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마일을 정복한다.

서울 포이동에 살고 있는 가정주부 이모씨(32). 저녁이면 새로 산 펜티엄4급 컴퓨터 앞에 앉아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웹서핑을 즐기곤 했다. 처음에는 빠른 속도에 감탄을 하곤 했지만 최근 들어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가 늘자 연결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저녁 10시가 넘어가면 인터넷에 연결하는 데 무려 1시간 넘게 걸리기도 하면서 짜증도 내곤 했다. 초고속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사례다.

정보통신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흔히 ‘빛의 속도로 산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광케이블을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정보의 전달 속도가 그 만큼 빨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현재의 정보전달 속도를 ‘빛의 속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초고속 인터넷은 평균 초당 200∼300kb, 많아야 1Mb가 고작이다. ‘빛의 속도’를 낸다는 광섬유를 사용하는 데 왜 이 정도의 속도밖에 안나올까.

이유는 간단하다. 광섬유가 가입자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인터넷망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FTTC(fiber to the Curb)방식. 즉, 아파트 단지 등 밀집 지역까지만 광섬유로 연결하고 각 가입자까지는 구리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단지내에서 한꺼번에 많은 사용자들이 몰리면 신호의 병목현상이 벌어지고 인터넷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거나 접속이 끊기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마치 4차선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2차선의 국도나 지방도를 만나면 정체 현상을 보이는 것처럼 광섬유를 통해 전송되던 데이터들이 갑자기 구리선을 만나 정체현상을 빚는 것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광섬유를 직접 가입자에게 연결하는 FTTH(fiber to the home)방식이다. 전선업체나 서비스업체들은 이를 광섬유가 깔리는 마지막 단계라는 의미에서 일명 ‘최후의 1마일(Last 1 mil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빛의 속도’는 바로 여기서 구현된다.

현재보다 속도 수백배, FTTH 21세기 마지막 황금시장
FTTH는 전화국에서 가입자까지 광섬유가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전송 속도가 현재에 비해 수 백 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르면 적어도 FTTH가 실현되면 각 가정에서 기가바이트 단위의 통신망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터넷만 연결되면 컴퓨터 하나로 거의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다. 400Mbps가 필요한 고화질(HD)TV 뿐만 아니라 광대역 화상전화를 이용해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을 고해상도 영상으로 쇼핑하거나 가정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원격진료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디지털 비디오 레코더(DVR)을 비롯, 각종 가전기기를 컴퓨터로 원격제어하는 홈네트워킹이 훨씬 강력해 질 수 있다. 특히 광케이블은 음성급 신호만 보낼 수 있는 구리선과는 달리, 빛을 통한 데이터 전송방식은 데이터 영상신호를 보낼 수 있으며 대역폭의 한계가 없어 누화, 잡음 등을 방지할 수 있다. 21세기 정보화사회의 통신서비스가 듣는 서비스에서 보는 서비스로 변화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FTTH는 필연적인 노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볼 때 FTTH를 구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우선, FTTC에서 사용하고 있는 광네트워크유닛(ONUㆍOptical Network Unit) 대신 수동형 광분배기(POSㆍPassive Optical Splitter)로 대체하고 광섬유를 각 가정까지 연결한 다음 이를 조작할 수 있는 광네트워킹 단말기(ONTㆍOptical Network Termanal)을 달면 된다. 반면 그 시장은 폭발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IT업계에서 FTTH를 21세기 마지막 황금시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 주요 업체 FTTH대비 발빠른 대응… LG전선 등 솔루션 개발
FTTH의 성장 가능성은 시장의 폭발적인 잠재력에서 더욱 분명히 볼 수 있다.
세계적인 광산업 관련 전문 리서치기관인 KMI의 지난해 보고서에서는 앞으로 2006년까지 FTTH시장이 연평균 200%에 달하는 고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미국내 FTTH장비시장이 올해 1억달러 규모에서 2006년에는 9억달러로 무려 9배 이상 성장할 것이며 신규 가입자수도 12만 9천 가구에서 115만가구로 10배 이상 폭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올해 다시 수정됐다.

지난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는 FTTH 협의회가 주최한 제1회 FTTH 컨퍼런스가 열렸다. 제임스 솔터 애틀랜틱 엔지니어링 최고경영자(CEO) 겸 FTTH협의회장을 비롯, 38개 관계업체에서 400여명이 참석해 향후 FTTH의 방향과 시장전략에 대해 논의한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2004년 미국내 FTTH 가입자수가 140만가구까지 증가할 것이고 성장률도 330%까지 뛸 것으로 예상했다. 시기적으로 KMI보고서 보다 2년 이상 빨리 성장한 것이고 발전 속도도 이전보다 130% 이상 상향 조정됐다.

세계의 주요 업체들도 발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옵티컬솔루션사는 지난해 2월 벌써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에 100Mbps까지 가능한 FTTH세트를 설치했으며 마르코니사도 지난해 9월 실리콘밸리내 팔로알토(Palo Alto)시에 라스트 마일에 대비해 7Mbps의 전송 속도를 구현한 네트워크를 시범적으로 구축했다. 일본은 지난해 7월 NTT와 샤프 등이 제휴를 맺고 FTTH 구축을 위한 전략사업인 ‘히카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FTTH에 대한 대응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LG전선은 올해 10월 국제규격의 10기가비트 이더넷용 광케이블 및 광섬유를 개발, 출시했다. 기지국과 가입자를 연결하는 기존 이더넷망의 속도를 최고 100배까지 끌어올린 이 제품은 광섬유 한 가닥으로 10만명의 인터넷 사용자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또 벤처기업인 케이텍정보통신도 지난해 9월 최대 2km까지 100Mbps의 속도롤 구현할 수 있는 광네트워킹 솔루션을 개발하고 전시회를 통해 업계에 선보인 바 있다.

국내시장은 2010년경 가능 예상
하지만 FTTH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비용. FTTH 방식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깔린 UTP, 동축 케이블 등을 모두 걷어내고 모든 가구에 광섬유를 깔아야 한다. 최근 들어 세계경기의 불황으로 광섬유 값이 많이 내리기는 했지만 m당 3센트 정도. 아파트 단지의 단자함에서 각 가구까지의 거리가 약 50∼70m인 점을 감안하면 가구당 약 2달러 정도가 소요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초고속인터넷 인구가 국내에만 1천만명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광섬유 소요비용만 단순 산술로 2천만 달러가 소요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FTTH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광섬유를 깐다는 것은 곧 정보량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백본망 역시 보다 높은 전송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광섬유로 바뀌어야 한다. 여기에 POS, ONT를 비롯한 각종 네트워킹 장비를 포함하면 그 시장은 천문학적 단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 FTTH를 구현하기 위해 수십조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제 ADSL등 초고속 인터넷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서비스업체들이 이러한 비용부담을 짊어지고 ‘마지막 마일’을 정복하러 나서기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가입자들이 원하는 정보량이 아직 가정까지 광섬유를 필요로 하는 수준까지 올라오지 못했다는 것도 중요한 장애요인 중 하나다.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온라인 게임 때문이다. 이 게임을 하는 데 필요한 전송용량은 초당 20∼30kbps가 고작. 여기에 동영상을 받는다고 해도 10Mbps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즉 아직 정보 수요량의 측면에서 FTTH는 설익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LG전선 중앙연구소의 이동욱 주임연구원은 FTTH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통신방식과 통신시스템의 도입이 절실하고 이는 전적으로 시스템과 서비스 사업자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선행조건이 충족되려면 2010년은 돼야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되고 ‘마지막 1마일’도 더 이상 남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경제 성장기업부 송영규 기자 sk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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