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일 서울대 재료공학과 교수

한국과학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주관하고 과학기술부와 한국방송공사(KBS)가 후원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2월 수상자(47회)는 초전도체가 아니면서도 절대열기전력이 없어지는 세라믹 물질을 발견, 재료공학 분야의 새로운 응용분야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은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유한일(柳漢一·49)교수에게 돌아갔다. 유 교수에게는 상패와 트로피 그리고 1,000만원의 상금이 전달됐다.

이론으로만 존재해온 물질 세계 최초 발견 ‘키메라’
그리스어로 반인반수(半人半獸)를 의미하는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자의 머리와 양의 몸, 뱀의 꼬리를 가진 괴물이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두 종류 이상의 개체에서 만들어지고 두 가지 모순된 성질을 가진 물질을 ‘옥시모론’(Oxymoron)이라고 한다. 그러나 옥시모론은 난폭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키메라와는 달리 두 가지 물질의 장점만을 모은 물질을 일컬었다. 오랫동안 옥시모론은 이론으로만 존재해오면서 과학자들은 이 옥시모론을 기다려 왔다. 서울대의 유한일 교수는 아주 우연하게 이 옥시모론을 찾아냈다. 유 교수는 전형적 세라믹인 티타늄산화물(Ti3C)과 규소탄화물(SiC) 사이에 새롭게 만들어낸 ‘티타늄규소탄화물’(Ti2SciC2)이란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던중 이 물질이 바로 ‘옥시모론’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금속과 세라믹의 장점만을 가진 그야말로 옥시모론이었던 것이다.

열전현상 응용·공학분야 획기적 전기 - Nature지 보도
유 교수는 열기전력에서 힌트를 얻었다. 모든 물질은 양끝에 서로 다르게 열을 가하면 내부에 기전력이 생기는데 전기를 가했을 때 물질이 뜨거워지는 것도 열기전력 때문이다. 그러나 초전도체에서는 열기전력이 없다. 전기저항이 ‘0’이 되기 때문이다. 열기전력은 물질이 초전도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유 교수는 티타늄규소산화물에서 열기전력이 0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다결정구조를 가진 세라믹 물질인 Ti2SciC2의 열기전력 측정 결과 실험 오차 실온인 섭씨 20°∼ 550° 범위내에서 온도차에 따른 전위차가 생기지 않는 현상, 즉 제백(Seebeck)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회로분야, 열전지 등 응용분야 넓어
유 교수는 “처음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 뭔가 잘못됐다고 판단해 여러 차례 실험을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며 발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이론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이니 유 교수가 당황했던 것은 당연하다. 유 교수는 “전위차가 생기지 않는 현상은 확인된 것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새로운 물질은 세라믹인데도 불구, 전기전도도가 전 온도 범위에 걸쳐 금속인 구리에 버금가며 열전도도 역시 금속만큼 높다. 게다가 파괴인성과 강도, 내열충격성 등 기계적 특성은 기존의 어떤 세라믹보다도 뛰어나다. 또한 내산화성이 탁월해 윤활유 없이도 선반가공과 드릴링 등 기계적 가공이 가능하다.

보통의 세라믹은 높은 온도에는 잘 견디지만 외부 충격을 받거나 뜨거운 상태에서 갑자기 차가워지면 쉽게 깨진다. 변형도 잘 되지 않는다. 반면 금속은 마모가 잘 되고 높은 온도에서는 쉽게 녹는다. 티타늄규소탄화물은 분명 세라믹이다. 그러나 전기나 열을 매우 잘 통하고 큰 온도변화에도 깨지지 않는다. 실험 결과 티타늄규소탄화물은 전기나 열전도성이 구리만큼이나 우수했다. 세라믹은 잘 깨져 가공하기가 어렵지만 이 물질은 쉽게 깨지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모양으로 가공이 가능하다.
이 같은 우수한 성질 때문에 티타늄규소화합물은 열에도 강하고 마모에도 잘 견뎌야 하는 항공모터나 많은 열을 빨리 뽑아내야 하는 정밀 전자회로, 반도체 리드선, 연료전지 커넥터 등의 소재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온 공학으로 관심분야 확대
유 교수는 새로운 세라믹 신소재의 발견으로 열전현상을 응용·제어하는 공학분야가 발전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또 재료의 열전현상을 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열전특성을 제어할 수 있는 재료공학적 기법을 찾는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연구성과는 재료공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의 학술지 지(2000년 10월 5일자)에 게재돼 전세계 과학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51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유한일 교수는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자랐다. 학업성적이 우수해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로 마음먹고 모 명문고에 응시했으나 쓴잔을 마시기도 했다. 검정고시로 대학 입학 자격을 따낸 유 교수는 명문고 입시 낙방의 쓰라린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울대 입학시험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유 교수는 젊은 시절 어려웠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요즘 이온공학(Ionics)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온공학은 세라믹소재의 새로운 응용분야로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분야. 유 교수가 이온공학분야에서 또다른 옥시모론을를 발견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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