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Bred Hybrids

“왕은 죽었다”고 큰소리치기는 쉽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왕 노릇을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람들은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자동차의 핵심인 ‘내연기관’이 이제는 한물 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마치 “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왕’을 대체하기 위해 나온 다른 엔진들은 사람들을 저으기 실망시켰다. 아무 것이나 왕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계기였다.

하지만 이젠 제대로 된 왕이 나올 듯 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하이브리드 전기 자동차’다. 갓 선을 보인 신형 자동차 중 하나인 이 차는 그만큼 미래 자동차를 선도할 만한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구조와 엇비슷한 피스톤 엔진과 전기 구동장치를 결합해 두 동력원에서 볼 수 있었던 단점을 줄이면서 각각의 장점을 극대화시켰다.

전기 구동장치와 가솔린 엔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이미 시판중이며 앞으로 몇 년 후면 더 많은 모델이 쏟아질 것이다. 혼다의 인사이트와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도심 주행에서 리터당 17.6km라는 높은 연비를 자랑하면서도 배출되는 유독 가스량은 매우 적다. 이 두 자동차가 이렇게 높은 연비를 낼 수 이유는 전기 모터로 움직이는 아주 작은 피스톤 엔진에 탑재한 전기 모터덕분이다. 전기 모터의 동력원은 니켈-금속 하이브리드 배터리 팩에서 나온다. 즉, 인사이트와 프리우스는 따로 전원을 연결하지 않아도 주행중 저절로 재충전이 되는 뛰어난 전기 자동차라 할 수 있다.

인사이트와 프리우스의 공통점은 여기서 끝난다. 엔진룸에 도입된 기술은 상당히 다르며 두 자동차의 개성 또한 천차만별이다. 인사이트는 앙징맞다. 그래서 젊은 부부가 여행 가방을 싣고 부담없이 어디로 훌쩍 떠나기엔 딱 좋은 가볍고 산뜻한 자동차다. 프리우스는 소탈하고 실용적이다. 5인 가족이 편하게 타고 갈 수 있을 만큼 실내 공간이 넓다.

혼다 인사이트는 직류 전기시스템을 사용하며 핵심은 가솔린 엔진의 크랭크축에 직접 장착되어 있는 보조 모터다. 이 모터는 출력을 순간적으로 올릴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속시에는 발전기의 역할을 하여 배터리를 재충전시켜 사용된 전기 에너지로 주행한다. 도요타 프리우스는 서로 독립된 2개의 교류 전기장치를 사용한다. 하나는 인사이트와 비슷한 엔진에 달린 전기모터이고 또 하나는 유성(遊星) 기어장치로 바퀴를 움직이는 보다 강력한 전기모터다. 전자는 피스톤 엔진이 순간적으로 정지·재구동할 수 있게 해주며, 후자는 짧은 구간 동안 차량이 순수하게 전기동력만으로 움직이게 한다. 덕분에 프리우스는 인사이트보다 매연 배출량이 적다. 인사이트도 캘리포니아주에서 초저공해차량(ULEV)으로 인증을 받았지만 프리우스는 한 단계 높은 극초저공해차량(SULEV) 기준을 거뜬히 통과했다. 이 기준을 통과한 차량의 매연은 일반 차량의 10분의 1도 안 된다.

두 자동차의 크기와 무게도 각각 다르다. 알루미늄의 비중이 큰 인사이트는 기름과 각종 오일을 채웠을 때 중량이 겨우 850kg에 불과하고 공기 항력이 극히 적은 경승용차다. 반면 프리우스는 이보다 500kg은 족히 더 나간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동력전달장치가 지닌 장점을 무색하게 한다. 무게가 가벼운 인사이트는 피스톤 엔진으로만 움직여도 높은 연비가 나오겠지만 고속 주행 상태에서 프리우스의 연비는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는 수동식 폭스바겐 제타보다 낮다. 그러나 프리우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가다 섰다를 반복하는 도심 주행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크기와 구동장치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두 자동차의 판매가는 똑같이 2만 달러 안팎. 이는 개발비가 반영되지 않은 액수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낮은 판매가를 책정한 것은 자동차 판매를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방법이었다. 프리우스는 차체도 크지만 전기모터의 파워가 인사이트의 3배나 되며 그만큼 배터리 팩도 크다. 모터가 크기 때문에 무게도 더 나가지만 파워가 강해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두 자동차의 가속 페발을 끝까지 밟으면 소리와 느낌은 많이 다르지만 둘 다 시속 96km의 속도까지 도달하는 데 약 12초가 조금 넘게 걸렸다. 물론 일반 자동차에 비하면 훨씬 느린 가속력이다. 인사이트의 직렬 3기통 가솔린 엔진은 약간 요란하긴 하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프리우스의 엔진음은 아주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실린더가 하나 더 있기 때문에 배기량이 50퍼센트 가량 더 크며 방음 장치에도 신경 썼다. 가속이나 주행 속도와는 상관없이 프리우스의 엔진음은 항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최대한 효율성을 추구하는 유성 자동변속기에 구동축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엔진의 회전수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이한 변속장치와 전기 추진력에 크게 의존하는 시스템 덕분에 프리우스는 지금까지 본지에서 시험 주행한 자동차 중 가장 소음이 적다. 정지중에는 사실상 아무런 소리가 안 난다.

두 차 모두 폭이 좁은 타이어를 쓰기 때문에 주행 저항이 작고, 엔진과 전기 모터와 같은 추진장치들이 앞차축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제동성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무게가 가벼운 인사이트의 경우 시속 96km 속도로 달리다가 정지할 때 평균 제동거리가 39.6m였고 프리우스는 42.9m였다. 지난번 포드 토러스 시험 주행에서는 43.8m였다. 비상시 작동하는 ABS의 경우 다른 일반 차량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평상시의 브레이크 작동 원리는 조금 색다르다. 액셀에서 발을 떼거나 브레이크를 밟으면 전기추진모터가 발전기 모드로 전환해 배터리를 재충전한다. 아쉬운 것은 배터리의 충전 상태에 따라 힘의 배분이 달라져 정확한 감속 효과를 예측하기 다소 어렵다는 사실.

인사이트와 프리우스 모두 긴급 사태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였지만 핸들링에서는 미세한 차이를 보였다. 초경량에 차체가 낮은 인사이트는 이중차선 변경주행 테스트에서 완벽한 안정감을 자랑하는 혼다의 스포츠 오픈카 S2000보다 더욱 날렵했다. 인사이트의 경우 시속 104km였고 S2000는 시속 100km였다. 상대적으로 차체가 높아 불안정한 프리우스는 이 만큼의 순발력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도로 접지력이 양호해 평범한 운전 실력을 가진 운전자에게는 오히려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고속도로로 나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에서는 인사이트의 승차감이 별로 좋지 않으며 운전자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반면 프리우스는 잠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다. 도로에 다소 요철이 있어도 충격을 잘 흡수하며 핸들을 움직이는 대로 잘 따라준다. 두 차 모두 전동식 파워핸들이지만 이 방면에서는 인사이트를 만든 혼다 기술자들이 도요타 기술자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할 듯하다. 9.7m밖에 안 되는 프리우스의 회전 직경도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주목할 만한 수치를 몇 가지 소개하면, 먼저 엔진이 충분히 가열되고 배터리의 충전 상태도 양호할 때 프리우스는 순수한 전기력만으로 시속 48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시속 80km 속도에서는 5명을 태우고 리터당 17.6km의 연비를 보였다.

인사이트는 시속 48km에서 리터당 19.8km의 연비에 가볍게 도달했고 시속 96km에서는 13.2km의 연비를 냈다. 이런 정도의 연비라면 뉴욕에서 디트로이트까지 기름을 가득 채우고 한 번에 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둘 중 과연 어떤 차를 사야 할까? 홀가분하게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는 독신자는 주저말고 혼다의 인사이트를 구입해야 한다.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다 좋은데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뛰어난 연비를 자랑하는 패밀리 세단을 구경하려고 기웃거리는 이웃 사람들 때문이다. 게다가 연신 질문 공세를 퍼붓는 행인들도 있으니 말이다.

혼다의 인사이트 디지털 계기판(위 왼쪽)은 속도와 주행거리를 보여준다. 배터리에 공간을 빼앗겨 적재함(왼쪽)은 오히려 작은 편이다.

도요타의 프리우스 계기판의 화면은 에너지의 흐름과 주행거리를 보여준다. 보고 또 봐도 환상적이다. 후드를 닫으면 대부분의 전자장 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