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미 FDA 승인을 얻은 퀴놀론계 항생제 ‘팩티브’. 신물질 합성의 홍창용 박사와 임상시험의 추연성 박사와 더불어 팩티브 개발의 주역으로 꼽히고 있는 박순재 상무는 팩티브의 FDA 승인에 대해 “개발단계에서부터 독성물질문제가 불거지는 등 많은 난관이 잔존해있었지만 이에 포기하지 않고 모든 연구원들이 끝까지 노력해준 결과”라고 밝혔다.
LG생명과학이 신약개발에 나선 것은 지난 90년대 초. 당시 제약사들은 경쟁적으로 신약개발에 뛰어들었다. LG생명과학(당시 LG화학)이 신약개발에 나선 것도 이때. 박 상무는 퀴놀론계의 항생제에 눈을 돌렸다. 그는 “(퀴놀론계 항생제가) 개발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신약개발 경험이 적은 우리의 실정을 감안해 위험을 줄이자는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퀴놀론계의 항생제는 시장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외국 대형 외국제약사들이 조금은 기피해왔던 분야. 하지만 개발비용을 떠나 우리나라처럼 임상시험에 대한 인프라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퀴놀론계 항생제에 뛰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박 상무는 “초기 개발중 프로젝트 리더가 사망하고 독성문제로 동물실험이 난관에 부딪히는 등 (신약개발은) 처음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옥심(Oxime)’ 구조의 획기적 신약물질을 만드는데 성공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하지만 문제는 임상 2단계 이후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이었다. 회사측은 세계적인 제약회사 스미스클라인비첨(SB)과 제휴를 맺어 해결해나갔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중반, FDA의 실사를 잘 마쳤는가 싶더니 6개월 뒤인 12월 ‘퀴놀론계 항균제 팩티브에 대한 신약승인 불가’라는 통지를 받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재신청을 한창 준비중이던 2002년 4월, 제휴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합병전 SB)마저도 공동개발 제휴를 철회한다는 통지까지 날아들었다. 박 상무는 이때를 가장 큰 시련기였다고 회고한다. 신약개발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그는“신약개발을 계속 하는 것과 새로운 제휴회사를 찾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뒤 LG생명과학은 새로운 파트너 선정을 위해 미국과 유럽의 50개사와 접촉 끝에 진소프트(GeneSoft)와 제휴를 맺었다. 진소프트와의 제휴는 비교적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하지만 박 상무의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SB로부터 임상시험 결과와 해외 판권 등을 이전 받는 것이었다. 예상외로 GSK특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박 상무는 의외로 손쉽게 풀린 이유에 대해 “(GSK측이) 신약승인을 받지 못한데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순풍에 돛단 듯 일은 잘 진행됐다. 작년 4월 FDA에 재신청을 한 결과 1년만인 지난달 5일 드디어 ‘팩티브 신약승인’이라는 낭보를 쥐게 된 것이다.
박 상무는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이 어느 특정분야를 키우는 데 집중한다면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현재 물질발굴분야는 여타 제약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거의 없을 정도로 기술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약으로 개발하기까지의 기술력은 다른 차원의 문제.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약개발 능력은 선진국의 절반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약 개발 능력이 떨어지데 대해 두 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하나는 1건의 약을 개발하기 위해 3억달러(약 3600억원) 정도가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을 쓸 수 있는 국내 제약회사`가 없기 때문. 설사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성공여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임상시험 인프라의 부재. 임상 1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가능하나 그 이후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팩티브의 경우도 40여개국에서 9천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상무는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미래를 밝게 내다보고 있다. 그는“제약업계가 대부분 영세하지만 국내 회사끼리 힘을 합치게 되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세훈기자 <isurf@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