부위별로 11~25% 상승했고 커피 가격 역시 품목에 따라 20~35% 급등했다. 오렌지주스는 12%, 바나나는 7%, 양상추 가격은 21% 올랐다. 특히 지난해 11월 초 뉴욕 시장, 뉴저지·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하면서 생활비 부담 경감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와 물가 상승은 연관성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해 12월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수입품 물가 상승률은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낮다”며 “지금 물가를 밀어올리는 것은 서비스 경제이며 이는 사실 관세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련의 관세 철폐 조치는 사실상 관세가 물가를 올린다는 것을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 인정한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블룸버그는 가구·세면대 등에 대한 관세 유예 조치를 두고 “높은 물가 수준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불만이 지속되는 가운데 관세 부과의 속도를 조절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트럼프 행정부가 높은 생활비 문제로 정치적 압박에 직면하면서 파스타 관세 부과안에 대한 입장을 완화했다”고 짚었다. 미 정부가 200여 개 식료품 관세를 철폐했을 당시 돈 바이어 하원의원(민주·버지니아)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침내 우리가 늘 알고 있던 사실, 즉 그의 관세가 미국 국민의 물가를 올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