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찍는 카메라! 나노세컨드의 액션

오우삼 감독의 액션영화 <페이스 오프>의 클라이맥스 총격 장면에서, 두 명의 적-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과 그들의 패거리는 베레타와 글록 권총을 난사한다. 그리고는 총구에서 짙은 연기기둥이 피어오르면서 총잡이의 손을 흐린다. 초속 수천 m로 발사된 총알은 미끄러지듯 속도가 느려지면서 총신의 강선에서 일어나는 회전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것은 너무나도 멋진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처럼 보인다. 영화 <매트릭스>의 파동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총알의 정지화면 마술에는 못 미치지만 여하튼 실감난다.

이는 오우삼 감독의 영화가 보다 현실감이 뛰어나기 때문. 12,000 fps(초당 프레임수)의 밀리 세컨드(Millisecond) 카메라로 불리는 일회용 수제(手製) 장치를 통해 실제 총알의 슬로우 모션이 잡힌다. 디지털 효과가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35mm 영화는 여전히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실제로 35mm영화를 볼 때 ‘이것이 영화다’라고 하죠. CGI로는 그런 풍부한 사실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라고 네이던 네베커는 말한다. 네베커는 그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코닙션 필름(Couniption Films)이라는 회사의 소유주이자 밀리 세컨드 카메라를 만든 인물. 네베커의 카메라는 표준 무비카메라와 공통점이 별로 없다. “기계 셔터를 매우 빠르게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도 물리적 한계가 있죠. 정말 빠르다는 것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거죠”라고 네베커는 말한다. 그의 카메라에서, 한 루프의 필름은 드럼에서 매우 빠르게 회전한다. 드럼통은 공기를 없애 마찰을 줄였다. 회전거울과 일련의 렌즈는 빛의 “조각”을 각각의 프레임으로 보낸다. 속도 면에서, 이 카메라는 100분의 1초 분량의 움직임만을 필름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총알은 그 시간에 3m 날아가니까.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밀리 세컨드 카메라의 가장 기상천외한 점은 네이던 네베커의 세계에서, 초당 1만2천 프레임이 매우 느린 클립이라는 사실이다. 코닙션 필름을 운영하는 것이 네베커의 두 번째 직업이다. 이 회사는 초고속 무비카메라를 제조하는 가족기업에서 분사해 영화 및 TV관련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솔트 레이크 시티에 소재하고 있으며 네베커의 아버지 시드가 경영하는 코딘 사이언티픽 이미징(Cordin Scientific Imaging)사는 거의 50년 동안 과학계 및 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오늘날 코딘이 제조한 가장 빠른 무비카메라는 상상을 초월한다. 초당 2억 프레임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1초 동안의 영상은 표준 무비카메라로 재생해서 볼 경우 96일이나 소요된다.




폭탄을 촬영하며...
고속 스틸 사진촬영기법은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1931년 섬광촬영장치(strobe)를 발명한 헤럴드 에저튼의 우유방울과 사과를 관통하는 총알 사진이다. 초고속 영화 촬영기법은 나중에 시작되었고 원자탄 탄생에 하나의 과학적 도구로서 역할을 했다. 이 기법의 목적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과 다음 순간사이의 변화를 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보통사람의 시 분할에 대한 친숙함이 끝나는 시점, 눈의 깜박거림에 해당되는 10분의 1초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일반 카메라도 시간을 포착하지만 세련되지 못하고 덩어리가 크다. 무비카메라는 초당 24개의 스틸 프레임이 상연되는 동안 눈속임으로 연속동작을 보여준다.

스냅사진을 촬영해 본 사람이라면 1/500이나 1/1,000의 셔터 세팅에서 가장 생생한 동작이 포착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영역을 넘어서는-마이크로세컨드, 나노세컨드, 피코세컨드(picosecond)를 지나 펨토세컨드(femtosecond)- 빠르기는 눈으로 식별할 수 없다. 사람의 눈도 기록하지 못하고 재래식 카메라도 기록하지 못한다. 고속 무비카메라의 경우 기록은 하지만 그런 장비로 촬영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 대부분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찍은 사진을 공개할 경우 실정법을 어기는 몇몇 과학자들은 예외지만 말이다. 비밀병기 연구가 이 사업의 핵심에 있다.

맨하탄 프로젝트의 최종단계 동안 로스 알라모스 과학자들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쳤다. 시드 네베커는 로스 알라모스에 살고 있는 96세의 기술자 벌린 브릭스너로부터 들었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얘기를 기억한다. 내파 무기의 이론적 실질적 구조를 개발하던 과학자들은 무기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가 없었다. 그 실패가 개발과정 전체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과정의 조정이 필요한 정도인지에 관해 의견이 분분했다. 아마도, 핵반응을 촉발하게 되어 있는 폭발 “렌즈”의 형태가 수정되어야 했을 것이다. 브릭스너에게 주어진 임무는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과학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장면을 포착하라는 것이었다. 브릭스너가 사용한 카메라는 초기 회전거울 디자인이었다.

원통모양의 하우징 중앙에 위치한 거울이 연속 이미지를 카메라 메인 렌즈에서 필름으로 영사했다. 필름은 하우징 안쪽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되었다. 각 프레임에 도달하는 빛은 프레임 고유의 렌즈를 통과했다. 거울은 일종의 셔터 역할을 하면서 분리된 이미지를 필름에 전송하여 독립된 프레임을 형성한다. 이 디자인은 NASA의 전신인 NACA에서 근무했던 엔지니어 데이비드 밀러가 만든 작품에서 따 온 것이다. “회전거울에서 이미지를 형성하고 렌즈열을 거울과 필름 사이에 위치시킨다는 밀러의 개념 덕분에 초당 100만, 200만 혹은 500만 이미지로 건너 뛸 수 있었죠” 라고 시드 네베커는 말한다. 물론 필름의 분량은 매우 짧았다. 그 카메라는 단지 24 프레임밖에 촬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출시간을 10분의1 마이크로세컨드 내에서 맞출 수가 있어 실험이 실패할 경우 과학자들은 그 사건을 프레임별로 기록해 두었다. 맨하탄 프로젝트 기술이 기밀분류대상에서 제거된 직후인 1956년에 만들어졌고 초당 125만 프레임을 촬영할 수 있었던 최초 코딘(Cordin) 카메라는 똑같은 회전거울 디자인에 기초를 두었다. 고속 카메라 제조업은 항상 소규모 가족형 산업으로 이어져 오면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학계-균열, 분열, 진동의 역학에 관심이 있는 충격파 및 캐비테이션(cavitation) 물리학자, 극초음속 비행 전문가, 재료공학자-와 “에너지 물질(폭발물이나 추진제 등)”, 탄도탄, 포격과 폭탄을 연구하는 군 연구소에 이바지 해 왔다. 최근 2년 마다 열리는 전 세계 전문기관들의 모임인 국제 고속 사진촬영 포토닉스 회의 (여기엔 모든 형태의 고속 이미징, 스틸, 그리고 영화를 포함)의 참가자는 고작 226명. 고속 카메라와 관련된 대부분의 작업은 로스 알라모스와 로렌스 리버모어와 같은 연구소에서 행해지며, 그 뿌리는 군사기술연구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사진촬영기법의 대부분은 비밀로 유지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보안문제 외에도 투명 실린더 헤드를 장착한 엔진의 연소효율을 연구하는 한 자동차 회사가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이터를 독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슬라이드로 몇 장의 스틸사진(무기연구용)을 한번 본적이 있어요. 정말 보기 힘들죠”라고 네이던 네베커는 밝힌다. 국제 거래 시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코딘 카메라는 수출 시에 핵무기와 관련된 기술을 관할하고 있는 에너지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1990년, 뉴저지의 한 수출입 회사가 코딘에게 접근하여 카메라 한대를 20만 달러가 넘는 금액으로 구입하려고 했다. 최종 구입자는 핵 연구를 실시하던 이라크의 무기연구소 ‘알 킨디 제네럴 이스태블리시먼트’로 드러났다. 수출허가는 취소됐다. “걸프전 이후에 이라크에서 다소 도움이 될 만한 몇 대의 일제 카메라가 발견되었죠. 하지만, 우리 카메라의 생동감과 속도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죠” 라고 네베커는 말한다.



수제(手製)의 전통
시드 네베커는 1960년대 초부터 코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당시 시드는 유타대 동문이었던 두 명의 회사 창업자들로부터 인수했다고 한다. 코딘의 본사는 솔트 레이크 시티의 산업단지 내에 위치하고 있는데 올림픽 보도에서 자주 등장했던 휘황찬란한 다운타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현재 종업원이 약 30명인 코딘회사는 널찍한 사무실과 공작실로 나뉘어 있다. 엔지니어 작업실에서는 시드 네베커가 젊은 엔지니어와 함께 한국의 국방연구소로 보낼 카메라의 회로를 손보고 있었다.

73세인 네베커는 잘생긴 외모에 유쾌하고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코딘에서 함께 일하는 세 명의 자식들은 그를 데드코(DadCo)라 부른다. 어린시절부터 뭔가를 만지작거리며 수선하는 걸 즐겼다. 시드는 대공황시대에 유타 북부의 2,400만 평에 이르는 유명한 목장(양과 소를 방목)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어린 시드는 낡은 기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여덟 살 때 목장 인부에게서 구한 고장난 1기통 엔진을 개조하여 사용하곤 했다.

목장생활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집을 떠나 유타대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고 공군에서도 복무를 하였다. 그 후에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했다. 1958년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 솔트 레이크 시티로 되돌아왔다. 네베커는 이름 없는 신생기술기업에서 6개월 간 근무 하다가 1959년 얼 파운드라는 대학 동창을 만나게 된다. 파운드는 유타 주립대의 교수였고 몇 해 전 맨하탄 프로젝트 카메라 기술이 기밀리스트에서 삭제되면서 코딘을 설립했다. 코딘은 ‘1956 카메라’ 한 가지만을 생산했다. 이 카메라는 해군이 메릴랜드주에 있는 무기시설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입했다. 그 뒤, 코딘은 휴면상태였다. 종업원도 없고, 고객도 없고 사업계획도 없었다.

네베커는 코딘을 다시 살리고 싶어 했고 코딘은 무보수로 몇 개월을 일했다. 그는 최초 카메라의 디자인을 개선하여 “신뢰성이 뛰어나고 매우 정확한” 카메라로 변모시켰다. 몇 달 후 캘리포니아주 소재 차이나 레이크 해군 무기센터로부터 주문이 들어왔다. “무기개발은 입소문과 인간관계가 크게 작용하는 사업이죠. 우리의 카메라와 이를 담당하는 차이나 레이크 기술자들은 그 다음 4-5년 동안 마케팅에 크게 기여했죠. 국방부 사람들이 우리의 카메라에 대해 문의를 하면, ‘차이나 레이크의 롤랜드 갤럽과 얘기해 보세요. 그 사람이 하나 가지고 있거든요’라고 말했죠. 그는 대단한 사진가였고 국방부 사람들이 그에게 문의를 하면 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었죠. 그러면 카메라가 팔리곤 했습니다.”(차이나 레이크는 아직도 코딘 카메라를 사용한다). 코딘은 고속 사진촬영 비즈니스라는 틈새시장을 고수해 오고 있지만, 이 사업 자체는 고속성장 비즈니스가 아니다. 현재 코딘의 카메라는 1년에 10대 정도가 판매된다. 종종 특정 목적에 맞게 맞춤식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최고의 장인은 올해 70세인 제임스 브림홀로 카메라조립 책임자이며 거의 20년을 코딘에서 근무해 왔다. 작업은 수세공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브림홀은 현재 레인 오버그라는 32세의 직원에게 그의 기술과 책임을 전수하고 있다. 하루는 오버그가 38만5천 달러짜리 회전거울 카메라의 내부를 구성할 160개의 렌즈 하우징 중 하나를 조립하는 것을 필자가 거들었다. 이 카메라는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의 탄도탄 시험장에서 주문한 것이었다. 이 카메라는 코딘 역사상 5번 째 모델 140 카메라로 225만 fps, f/6 조리개에 총 80 프레임이다. 거울은 광택 알루미늄으로 코팅된 5각형 베릴륨으로 되어 있다. 베릴륨은 X-레이로 결정질의 순수성을 검사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헬륨구동 터빈에 의해 56만 2,500 rpm으로 회전될 때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오버그가 책상에서 일어나 필자를 맞았다. 한 손에는 검정색의 양극처리 알루미늄 마운트, 다른 손에는 전기 드레멜 (Dremel)-TV 광고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을 들고 있었다. 깎여진 금속 부스러기들이 근처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드레멜을 늘 가까이 두고 있는 이유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오버그는 의기양양하게 답한다. “네, 전에는 사용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정말 간편하더라고요.” 그런 다음, 마운트를 갈기 시작했고 표면에 은빛 금속이 여기저기 드러났다. 카메라에 들어가는 수백 개의 렌즈는 이 마운트에 의해 제자리를 잡게 된다고 설명한다. 마운트의 공차는 매우 엄격하게 제작된다. 하지만, 마운트에 렌즈를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접착제는 양극 처리된 알루미늄엔 잘 붙지 않는다. 그래서 양극처리를 갈아서 벗기는 것이다.

우리는 자외선을 차단해 주는 커다란 검정색 플라스틱 시트를 지나 청정실로 들어섰다. 하나의 베니어판에 돋보기 같이 두꺼운 수백 개의 사각형 유리 렌즈(길이는 1.5 인치, 두께는 1/4인치, 높이는 1/4 인치 정도)가 붙어 있었다. 각각의 어셈블리는 4개의 렌즈로 구성되고 2개의 어셈블리가 하나의 프레임을 구성하여 총 80개의 프레임으로 되어 있다. 각 어셈블리 렌즈 중 두 개는 마이크로미터 공차범위 내에서 배치되어야 하지만 나머지 두 개는 그렇지 않다. 오버그는 필자에게 저정밀 렌즈 두 개를 작업대에 고정된 어셈블리에 갖다 붙여 보라고 했다. 보기보다는 쉬었다. 18게이지 바늘에 소량의 접착제를 바른 다음 고강도 자외선에 수초 동안 쪼이면 된다. 치과의사가 치아에 에폭시를 채우는 것과 비슷하다.


미소운석(微小隕石)이 충돌할 때
5천fps에서는 미식축구공이 플레이스키커의 발등에 천천히 감길 때 키커의 발이 축구공과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골프공을 보기 위해선, 1만2천fps까지 올려야 합니다”라고 네베커는 말한다. 그 이유는 스윙의 지레작용으로 클럽이 엄청난 속도로 가속되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20만fps를 자랑하는 회전드럼 카메라를 사용하여 씨스루(see-through)엔진을 들여다본다. 프랑스 해군은 폭탄의 타격이 배의 선체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기 위해 코딘이 설계하고 제조한 특수 방수잠망경과 함께 이와 동일한 카메라를 구입했다.

하지만, 어떤 물체가 시속 2만5,700km로 장애물과 충돌할 때 그 파괴력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백 만 단위의 fps로 연속촬영을 해야 한다. 그래서 뉴멕시코 주 화이트샌즈에 소재한 NASA의 초고속충격실험소(HITF)에서도 코딘 카메라를 사용한다. 이 실험소의 과학자들은 우주선 부품이 고속으로 움직이는 우주쓰레기(인공위성 하드웨어의 파편이나 페인트 조각)나 미소운석과 충돌할 때의 영향을 모의실험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서 작은 발사체로 우주선부품에 타격을 가한다. 1년에 100회 정도,

HITF의 2단 경량가스 피스톤 건을 사용하여 다양한 크기(최대 직경 1인치)와 모양의 플라스틱과 금속을 시속 2만5,700km로 가속시켜 (예컨대, 우주선 외피) 실물모형과 충돌실험을 한다. “신형 입자충격 쉴드이든 케이블이든 테더이든 간에 노출된 모든 부분”이 취약하다고 HITF 프로젝트 매니저인 데이브 베이커는 밝힌다. NASA는 미국 전역에 이런 가스건 시설을 보유하고 있지만, 화이트샌즈의 외진 빌딩을 가장 선호한다. “여기서는 위험한 타깃도 충격실험을 할 수가 있어요”라고 베이커는 말한다. “예를 들면, 폭발 가능성이 있는 추진제 탱크나 산소탱크, 혹은 유독 성분이 있는 베릴륨 등이 있죠.” 모든 실험은 코딘의 회전거울카메라로 촬영된다. 사진과 데이터의 분석은 존슨우주센터의 과학자들이 맡는다. 최근에 일어난 우주왕복선 폭발사고 조사와 HITF의 작업이 서로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베이커는 침묵을 지켰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우주쓰레기가 컬럼비아호 폭발의 유력한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빛까지 찍는다
지난 6년 간 코딘의 초고속 그룹을 차지해 왔던 카메라들은 아무런 가동(可動) 부품이 없다. 이 카메라들의 촬영속도는 최고 2억fps로 에어로솔 제트엔진 연료의 점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고 나탄 네베커는 말한다. 파면(wave front)이 평평하면 연소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게이트제어 강화 CCD 카메라에서, 대물렌즈에서 나온 빛은 선속분할기를 통과하고 동일한 여러 개의 이미지들이 야간투시경에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미세다중채널 판(MCP) 영상 강화기 튜브의 광전음극에 형성된다. 광자(光子)들이 강화기 전면에 부딪히며 각 튜브안의 전자(電子)들을 해방시킨다.

전자는 튜브에서 흘러나와 인광성 표면에 다시 부딪힐 때까지 더 많은 전자들을 끌어낸다. 이 인광성 표면은 전자들을 다시 빛의 형태로 전환시킨다. “강화기는 두 가지 일을 수행합니다. 빛을 수천 배로 증폭시키고, 수 나노세컨드 안에 그 빛을 전환합니다. 그렇게 짧은 노출에서 유용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그런 풍부한 빛이 필요합니다”라고 시드 네베커는 설명한다.

MCP로부터 얻은 이미지는 유리섬유 다발을 통과하는데, 이 유리섬유의 한쪽 끝단은 사진을 수축하기 위해 길고 얇게 펴져있다. 이 작은 끝단들은 이미지를 기록하는 1메가 픽셀의 전하결합소자-일반 디지털 카메라에서 발견되는 것과 흡사-와 마주보고 있다.

본지는 나탄 네베커에게 나노세컨드의 시간을 시각적 인지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네베커는 아주 짧은 공간(30m 정도)을 리얼타임으로 여행하는 빛을 연속사진으로 촬영해 보자고 제의했다. 이 우주에서 가장 빠른 물질인 빛이 일반적인 공간을 가로질러 나아갈 때 갑자기 멈추었다. 네베커가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이런 시도가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0년대 말에 다양한 기술로 포착된 빛의 한 컷 사진은 본지에서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진 중 하나”로 지명되었다(자세한 기사는 www.popsci.com/exclusive). “분명 경탄할 만한 사진이죠. 하지만 수많은 도전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라고 네베커는 말한다. 빛은 1나노세컨드에 약 30cm를 이동한다.

그래서 눈으로 볼 수 있다면, 7나노세컨드의 레이저 펄스는 2.1m 길이의 불연속 전자(電子)다발처럼 보일 것이다. 네베커는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소재한 스펙트라 피직스(Spectra-Physics) 사의 연구소에 작업실을 설치했다. 여기서 푸르게 빛나는 레이저 빛의 7나노세컨드 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레이저를 사용할 수 있다. 그가 가져온 카메라로는 단 2프레임만 촬영했다. 네베커는 찰나 동안의 빛의 행보를 볼 수 있는 연속사진 - 본질적으로, 초단(超短)영화-을 촬영하고자 했다.

2.7m 테이블을 따라 쌍을 이루어 서로서로 마주보고 있는 각이 진 거울에 레이저 빛을 투과하면 일련의 공간을 통과하여 이동한다. 이 때 2.1m의 레이저 빛 펄스는 90나노세컨드에 거울 코스를 완주한다. 10나노세컨드의 프레임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라고 해도 10나노세컨드의 포착시간이 있기 때문에 1초면 9천만번이나 발생한다. 미미한 반응지연 시간이 존재한다. 레이저의 하드웨어가 레이저를 발생시키는 동시에 네베커의 카메라를 격발시킨다고 해도 레이저를 카메라에 가하는 회로와 케이블로 인해 수 나노세컨드의 지연이 생긴다.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네베커는 레이저의 지연과 카메라의 지연을 측정하고 동기화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펄스가 거울을 통과할 때 카메라가 정확하게 켜지도록 했다. 예측한대로, 100나노세컨드의 노출은 첫 번째 프레임에 27m 코스 전체를 보여주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두 번째 프레임은 컴컴했다. 그런 다음 노출시간을 50나노세컨드로 줄였다. 첫 번째 프레임의 이미지는 코스 절반이 나타났고 두 번째는 여전히 어두웠다. 프레임간 지연을 미세 조정하여, 펄스의 꼬리 끝단이 거울 코스의 마지막 끝단에 위치한 “빔 덤프(beam dump)”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두 번째 프레임을 얻을 수 있었다.

네베커는 이 카메라의 한계인 10나노세컨드로 노출시간을 조정했고, 참석한 스펙트라 피직스사 엔지니어들은 그들이 보고 있는 장면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난 첫 번째 프레임에 거울코스의 단 한 구간에서 레이저 빛이 담겨있었다. 나머지는 캄캄했다. 또한 10나노세컨드의 지연후에 10나노세컨드로 노출된 두 번째 프레임에서는, 첫 번째에서 두 구간 지나있는 코스구간이 밝게 빛났다. 네베커는 27m 코스를 이동하는 레이저빔을 서로 다른 두 장의 사진에 담아냈다. 입자가 거친 흑백 디지털 이미지는 오우삼 감독의 구미에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SF영화에서 오랫동안 묘사된 대로 빛을 보여준다. 즉, 독립된 패킷으로서 아주 짧은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다(오래전 스타트렉에 나온 커크의 페이저(phaser)를 떠올려 보라). 엔지니어들의 얼굴엔 기쁨이 배어났다. 한 엔지니어가 코딘 모델220 카메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한 마디 던졌다. “우리도 하나 필요하겠는데요!”

이 사진은 분명 경탄할만하다. 코딘 카메라가 빛을 그 자리에서 얼려버리는데 성공했다. 마치 날아가는 총알이 더 빠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에탄 스미스는 뉴욕시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로 문화, 비즈니스, 정치 및 과학 분야에 관해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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