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분석, 시뮬레이션 통해 해결한다

교통사고 분석에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실제 현장상황과 가장 근접한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해 잘잘못을 가려내는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과학적으로 입증해낸다는 정확한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자동차 사고가 나면 사고를 목격한 뚜렷한 목격자가 없는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이 엇갈려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또 경찰의 명백한 판정이 있어도 대형사고의 경우 사고 당사자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어 당사자들의 불만은 오히려 증폭되어 소송사건으로까지 번지는 것도 한 이유다. 이에 따라 차량의 제원이나 파손상태, 타이어와 마찰계수, 차량의 이동궤적 등 수많은 변수를 컴퓨터로 계산해 말그대로 객관적인 모의실험을 통한 판정이 증가하고 있다. 컴퓨터를 이용, 각종 물리법칙을 이용해 사고를 거꾸로 유추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사용과정을 알아본다.

충돌실험결과 수식화해 실제 상황과 거의 일치
1955년 9월 30일 오후 5시. 영화배우 제임스 딘은 레이스에 출전하기 위해 자신의 포르쉐 승용차를 몰고 살리나스로 향했다. 그러나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국도에서 그의 포르쉐 승용차는 한 픽업트럭과 충돌하고 말았다. 촬영이 없을 때에는 자동차 레이서를 즐겨 한때는 팜스프링스 경기 아마추어 부문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던 ‘이유없는 반항자’제임스 딘은 차량충돌직후 즉사했다. 차대차 사고로 숨진 제임스 딘은 과연 가해자였을까, 피해자였을까.

사고가 난지 48년이 흐른 지난 93년 3월 미 NBC방송은 TV방송을 통해 제임스 딘의 실제 충돌사고를 재현해보았다. 자료는 역사적 기록과 사진이 전부였다. 사고정보는 미국의 한 시뮬레이션 업체인 EDC가 개발한 EDCMAC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고차량의 스키드마크와 최종정지위치를 비롯, 다른 물리적 증거에 근거해 시뮬레이션이 행해졌다. 모의실험 결과, 사고가 난 양차량은 제한속도 시속 88km인 도로에서 88~96km로 각각 주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임스 딘과 마주 오던 상대차량은 제임스 딘의 차량을 볼 수 있었는데도 불구, 중앙선 바깥으로 좌핸들조작을 시도했다는 것이 모의실험결과 밝혀졌다. 시뮬레이션의 분석결과가 사고 처리된 역사적 기록과 거의 같게 나오자 사람들은 물리법칙에 근거해 결과를 산출하는 시뮬레이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60여가지 변수이용, 충돌전후 상황 과정 분석
사고분석에 시뮬레이션이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0년대 말 미 코넬대학 칼스판 연구소의 래이 맥헨리가 충돌시험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부터. 이전엔 세계 여러 나라의 자동차 공학자와 교통공학자들이 충돌에 의해 차량운동을 수작업으로 계산한 정도가 고작이었다. 좀더 정확한 사고분석의 필요와 사고 당사자들간의 첨예한 대립을 해결하려면 확실한 ‘수단’이 필요했다. 보완을 거듭한 결과 탄생된 것이 바로 지난 96년 미 EDC가 개발한 ‘자동차충돌 프로그램 HVE(Human Vehicle Environment)’이다. HVE는 대표적 교통사고 분석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현재 관련 프로그램 27개를 전세계 1,500여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다.

시뮬레이션은 차량의 제원이나 파손상태, 사고차량의 최종정지상태, 타이어와 도로노면과의 마찰계수, 차량의 이동궤적 등 객관적인 자료와 함께 충돌지점과 충돌시 운전자의 자세, 제동 거리와 핸들조작정도, 사고차량의 속도 등 60여가지 데이터를 입력해 작동되게 된다. 슬로우 모션으로 나타나는 이동과정은 차량의 이동중 중간과정과 최종정지위치가 실제상황과 일치하는지를 대조해보고 일치되지 않으면 또다른 충돌지점과 충돌시 자세, 브레이크 및 핸들조작 등 다양한 변수를 서로 입력시켜 가장 정확한 사고차량의 위치와 속도 등을 측정하게 된다. 지금까지 사고현장상황에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양차량의 최종정지위치와 차량의 손상상태, 노면흔적 등 단순한 자료로 분석해 시각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는 2차원적 분석과는 달리 3차원 시뮬레이션 기법은 사고전후의 궤적을 보여줘 충돌전후의 진행과정을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다.

시뮬레이션의 필요성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자동차 사고시 어떤 상태였는가에 대해서는 목격자뿐 아니라 운전자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즉, 핸들을 어떻게 꺾었는지, 제동상태는 어느 정도였는지 어느 지점이나 어떤 자세였는지 등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운전자가 사망 또는 중상을 입어 진술할 수 없다든가 거짓진술, 목격자 부재 등의 이유. 이런 경우는 단순한 추측에 의한 것이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제 3의 목격자 진술에 의존하거나 비슷한 이전 사례를 참고하는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부정확한 자료의 보정(補正)이다. 사고자료가 미비하거나 실제 상황과 거의 맞지 않는 경우, 자동차의 운동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려면 단순한 수작업이나 추측으로는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 법정 증거자료 채택건수 늘어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법원에서도 증거자료로 채택하고 있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의견이 완전히 엇갈리는 경우 법원이 아예 관련법에 의거해 시뮬레이션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나 단체 등에 감정을 위탁하기도 한다. 지방법원의 형사사건중 4분의 1이 교통사고건인 점을 볼 때 완전히 시뮬레이션에 의존하지 않더라고 실험결과는 정확하지 않은 목격자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경우가 많고 사건에 대한 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원으로서는 다양한 모의실험결과로 증언에 부합하는 결과를 채택할 수 있고 오히려 반대자의 증언을 실험하는 측면에서도 시뮬레이션을 이용할 수 있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얻을 수가 있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교통사고조사기술원의 강성모원장은 “최근 대형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국도나 차량이 한적해 목격자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 교통사건의 경우 감정의뢰가 증가하고 있다”며 “시뮬레이션 결과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단순한 수치를 입력하는 대로 결과가 산출되기 때문에 ‘충돌에 대한 결과를 미리 수식화(數式化)할 수도 있다’는 조작에 대한 의심을 가지거나 산출된 결과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맹목적인 경우, 또는 권위를 앞세워 거부하는 경우가 그 예다. 우선 컴퓨터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고차량 당사자들의 모의실험이용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모의실험 결과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직 정부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정확성이나 일반적 신뢰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로 반전되는 경우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모의실험은 단순한 수치의 산출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이용한 ‘실험’이기 때문에 아직은 참고로 이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은 다양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변수를 총집결해 ‘실제 상황과 가장 근접한 과정’을 엮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법원이 의뢰한 기관이나 단체의 결과는 통상 무리가 없는 경우에 한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교통사고 줄이는데도 모의실험 이용해야
시뮬레이션을 활성화하면 사고발생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고다발지역을 미리 발견,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다양한 사고의 경험을 시뮬레이션으로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에 차량이나 교통시설까지 바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뮬레이션에 대한 정부의 개방적인 자세. 모의실험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은 이미 검증된 업체를 통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주정부당국이 깊이 개입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 시뮬레이션을 창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관련기술의 확대와 과학적인 검증을 위해 주정부가 적극 나서 객관적이고 더욱 정확한 표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과학기술의 발전이 낳은 모의실험을 통해 더욱 공정한 ‘심판의 잣대’를 만드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고분석 모의실험. 대형사고나 사망사고는 차츰 줄어드는 추세지만 자동차의 수가 증가해 접촉사고나 잘잘못을 가릴 수 없는 경우나 사고의 예방차원에서 모의실험의 적용범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세훈기자 <isurf@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