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로 구성된 개발팀이 신발 하나를 개발하는데 어떻게 16년씩이나 걸렸을까? 필자는 나이키 본사가 있는 오리건 주 비버턴에 도착, 차를 세우며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키사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이미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 운동화인 나이키 샥스 제품을 잠시 살펴볼 수 있도록 협조해 주었다.
신제품 이름으로 낙찰된 ‘샥스’라는 이름은 신발 뒷창에 있는 충격 흡수장치 역할을 하는 서스펜션 시스템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 시스템은 쿠션 역할은 물론 추진력까지 제공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엔지니어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신제품은 쿠션 기능 하나만으로도 지난 20여 년 동안 애용해 왔던 에어 시스템에서 일보 전진한 것이다. 새로운 서스펜션 시스템은 추진력을 주기 위해 스프링 기능이 있는 발포재 칼럼을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뒷창을 네 개의 발포재 칼럼으로 교체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다. 매일 가해지는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신발을 만드는데는 수년간의 실험과 시행착오가 동반됐다. 더구나 인체 역학적으로 이상적이어야 한다. 또 연구원들은 샥스라는 개념을 달리기와 농구를 비롯한 다양한 운동에 개별적으로 적용, 각 운동에 적합한 신발을 만들어내는 작업에도 고심했다.
신발에 용수철을 단다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벌써 100년 이전에 고안된 아이디어다. 나이키사는 1984년 회사를 방문한 고(故) 토머스 맥마흔 전 하버드대 응용역학 및 생물학 교수로부터 육상 트랙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아이디어를 들었다. 토머스 맥마흔의 요지는 지면과 마찰을 안정시키는 재료를 넣어 육상 트랙을 만들면 속도를 개선하고 부상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맥마흔 교수는 이와 더불어 용수철을 이용한다면 신발의 성능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도 주었다. 곧 이들은 용수철 신발을 상품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1984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샥스 기본 모델은 운동화라기보다는 마치 중세시대 고문 기구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신발에 부착된 커다란 철재 용수철은 무게가 무거워 안정성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신발 착용시 발 밑에서 용수철이 찔러대는 불쾌한 느낌을 주는 문제점이 있었다.
연구원들은 섬유 유리나 탄소 섬유를 이용해 용수철처럼 탄력이 좋은 신발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테스트마다 하나같이 균열이 생기거나 변형을 보이는 게 아닌가. 1997년, 이들은 마침내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유연한 두 개의 플라스틱 플레이트 사이에 원통형의 발포재 칼럼을 집어넣자는 것. 주요 소재로는 최신 우레탄 발포재를 사용했다.
우레탄 발포재는 요즘 미니밴에서 포뮬러 원 경주용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량의 엔진 마운트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샥스 개발자 중 한 사람인 생체역학 엔지니어 고든 밸리언트에 따르면 우레탄 발포재는 내구성이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이를 입증하듯 발포재 덩어리를 단단한 바닥에 떨어뜨려 보면 금새 튀어 오른다.
샥스는 바로 이런 현상에서 착안한 아이디어 덕분에 탄생했다. 발포재 칼럼이 힘을 받아 압축된 후 탄력에 의해 원래 형태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신을 신은 사람에게 추진력을 제공한다는 것. 이 아이디어는 약 2.54cm 높이의 발포재 칼럼을 사각형 모양으로 배치시킨 런닝화에 딱 들어맞는다. 반면 재빠른 측면 이동이 요구되는 농구와 같은 스포츠에서까지 꼭 탄력있는 신발이 이상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농구선수는 앞뒤로 신속히 빠지면서 코트를 누벼야 하는데 어느 한쪽 방향으로 돌아가면 민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이키사의 농구분야 기술혁신 이사인 딕 올드필드는 “탄력과 안정성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기술 개발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나이키 스포츠 연구소는 바로 그 문제에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20년 전에 설립된 본 연구소에서는 현재 16명의 생체역학 연구원들이 일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기구 중에는 달릴 때 발이 받는 하중을 체중계와 비슷한 원리로 측정해 주는 초정밀 파워 측정 플랫폼, 발바닥 부위별 압력 분포를 도표로 나타내 주는 신발 밑창, 다리 근육의 활동성을 측정해주는 전극, 그리고 달리기나 농구를 할 때 신발의 움직임과 변형 정도를 촬영하는 고속 비디오 카메라 등이 포함돼 있다.
연구소에서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여 분석한 결과 샥스에 들어있는 발포재 칼럼은 농구 같은 격렬한 동작이 있는 경기에는 다소 불안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엔지니어들은 칼럼의 길이를 줄이고 안쪽을 깎아보았다.
힘을 받을 때 칼럼이 안쪽으로 압축되도록 함과 동시에, 상부 플레이트와 하부 플레이트의 재질을 강화시켜 두 플레이트를 연결하는 덧띠를 뒤쪽에 대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농구와 달리기를 모두 할 수 있는 크로스 트레이닝화에 들어가는 칼럼의 길이는 중간 정도. 런닝화에 비해 칼럼 폭은 넓다.
샥스 디자이너들은 현재 각 신발 사이즈에 적합한 다양한 크기의 칼럼도 개발해 놓은 상태다. 가장 먼저 선보일 모델은 농구화로서 이미 11월 20일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뒤따라 런닝화가 12월 6일에, 크로스 트레이닝화는 12월 20일에 출시된다. 가격은 세 모델 모두 150달러. 나이키 사 엔지니어들은 발포재 칼럼의 사이즈와 모양, 상하 두 개 플레이트 특성을 바꾸어 주는 것만으로도 샥스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각 개인 선수들의 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100퍼센트 조율 가능한 신발을 생산하는데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됐다고 자신한다.
현재 나이키사는 고객 각자가 원하는 운동화를 디자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 현상소에서 필름을 현상하는데 걸리는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완성된 운동화를 받아볼 수 있는 미니 공장 건설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또 다른 계획은 에어 스프링 모델 때와 마찬가지로 샥스의 기술을 다른 부품에도 확장 응용하는 것이다.
밸리언트는 “모든 분야에서 파격적인 기술 혁신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예로, 엔지니어들은 요즘 발 앞쪽에 쿠션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크기를 줄인 칼럼을 실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드러나 보이는 뒷창 칼럼은 운동화 패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의 노스 센트럴 칼리지에 위치한 육상화 소매망 연구개발 센터의 톰 브루닉 이사는 역학적인 발포재 칼럼이 ‘혁신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샥스의 전망이 매우 밝다고 확신한다. 그는 착용 테스트 프로그램을 감독했던 사람으로 샥스를 신고 달렸던 사람들이 보인 긍정적 반응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