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미 터미네이터는 순식간에 바다로 유출된 원유를 빨아들여 걷어내는 거대한 수압 흡유기다. 이 흡유기의 원리는 마치 기름기 있는 국물에서 지방을 걷어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드넓은 바다에서 1천 리터의 ‘지방’을 걷어내는 일을 생각해보자. 바로 이 ‘지방’을 걷어내는 일을 하는 것이 ‘터미네이터’다. 필자가 직접 이 일을 해보니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터미네이터의 조정 밸브를 작동시키자 바다 물결 위에서 기계가 ‘튀기’시작한다.
처음에는 서서히 움직이다가 이윽고 맹렬한 속도를 낸다. 그러자 가래 끓는 듯한 거대한 소리와 함께 진흙 같은 갈색의 기름찌꺼기가 흡유기 주둥이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은퇴한 해양 경비대 부대장 마이크 크리터드는 “너무 속도를 높이면 기름만이 아니라 탱크의 물까지 다 없어진다”고 경고한다. 해양을 더럽히는 각종 사고는 연간 1만 4천 회가 넘고 있다. 미 연방법은 석유 유출 방제훈련과 관련해 석유를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단 한곳만이 예외다. 뉴저지주 레오나르도에 위치한 석유 및 유해물질 제거 훈련장이 바로 그곳.
약 1천만 리터의 바닷물을 모을 수 있는 이 곳 물탱크 시설에서는 한 쪽 끝에 설치된 전동 날개로 약 1m 높이의 파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공 백사장을 낮추면 포구의 입구가 나타나고 금속제 선교가 6.5노트의 속력으로 인공 해류 위를 이동한다. 그리고 물 속에 설치한 프로판 가스 시스템을 이용해 불길을 치솟게 할 수도 있다. 축구장 두개 정도 길이의 이 시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유출 사고 대응 시뮬레이터이다.
필자와 함께 훈련을 받은 20명의 훈련생들은 앞으로 석유 유출 사고를 전문적으로 대처하는 전문가가 될 사람들이고, 이 중 일부는 미 국립 해양 경비대 소속 기동 타격대에 근무하게 될 것이다. 이 조직은 미국 내 어디에서건 유조선 충돌 또는 좌초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 빠른 시간 내에 본격 방제 작전에 돌입할 수 있는 3개의 전문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이런 속성 훈련에서는 길이가 최소한 18m 정도 되는 배 위에 실을 수 있는 적기 흡유선을 비롯, 여러 장비의 사용법을 배운다. 옴세트라고도 부르는 뉴저지주의 이 훈련장은 최신 방제 장비의 성능을 시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석유를 잘게 입자로 만들어 물 속에서 자연적으로 무해 물질로 분해하는 소산기(단, 이 장비를 이용하려면 사고 현장이 해안에서 4.8km 이상 떨어진 곳이어야 하고 수심은 9m 이상이어야 한다)인 ‘코렉시트(Corexit) 9500’과 얼음덩이가 출몰하는 해역에서 석유를 기계적으로 수거하는 ‘모리스’(Morice)도 이곳에서 실험을 거쳤다. 모리스는 석유가 엉킨 바다 얼음을 건져 올려 강력한 힘으로 물을 분사해 석유를 제거하는 흡유기의 원형이다.
필자는 훈련생들이 FSB(Fast Sweep Boom)라는 오일 펜스를 펼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 장비는 폴리우레탄 소재로 물에 뜨게 만든 확산 방지 장비로 V자 모양의 꼭지 안에 석유를 모을 수 있는 그물이 달려 있다. 먼저 강사인 크리카드가 랜서 바지선에 어떻게 공기를 주입하는지 시범을 보여 주었다. 이 바지선은 해수면 아래로 2.5m까지 팽창하는 공기 주머니에 임시로 약 10만 리터까지 저장할 수 있는 15m 길이의 ‘뗏목’이다. 하지만 진짜 시험은 아르키메데스의 나사식 펌프로 석유를 빨아올리는 터미네이터를 솜씨 있게 작동하는데 있었다.
해양 경비대에 격리 판이 없기 때문에 제거 작업은 유출 현장에서 최대한의 석유를 빨아들이도록 흡유기를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데 달려 있었다. 잔잔한 물에서는 기름 대 물의 비율이 9:1정도면 상당한 수준이고, 파도가 험한 곳에서는 5:5면 합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