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겨우 네 시간 밖에 자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새벽부터 이어진 TV 인터뷰 때문일까? 올해 열 일곱인 비비아나 리스카의 앳띤 모습에서는 수백 명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10만 달러의 장학금을 따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리스카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 내 최고의 과학 경시대회인 인텔 우수 과학경시대회(Intel Science Talent Search)에서 1등상을 받았다. 발표 이후, 리스카는 밀려드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며 자신의 수상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느라 눈코뜰새 없었다. 그녀의 프로젝트는 DNA 배열(string) 속에 암호화되어 있는 메시지에 관한 것이었다.
해마다 약 1,500명의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저마다의 과학 프로젝트를 인텔 경시대회에 제출한다. 그 중 300명이 최종 예심을 거치고 다시 40명만이 최종 결선에 오르게 된다. 최종 결선에 오른 40명의 학생들은 워싱턴에 모여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하고 이 과정에서 수상자들이 결정된다.
학생들의 프로젝트 내용은 포르말린 액에 젖은 동물을 해부하는 고교 생물시간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수준이다. 학생들은 전문연구원들을 지도교사로 삼고, 최첨단 장비들을 사용하며 연구 활동을 한다. 바로 그런 요소 때문에 이들의 연구가 『Nature』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저널지에 실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리스카를 ‘과학에 미친 아이’로 봐선 안 된다. 리스카는 그저 평범한 10대 여고생이다. 여가 시간엔 음악회에도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한다. ‘심슨 가족’ 같은 TV 프로도 보고, 여동생과 함께 음악 채널도 즐긴다. 핑크 플로이드의 애절한 사운드에 빠져 드는가 하면, 오비틀 같은 테크노 댄스 그룹도 마다 않는다.
리스카가 ‘DNA에 관한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라는 프로젝트를 고른 이유는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암호화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스카는 스테가노그래피를 계속할 의향은 없지만 DNA 유전정보를 분석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있기 때문에 ‘컴퓨터’와 ‘생물학’을 복수전공할 계획이다. 그녀는 샘플이 쉽게 오염되기 때문에 DNA를 이용한 연구 작업을 하려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며 연구에 몰두했던 때를 회상한다. “청룡열차를 타는 기분이었어요. 모든 것이 귀찮고 힘들어 좌절감에 빠진 채 귀가하는 날도 있었고 실험 결과가 성공적이어서 너무나도 만족스럽던 날들도 있었지요.”
열 일곱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리스카는 침착한 모습이다. 짙은 갈색 곱슬머리를 바짝 졸라매고 검은 정장을 걸친 모습에서도 십대 소녀 다움은 찾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위대한 업적을 이룬 과학자에게서 풍기는 ‘자신감’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개인 신상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는 듯 했다.
어머니 미핼라가 대신 중학시절의 리스카를 얘기했다. “리스카가 우등생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중학교 때 공로상을 받을 때까지는 몰랐죠. 그 상을 두 해에 걸쳐 연달아 받았는데, 그제서야 얘가 뛰어난 아이구나 하고 알았어요.”
리스카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차우셰스쿠 정권을 붕괴시킨 혁명이 발생한지 2년 뒤인 1991년 미국으로 이민왔다. “루마니아에 진짜 개혁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마냥 들떠 있었지요. 그런데 한 20년은 족히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들이 겪은 좌절을 후세에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건너왔지요.”
세간의 주목이 가라앉으면서 이제 리스카는 보통 십대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하고 싶어하는 것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여행.’ 그래서 올 여름에는 유럽으로 떠날 생각이다. 미국 최고 대학들이 그녀에게 손짓을 하고 있지만, 어느 대학으로 진학 할지 결정하진 못했다.
하지만, 어디서 공부하든 과학을 전공 할 것은 분명하다. “공부를 하는데 인텔 같은 큰 상은 분명 큰 힘이 되죠. 하지만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십대 여고생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집중력’과 ‘신중함’일 것이라고 리스카의 부모와 교사들은 말한다. 뉴욕의 포트 워싱턴에 있는 폴 슈라이버 고등학교의 과학 교사 필리스 서패티는 리스카를 극찬한다.
“리스카는 정말 최고입니다. 리스카는 과학 분야의 천재에요. 모르는 게 없지요. 모르는 게 있으면 알 때까지 파고듭니다. 다른 학생들은 그저 개략적으로만 아는데 그치지만 리스카는 핵심을 정말 잘 파악합니다.”
서패티는 각종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지도도 맡고 있다. 해마다 그녀에게 약 90명 정도의 학생들이 가입을 신청하는데, 시험 성적과 인터뷰를 거쳐 30명만 선발한다.
“학생들 대부분은 이것이 자기가 원하는 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방과 후 과제물이 많다는 것도 이해하구요.”
일단 프로그램에 받아들여진 학생들에게는 뉴욕 안팎에 소재한 전문 연구기관의 연구원을 지도 교사로 맺어주고, 프로젝트 목록에서 연구주제를 고르게 한다. 사실 이 학교는 리스카 이외에도 두 명의 학생을 이번 인텔 과학경시대회 결선에 진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