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국제 소비자 전자제품 전시회(CES)」 둘째 날이 끝나자 필자는 들뜬 기분과 동시에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신제품과 더불어 전세계에서 모인 11만 명의 사람들과 모두 한번 씩 부딪힌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CES는 연례적으로 행사로써 최신 오디오 기기와 TV, PDA, 전화 등을 구경할 수 있는 전시회다.
과거 전시회에는 유행과 맞지 않는 일부 제품들과 창조력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실제 판매될 확률이 거의 없는 신제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번 CES는 다른 분위기였다. 경제불황 때문인지 지난 9·11테러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전시품목들에서 지난날의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비슷한 시기 멋진 컨셉 카들이 선보인 디트로이트 오토쇼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대신 기존의 기술로 이제 막 시장에 선보인 제품들이 많이 선보였다.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았던 것은 영화와 음악, 인터넷을 가정의 곳곳에 전달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신경기능 센터’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 센터’즉, 목시(Moxi) 디지털이었다. 삼성과 파이오니아, 휴렛 패커드 등의 기업들은 모두 비슷한 컨셉을 선보였으며 샘포와 샤프, 필립스도 DVD 플레이어, TV, CD 플레이어를 이용해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기들을 선보였다.
모비와 윌리엄 오비트 등 테크노 음악이 울려 퍼진 컨벤션센터의 홀은 회색과 검은색 옷을 입은 도우미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2,100만 평방 피트 넓이의 전시공간에 펼쳐진 이번 ‘2002 CES’행사에는 총 2,059개의 기업들이 참가, 1만 5천 개 이상의 신제품들을 공개했다. 도시바는 SD 오디오 플레이어를, 산요는 휴대폰을, 컴팩은 노트북 컴퓨터를 각각 선보였다. 매일 세 번 열리는 ‘디지털 패션쇼’는 관람객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입을 수 있는’날이 멀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었다.
컨벤션센터의 중앙 홀에 가장 큰 부스를 차지한 업체는 파나소닉과 도시바, 필립스. 특히 파나소닉은 이번 전시회에 바닥에서 천장까지 모두 플랫형 스크린 TV를 쌓아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러한 플랫 패널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보여준 대표적인 미래형 컨셉. 파나소닉은 이외에도 디지털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 오디오 플레이어, 음성 녹음기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SV-AV 10 SD등도 전시했다.
세계적인 시계제조 업체인 카시오는 아타리사와 공동으로 개발한 게임 가능한 시계와 ‘신용카드 시계’라는 별명을 가진 지불정보 기록용 시계 ‘iR’을 소개했다. iR은 정보호환이 가능한 현금 등록기 방향으로 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구매 내역이 기록되는 시계다.
올해는 산요 부스에 관람객의 발길이 뜸한 편이었지만 다른 업체보다 많은 제품을 전시했다. 그러나 이 제품들은 안타깝게도 일본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전시품 중에는 녹음을 할 수 있는 워크맨 크기의 디지털 메모리 레코더(PD77R)와 손톱 크기의 디스플레이 액정을 가진 휴대폰이 가장 눈에 띄었다.
가장 이색적인 이벤트를 한 업체는 샤프전자. 싱크로나이징 이벤트를 열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2만 6,497리터의 물로 채워진 푸른색의 투명 수조에서 선수들이 신나게 움직이고 있었고 배꼽을 겨우 가린 도우미들이 신형 아쿠오스 TV에 대해 설명했다. 도시유키 키타가 설계한 아쿠오스 TV는 은빛 나는 매트 마감재와 부드러운 곡면이 특징인 복고풍 디자인이 적용됐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샤프도 15인치 모델을 작년 5,000달러에서 올해 1,199달러로 가격을 낮추었다.
대기업이 장악한 1층과는 달리 2층에는 발명가들이나 전자제품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업체들이 부스를 차지했다. 자판에 익숙하지 못한 타이피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40달러 짜리 ‘가이스 키보드’와 몰래 카메라가 내장된 커피메이커와 팬 종류, 기타 주방용 제품들도 전시되었다. 한편에서는 장난기 있는 관람객들이 전자 충격 총인 ‘어드밴스드 데이저 M26’을 가지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