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이 난 경우가 아니라면 음식이 보통 배속에서 어떻게 소화되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 신현대 예술박물관에서 현재 전시 중인 작품을 보고 나면 내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인간의 소화과정을 본뜬 20만달러짜리 시뮬레이션 기계 덕분이다.
벨기에의 예술가 빔 델보이가 제작한 이 기계의 명칭은 라틴어로 하수구란 뜻의 ‘클로아카(Cloaca)’ 이 기계는 음식을 씹어 삼킨 뒤 22시간동안 소화시키고 난 후 소시지 모양의 쓰레기를 컨베이어 벨트에 쏟아낸다. 앤트워프 대학 과학자들과 함께 클로아카를 개발한 델보이는 “반드시 사람의 위(胃)처럼 보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일단 추상적 개념을 상상하기만 하면 기계적 장치로 변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플라스틱 깔대기인 클로아카의 입으로 하루 2번 들어간 음식물과 물은 여러 개의 통을 거쳐 지나가는데 각각의 통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화단계를 보면 오싹한 기분이 들 정도다. 전자 센서가 각각의 통을 모니터하고 전기 펌프 신호를 보내 음식물을 이동시킨다(기계 전체 길이는 10m). 음식물은 37℃며, 산성도도 인체의 위와 동일한 농도로 유지된다. 판크레아틴(췌액소), 빌리루빈(담즙 적황색 색소), 바일(쓸개즙)등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화학물과 효소도 첨가한다.
실험 결과 클로아카의 찌꺼기는 인간의 배설물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델보이의 예술 주제는 ‘사회의 기계화와 우리 인체가 받는 영향’이지만 클로아카를 감상한 후에는 7.6m가 넘는 인간 고유의 소화 기계가 피부 밑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는 점이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음식물의 소화과정 인간 소화계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기계 ‘클로아카’는 하루 두끼 식사와 물 2.5리터를 섭취한다. 첫 번째 통의 쓰레기 분쇄장치와 고기 분쇄기는 치아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곳에서 음식물이 씹히고 산(酸)과 함께 섞인다. 빔 델보이는 뉴욕박물관 혹은 벨기에에서 인터넷을 통해 직접 산도(酸度)를 조절하기도 한다. 두 번째 통에서는 음식물에서 췌액 효소가 첨가되어 지방, 녹말, 단백질이 분해된다. 세 번째 통에서는 소화과정이 시작되며 쓸개즙이 첨가된다.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 통에서는 소장과 대장의 소화과정이 시작된다. 자석 막대가 24시간 동안 내용물을 골고루 섞는다. 통 사이에 연결된 튜브의 수축운동으로 소화된 음식물은 이동한다. 마지막 통에서는 수분만 따로 추출되어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고 인공 장(腸) 운동을 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쌓인 배설물은 화장실 변기로 버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