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한국의 디지털 규제와 쿠팡 문제를 놓고 한미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양국 간 비공식 채널이 있음에도 미 국무부가 공개적으로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중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밝혔고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국가에 제재를 가하겠다고도 엄포를 놓았다. 이달 15일(현지 시간) 내놓은 ‘2026~2030 국무부 전략계획’에 언급된 내용으로 한국을 겨냥하고 있는 뉘앙스가 뚜렷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 회의가 연기된 가운데 미 무역대표부(USTR)의 한국 디지털 규제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외신 보도가 뒤따랐다. 미 의회에서는 “한국이 쿠팡을 마녀사냥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한국의 디지털 규제 입법과 쿠팡에 대한 대응 등 크게 두 가지다. 지난해 말 국회와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통망법 개정안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게 불법·허위 정보 삭제 등 일정 수준의 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 법안이 유튜브·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을 운영하는 구글·메타 등에 해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쿠팡 문제의 경우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미흡한 사후 대응이 본질임에도 미 의회는 한국이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때리고 있다며 압박하고 있다.
한미 간 이상기류가 흐르는 현 상황에서는 정상 간 통화가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미국 내부 상황을 살펴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의회의 의견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무부와 재무부·의회는 대중국 매파적 성격이 강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단적인 예다. 비록 미국 행정부·의회에서 한국 디지털 규제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기보다는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를 담은 것”이라는 논리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쿠팡 역시 미국 기업에 대한 표적 제재가 아니며 쿠팡이 초래한 대규모 정보 유출 문제의 심각성,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사후 대응 등 사안의 핵심을 설명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과의 소통에서 오해를 풀었던 경험이 있다. 지난해 8월 워싱턴DC에서의 첫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적어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곧이어 열린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내란 상황과 관련해 국회가 임명하는 특검에 의해 사실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오해가 있었다고 확신한다”고 답했고 이후 해당 사안을 두고 돌출 발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또한 지금은 두 정상이 통화를 할 적절한 시점이기도 하다. 한중 정상회담 결과를 직접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유하고 4월 방중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 현지 분위기를 전달하면 한미 정상 간 통화가 밝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의 한일 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해 한일 공조 체계가 공고하다는 점을 안심시킬 수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미 디지털 갈등으로 핵추진잠수함, 농축 우라늄 및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조선 및 원자력 협력 등과 같은 사안에 속도가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기 전인 임기 전반부에 우리 안보에 필수적인 사항의 진도를 충분히 빼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미가 마주 앉아 디지털 갈등을 두고 소모적인 대화를 하다가 핵심 논의가 뒤로 밀릴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톱다운식 대화를 선호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더 늦기 전에 정상 간 통화를 통해 오해를 풀고 나라의 국익과 관련된 핵심 의제에서 모멘텀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