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해가 지는 법이 없는 이곳에선 지퍼 여는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하나 둘씩 각자의 텐트에서 비집고 나온 사람들이 얼어붙어 버릴 듯한 추위에 잔뜩 몸을 웅크린채 식사 텐트 안으로 온기를 찾아든다. 끝없이 낮이 계속되는 이곳에서는 오전 7시 30분과 정오, 오후 6시에 먹는 세 끼 식사만이 그나마 규칙적이다.
우리는 캐나다 북극해의 극지방 사막지대인 데본 아일랜드에 새로 도착한 대원들이다. 이 섬은 웨스트 버지니아 정도의 크기이지만 같은 목적으로 방문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북극에서 1.450㎞ 가량 떨어진 이 황량한 섬에서는 약 30명 정도의 과학자들이 야영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곳이 지구상에서 화성과 환경이 가장 유사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데본 아일랜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발견할 것인지,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배우려 하고 있다.
문명이 전파된 최북단 지역으로 주민이 200명 뿐인 외지 레졸루트에서도 데본 아일랜드까지는 비행기로 50분을 더 가야 한다. 날씨가 나빠서 아침 식사 몇 시간 전에야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름이 걷히면서 사진사 존 카넷과 나는 공중에서도 캠프를 잘 볼 수 있었다. 작은 고원에는 개인용 텐트들이 줄지어 있고, 근처에는 좀 더 큰 텐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거대한 암석 요새 같은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1.6㎞ 쯤 떨어진 곳에는 원통형으로 생긴 플래쉬라인 화성 극지방 탐사 기지가 있었는데, 지방 방언으로 “햅”이라고도 하는 이곳에서는 과학자들이 하루종일 우주복을 착용한 채 화성에서의 생활을 모의체험 중이었다. 인근 둘레에는 연중내내 녹지 않는 녹색 얼음덩이들이 있었다.
이 지역의 누나버트 에스키모인들은 데본 아일랜드에서 이곳을 ‘뭔가가 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2,300만 년 전에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폭이 22㎞나 되는 크레이터를 남겼다. 이 하우튼 크레이터는 지구상에서는 유일하게 극지방 사막지대에 있다. 이 크레이터와 이를 둘러싼 협곡 및 지표면의 균열들은 화성 표면의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과학자들이 소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머리가 하얘진 채 데본 아일랜드의 식사 텐트 안에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을 못 봐서 그렇다. 이들을 보면 북서횡단로를 찾아내 부와 명예를 얻고자 북극에 왔던 초기 탐사대원들이 떠오른다. 이곳의 과학자들 역시 그와 비슷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지만 목적지가 대륙이 아니라 다른 행성이라는 점이 다르다. 샤워 시설 공사가 아직 진행중이어서 아마도 이런 비교를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조사 프로젝트들이 현재 진행중인데, 이 중 일부는 데본 아일랜드에 최초로 대원들이 도착한 4년전 여름에 시작된 것들이다. 한 고생물 학자는 고대의 연못 바닥을 조사 중이고, 또 다른 과학자는 캠프 주변의 토양 샘플을 채집해 사람과 연관있는 미생물들이 이 지역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다. 크레이터를 조사 중인 지질학자들도 있다. 이 외에도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나온 많은 엔지니어들이 앞으로 화성에서 사용될 하이페리온이라는 태양력 구동 로봇을 시험 가동해 보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 각 프로젝트는 독자적으로 수행되지만 화성 연구라는 동일한 목표하에 이루어진다.
이곳의 과학자들 중 상당수가 번갈아 가며 한 번에 1주일에서 10일 동안 원통형 주거 시설인 ‘햅’에 거주하게 된다. 올해를 원년으로 이 시설에 장기간 사람이 체류하게 된다. 외부인은 통역사가 필요한 경우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다”라는 말을 과학자들은 “그 문제에 관해 내가 아는 지식의 한도는 이 정도이다”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캠프에서의 생활은 두 사람이 주도한다. 한 사람은 다소 신경질적인 37세의 프랑스인 파스칼 리이다. 그는 SETI 소속 행성 과학자로 캘리포니아 모핏 소재 미 항공우주국 아메스 연구소에서 근무한다. 매년 데본 아일랜드 캠프 운영에 필요한 50만 달러 정도의 비용 중 절반을 미 항공우주국이 제공하고 SETI가 운영을 맡는다.
또 한 사람은 로버트 주브린으로, 49세의 로켓 엔지니어인 그는 화성에 관심이 많은 4,000명의 회원이 결성한 화성협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이 거주시설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은 주로 화성협회가 담당한다.
리와 주브린이 연주자라면 과연 같은 악단에서 함께 연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머리 가운데가 벗겨지고 주변 머리만 남아 수도승 같은 주브린이 화성 관련 업무를 나즈막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추진하는 반면 리는 보다 생기있고 가끔은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수행한다. 만약 두 사람이 화성에 간다 해도 서로 반대편 반구에서 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화성에서는 사람들간의 갈등이 최소화되길 바란다. 두 사람은 가급적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가 대개 캠프에 있는 반면 주브린은 주로 거주시설에 머문다.
하루는 저녁 식사후 난방을 하지 않은 작업 텐트 안에서 의자 대용으로 쓰는 길고 흰 냉각기 위에 리와 함께 걸터 앉아 있었다. 안은 추웠고, 밖은 습했다. 마치 생성 초기 단계의 화성같다고 리가 말했다.
정반대의 견해인 셈이다. 대부분의 주류 학자들은 화성이 한때 초기 지구처럼 뜨겁고 습한 행성이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가 화성 표면에서 부분적으로 발견되고 있는데, 고대에 강바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들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리는 화성 표면에 나 있는 협곡과 손가락 모양으로 얽혀 있는 계곡들이 모두 강바닥이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는 후퇴하는 빙하들로 인해 이러한 모양들이 형성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화성 형성기의 추운 기후를 암시하는 것으로, 지구에서 초기 생명체가 발생하기에 적합했던 덥고 습한 환경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리는 데본 아일랜드도 역시 빙하로 인해 형성된 곳이긴 하지만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은 결코 아니라고 지적한다. “암석을 깨 보면 그 안쪽 금간 구석구석에 미세한 습기와 열이 갇혀 있고, 바로 거기에 미생물체가 살고 있다”고 그가 말한다. 이들에 필요한 열과 수분은 하우튼 크레이터에서 나온 암석들로 연결된 열수(熱水)로를 통해 공급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화성에서 생명체나 그 흔적을 찾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운석 충돌로 생긴 크레이터 바닥일거라고 리는 가정한다. 그런데 데본 아일랜드는 이런 가설을 시험해 보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리는 데본 아일랜드에 얼마나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암석들과 생명체가 극한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을 연구할까? “두텁고 흰 수염이 날 때까지요.” 리는 북극 지방의 신비스런 에스키모인들을 염두에 두고 웃으며 말한다.
리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주브린과 그의 팀은 거주시설에 체류한다. 나는 곧 이들과 합류해 “손님” 우주비행사로 하룻밤을 머무른다. 나는 빌린 ATV를 몰고 로웰 캐널이라는 강을 가로질러 조사지역으로 올라간다. 이 강의 이름은 화성의 수로망이 고등 생명체에 의해 만들어졌을 거라고 추측했던 한 천문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우튼 크레이터의 가장자리에 있는 원통형 거주지는 전망이 뛰어나 크레이터 건너편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저곳 어딘가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지반은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하다. 해빙중인 영구동토층 위를 걷는 느낌은 마치 과일 젤리 위를 걷는 것 같다. 가만히 서 있을라치면 더 심해진다. 마른 땅처럼 보이는 곳에 서 있는데도 1~2분이 지나면 발 둘레로 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한다. 식물은 없으면서도 물은 도처에 널려 있는 이 지역만의 특징 중 한 가지인 셈이다. 셀 수도 없을 수많은 이름없는 강들이 황무지의 암석들과 흙, 얼음을 뚫고 지나간다.
사향소의 흔적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지역을 샅샅이 훑으며 이 지역 먹이사슬의 최종 소비자인 북극곰의 흔적을 찾는다. 모두들 캠프를 나설 땐 무장을 한다. 지질학자이자 베이스 캠프 조정관인 존 셔트가 굶주린 곰이 사람을 사냥하는 방식에 관해 잠깐 말해 준 적이 있다. “보통 곰은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 눈에 띄지 않게 사람 주위를 서성이다가 바람을 타고 공격을 하죠”라며 20년간 북극과 남극을 오가며 추운 여름을 보낸 셔트가 말한다. “곰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거든요”라며 셔트가 덧붙인다. 정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든다. 셔트가 또 한 마디 맥빠지는 말을 한다. 북극곰을 죽이면 설령 정당방위였다고 해도 25,00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권총과 ATV 외에 베이스 캠프를 벗어날 때 반드시 가져가야 할 것은 휴대형 GPS 수신기이다. 우리는 자기상의 북극으로부터 동쪽에 있어서 나침반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GPS 수신기 보다는 원시적이지만 정확도는 비슷할 여행 지침은 사람 모양으로 생긴 이누잇 돌무덤이다. 이 중 하나가 레졸루트 베이를 향한 채 포트리스 꼭대기에 놓여 있다. 부식작용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발판을 아무 횡단 지점에나 만들어 놓아도 100년 간은 볼 수 있다.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은 탁월한 데 비해 인간이 만든 것은 그 정도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원통형 거주지는 창문이 달린 기름 탱크처럼 보인다. 안쪽의 2층짜리 유리 섬유 구조물은 한창 공사중인 시설 같다. 대부분 합판 바닥재와 형편없는 카페트로 깔려 있는 아래층에는 작업 준비실과 작은 실험실, 그리고 쓰레기를 소각하는 화장실이 있다. 2층으로 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작업실과 주방이 딸린 널찍한 공용지역이 나타난다. 이곳의 6개 침실은 모두 창문이 없고 잠자리와 선반 몇 개만 달린 걸어 들어가는 벽장인 셈이다. 내가 잠을 자는 곳은 침실 훨씬 위쪽의 창고로, 천장에 너무 가까워서 물이 새는 게 느껴진다. 이 원통형 거주 시설은 큰 아이들용 통나무집과 비슷하지만, 5년간 운영비는 자그마치 100만 달러나 든다.
주브린의 팀에는 배우 진 클라우드 반 뎀의 나이 든 모습에 유머 감각이 뛰어난 유럽우주국 소속 벨기에 과학자 블라디미르 플렛서를 비롯해 열렬한 페미니즘 신봉자로 메사추세츠 기술 연구소 박사과정에 지원한 케티 퀸, 그리고 미 우주항공국 아메스 연구소 소속으로 다른 대원들을 관찰해 인간 행동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호리호리한 빌 클랜시가 있다. 이들 외에도 바로 전 주에 리의 팀에서 잔류한 두 명의 다른 대원도 있다. 한 사람은 브리티쉬 콜럼비아 소재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에서 온 소심한 성격의 스테판 브레엄이고, 다른 사람은 영국 남극 조사대 소속으로 언제나 침착한 찰스 콕켈이다. 그밖에 원통형 거주지에 재정 지원을 하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나온 TV 방송국 제작진이 가까이 따라다니면서 매 순간들을 촬영한다.
함께 온 사람들이 거주지에 들어가기 전에 위성망을 통해 친구와 동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느라 바빠서 늦게서야 원통형 거주지 안에 들어섰다. 다음날 아침엔 주로 물과 쓰레기 관리에 관해 얘기가 됐는데, 이 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결할 것인가가 이곳에서 자주 거론된다. 주브린은 엉뚱한 얘기로 빠져서는 자기가 만든 화성식 체스 규칙을 설명하고 있다. 체스광인 플레스토가 귀를 곤두세운 채 듣고 있다.
이 날의 가장 큰 일은 우주공학 전문용어로 EVA라는 선체외 활동이다. 임무는 100미터에 걸쳐 24개의 센서를 배치, 화성의 지표밑에 존재하는 물을 찾아낼 어레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 어레이의 금속판을 치면 발생된 진동이 센서들에 포착되면서 지하수 존재 여부와 지하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시하는 지진 기록이 생성된다. 물론 이곳 데본 아일랜드에 물이 많다는 것을 우리들 모두 안다. 그래서 오늘의 목표는 정확한 결과치를 얻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원들이 우주복을 입은 채 장비를 배치하고 실험을 수행할 수 있을지 그냥 연습을 한 번 해보는 것이다.
나는 참관인 자격으로 우주복을 입고 주브린과 플렛서, 퀸으로 구성된 3인조 팀의 4번째 대원이 된다. 예전에 리가 이 거주지에서의 경험을 “저감도 시뮬레이션”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꼭 할로윈 같은 느낌마저 든다. 우주복 재료는 캔버스 천으로 한 쪽 어깨에 화성 상징 깃발이 꿰매어져 있고 우주복 전체 무게는 11㎏ 가량 나간다. 헬멧을 쓰려면 도움이 필요한데, 머리에 쓰면서 잠깐 밀폐 공포증이 느껴진다. “코를 긁을 생각일랑 아예 하지도 말아야겠구만”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물은 입 근처의 튜브로 빨아 마시고 가급적 가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주브린과 플렛서가 먼저 거주지를 나선다. 퀸과 내가 그 다음으로 “에어록”에 들어가 5분 동안 기다리면서 가상으로 감압을 한다. 가지고 다닐 무선 송수신기가 충분치 못해서 난 벙어리가 된 채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거주지를 나서는데 등을 굽히기가 몹시 어려운 데다 해치마저 낮아서 자세가 엉거주춤하다. 주브린과 플렛서는 벌써 90미터쯤 떨어진 장비 배치 지역에 ATV를 나란히 주차시켜 놓았다. 퀸이 남은 ATV를 타고 나가버려 나는 걸어서 간다. 내 손에는 식료품점 점원들이 높은 선반의 상자를 내릴 때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암석 채집기가 들려 있다.
TV 방송국 사람들은 고정 궤도가 없는 인공위성들처럼 우리 주변을 날렵하게 돌아다닌다. 최초의 유인 화성탐사대에도 TV 방송국 요원이 포함될지 궁금한데,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화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헬멧 덮개에 김이 서리고 있다. 이젠 장님에 벙어리 우주비행사인 셈이다.
머리를 약간 기울이자 헬멧 귀퉁이로 시야가 다소 확보된다. 장비는 펼쳐져 있지만 작업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걸린다. 퀸은 금속판에 대고 큰 망치를 흔들고 있다. 플렛서는 헬멧의 햇빛 가리개를 통해 콘트롤 박스의 LCD 화면 내용을 읽느라 애를 먹고 있는데, 콘트롤 박스마저 장갑 낀 손으로 조작하기엔 불편하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주브린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 분명 조작을 체념한 듯 보인다. TV 제작진들이 나한테 뒤로 물러나라고 신호를 한다. 나를 촬영중인 모양이다. 머리 위론 해가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서커스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거주지로 돌아간다고 수신호를 한다. 발밑의 바위들이 불안정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길을 더듬어 간다. 햇빛가리개에 물을 뿌리면 1~2분 동안은 그런대로 앞이 보인다. 다행히도 물이 다 떨어지기 전에 문에 다다른다.
에어록에 들어가서는 가압을 위해 필요한 5분 동안 기다린다. 암석 채집기로 문을 쾅 두드려 보지만 반응이 없다. 당황해서 안으로 들어가 본다.
EVA 준비실은 칠흙같이 어둡다. 모두 2층에 있는 모양이다. 한 공상과학영화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죽은듯이 적막한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던 장면이 떠오른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내 숨소리 뿐이다. 우주복을 입고 있으면 소리를 질러도 아무에게도 안 들린다. 알면서도 한 번 소리를 질러본다. 이상하게도 이 순간만은 진짜 우주비행사가 된 기분이다. 헬멧을 도움없이 벗을 수가 없다. 우주복 안에 꽉 낀 채 갇혀버렸다.
나는 암석 채집기로 벽을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이 소리를 확인하러 누군가 와주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누군가가 왔는데 알고 보니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던 TV 카메라맨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가 헬멧을 벗도록 도와주었다. 우주복은 드레스처럼 등쪽에 지퍼를 올리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지퍼를 내려달라고 했다. 마치 여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었는데, 옷을 벗으면서 우주복의 디자인상의 결점들이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점 등에 대해 혼자 투덜거렸다.
나머지 EVA팀 대원들은 잠시후 복귀했다. 플렛서는 결국 LCD 화면의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세 종류의 데이터들을 얻었는데 굉장했어”라고 그가 말한다. 주브린 역시 들뜬 채 화성 탐사 임무에서 로봇에 비해 인간이 얼마나 우월한가 떠들어대고 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로봇은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물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로봇은 화성으로의 오랜 항해로 인한 방사능으로 병에 걸리거나 죽지도 않는다.
미 해군이 C-130기로 식량과 필수품을 공수할 거라는 말이 베이스 캠프에서 들려온다. ATV를 모두 베이스 캠프로 보내야 한다. 나는 캠프로 돌아가 리와 탐 던캐비지 중령을 태우고는 보급품 투하 지점이 내려다 보이는 능선으로 간다. 해군에게는 이런 보급품 공수가 이제 연례적 행사가 되었고, 이곳은 해군에서 지금까지 공수했던 장소들 중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최북단인 셈이다. 내겐 이것이 주중에 가장 즐거운 일이다. C-130기는 낮게 드리운 구름 안팎으로 회색 유령처럼 드나들며 ATV 3대와 다른 보급물자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내려 놓았다.
“저게 내가 주문한 피자인가요?”라며 내가 묻고 있는데 세 번째 짐이 영구동토층에 튀면서 떨어진다. 중령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난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다. 중령은 이곳에서 식사를 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요리사가 매일 주어진 재료로 요리를 잘 하는 편이긴 하지만 좀 더 식단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식사후 남은 음식들이 다음날 점심 수프로 사용되곤 하기 때문이다.
물론 화성에도 피자는 없다. 그렇다면 왜 그곳엘 가야 하는 걸까? 더군다나 우리가 발견할 생명체라고는 미생물 몇 종과 화석화된 흔적 뿐인데 말이다. 곤충을 발견하려면 아직 멀었다. 수십억 달러에 달할 비용은 말할 필요도 없다. 피자가 없어 씁쓸한 상태에서 이런 질문을 리에게 해 본다. “화성은 화제거리가 되고 그로 인한 혜택도 있죠”라며 그가 대답한다. “화성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이곳 지구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신기술 개발에 쓰이죠. 인간을 위한 새로운 분야에의 투자인 셈이죠.” 그는 잠깐 말을 멈추고 싱긋 웃는다. “신나는 일이죠”라며 그가 짧게 얘기한다. 그렇다면 좋다. 나도 피자 따위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밖에 나가 일몰이나 구경해야겠다. 북극식 농담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