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전, 문명으로부터 1,600km나 떨어진 남극에서 영국의 어니스트 세클레톤 경이 무전기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오직 정적뿐이었다. 그는 탐험 대원 27명을 이끌고 수개월 전 영국을 떠나 최초의 남극 대륙 도보횡단을 시도했다. 그러나 1915년 1월 탐험대가 탄 배인 인듀어런스호는 남극 대륙을 코앞에 두고 얼음에 갇혀 버린다. 그로부터 얼마 뒤 배는 산산조각 나고 탐험대 전원은 고립되고 말았다.
하지만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고 1년이 더 지난 뒤 세클레톤 경은 대원 전원을 생환시켰다. 지난달 26일 PBS는 노바의 <세클레톤 경의 인내 항해>라는 2시간 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프로듀서인 노바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선박을 전세내어 남극까지 항해하기도 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87년 전 인듀어런스호의 전속 사진사였던 프랭크 헐리가 촬영한 필름에 들어있다. 사진 속에는 산산이 부서진 배를 뒤로하고 대원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과 한 대원이 식량 부족으로 아사한 강아지들을 들어 보인 장면도 담겨있다.
‘인내하는 자가 정복한다.’는 가훈을 철저히 실천한 세클레튼 경의 뛰어난 리더쉽에 중점을 둔 이 다큐멘터리는 35분간 생존을 위한 대원들의 사투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