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8년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한 상황을 두고 이탈리아의 시인 지오반니 보카치오는 “의사도 약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적고 있다. 흑사병은 서혜부나 겨드랑이가 부으면서 시작하는데, 계란이나 사과크기 만큼이나 붓는 경우도 있다.
이 정도로 붓는 증상을 보인 환자는 살 가망이 없음을 의미했다. 최악의 경우 일단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마치 지옥의 불길처럼 기름에 붙은 불처럼 번져나갔다.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흑사병의 공격을 받았다. 가만히 도사린 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흑사병의 원인은 옷핀 모양의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라는 세균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페스티스 세균에 관한 보다 정확한 파악을 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사라졌다고 생각될 때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창궐할 뿐 아니라 그 진화 방법을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위스콘신대의 게놈 연구소 프레데릭 블래트너와 동료들은 이 유기체의 DNA 배열에 관한 연구를 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이 세균이 과거에 어떤 과정을 거쳐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면 이 무서운 세균들이 미래에 어떤 식의 행태를 보이게 될 것인지를 좀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균에는 3가지의 주요한 균주가 있다. 블래트너 교수의 팀은 흑사병의 창궐을 가져온 종류와 거의 흡사한 것으로 판단되는 메디아에발리스(Mediaevalis) 균주에 연구 초점을 맞추었다.
메디아에발리스 균주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균의 다른 2가지 균주와 유사하며 이 다른 2가지와 자기 유전인자의 95%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블래트너 교수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 균의 유전인자 가운데 매우 많은 수가 다른 소스에서 나온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 유전인자의 구성에 관한 사항을 살펴보고 이를 다른 세균의 유전인자와 비교하여 이 이동성 유전인자에 관한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묘해 보이는 즉, 재구성되었거나 전도된 유전인자들은 몇 가지 다른 과정을 거쳐 그러한 모양을 띠게 된 것으로 보인다. 몇몇 경우 전이성 인자라고 하는 유전인자들은 세균의 DNA 상의 자기 위치로부터 떨어져 나와 다른 곳에 자리를 잡는다. 이 유전인자들은 이렇게 ‘이동’하다가 다른 세균으로 껑충 뛰어넘어 들어가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세균바이러스가 한 종류 세균의 유전인자를 떼어내어 다른 종류에 이식하기도 한다.
오늘날 해마다 미국인 가운데 15명 안팎의 사람이 흑사병에 걸린다. 대개 서부와 서남부의 시골 지역의 사람들이다. 전세계적으로 흑사병에 걸리는 사람들은 해마다 3천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흑사병만큼 가공할만한 유행병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해 우선 반가운 소식은 블래트너 교수가 예르시니아 페스티스 균이 비교적 천천히 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점이다. 지속적으로 돌연변이를 보이는 바이러스들과는 달리 세균은 대개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소식은 세균들은 지적한 바와 같이 새로운 유전인자들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 마다가스카르지역에서 발견된 흑사병 균주는 다섯 가지의 항생제에 대해 저항력을 갖고 있었다. 이 막대균은 자기가 얻어낸 유전인자 덕택에 다른 세균 종류로부터 끈질긴 생명력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14세기에 인류에게 공격을 가한 것에 비견할 만한 그러한 재해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언제 어디서 그와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