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과중한 일이 있기 마련이지만 마크 밀리스만큼 무리한 일을 맡은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밀리스는 현재 NASA 돌파추진물리학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다. 동료 로켓 과학자들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는 그의 임무는 인간을 빛보다 빠른 속도로 먼 항성에 보낼 수 있는 우주 항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것도 빛보다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동안 이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비를 지원 받아 온 과학자들은 오는 여름 최초의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영화「스타트렉」을 보면 이 프로젝트와 유사한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우선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부터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가장 빠른 우주선은 1977년 발사되어 지금도 시속 61,760km의 속도로 태양계 밖을 항해하고 있는 ‘보이저 1호’다. 무척 빠른 속도 같지만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거북이보다 느린 속도이다.
거의 4반세기 동안 비행을 계속한 보이저 1호가 지금까지 움직인 거리는 총 118억 4,000만km. 이는 1초에 약 30만km를 진행하는 빛이 11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켄타우루스’는 40조km, 즉 4.3광년 거리에 있다. 다시 말해서 빛의 속도로 최종시간이 아니라 4.3년을 날아가야 겨우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방향을 정확히 잡았을 경우 보이저 1호는 계산상으론 약 8만년 뒤에나 이 별에 도착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우주여행을 꿈꾼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그 뿐만이 아니다. 종래의 화학연료로 빠른 우주비행체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속도를 올리려면 에너지를 계속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잘 알려진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광속에 접근할수록 우주선은 천문학적 에너지를 요구할 뿐 아니라 질량도 커진다. 프록시마 켄타우루스에 10년 내에 도착하려면 우주비행체는 광속의 약 절반 속도로 날아야 한다. 이런 속도에서 무게 1톤의 보이저 우주비행체는 지구를 출발할 때보다 1.5배의 중량을 더 갖게 된다.
하지만 이런 속도에 도달하려면 지금 인간이 한 달 동안 생산하는 모든 에너지를 여기에 몽땅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이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로버트 프리스비 연구원의 계산이다. 우주왕복선에 쓰이는 화학연료 엔진으로는 광속에 도달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물질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추진연료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우주비행체가 광속에 접근하면 더 빠른 속도를 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순식간에 거의 무한대로 폭증하게 된다. 인간이 오늘날 알고 있는 물리학이나 확보해 놓은 기술만으로는 빛보다 빠른 여행을 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NASA는 왜 하필 불가능한 일을 목표로 삼았을까? 클리브랜드에 있는 NASA 글렌연구센터 소속의 밀리스는 자신을 ‘시공간의 종합달인’이라고 장난스럽게 소개한다. 그는 질문을 받을 때 항상 이렇게 말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에만 매달려 있으면 결국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죠, 결국 우주여행이란 말은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NASA는 25년 내에 항성간 우주비행에 착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밀리스는 “아주 엉뚱한 발상도 수용하고 탐구하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추진 연료가 아예 필요없거나 아주 적은 양만으로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심지어는 빛보다 빠르게 날아갈 수 있는 우주비행체를 만들 수 있는 획기적인 에너지 생산 방법이다. 그런 우주비행체가 등장해도 가장 가까운 항성까지 날아가는 데는 꼬박 수 년이 걸릴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보면, 중력을 조절한다거나 공간을 휘게 한다거나 우주의 진공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에너지를 활용한다거나 아직 물리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현상에 의존하는 각종 추진시스템을 개발하는 것 등이 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한 번에 진행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밀리스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한 번에 한 가지씩 해결할 수 있도록 전체 프로젝트를 작은 여러 개의 과제로 나누어 놓고 있다.
밀리스는 “이 프로젝트는 욕심 내지 않고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업무를 분담해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 완성된 추진시스템에는 한 발짝도 접근을 하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연구원들의 1차 연구 결과는 공동추진학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우주항공전문가들이 매년 참가하는 이 연례학회는 오는 7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다. 돌파추진물리학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은 연구 제안서들은 올 여름에 2차로 공개된다.
밀리스는 “첫 번째 회의에서는 특히 모든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연구내용이 진척되지 않은 것들은 하나씩 줄여 나간다. 긍정적인 결과가 혹시라도 나오면 이것이 추진장치로서 유용한지를 검토하게 된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현실성 있는 방안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망한 전략을 골라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상당히 흥미있는 연구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워싱턴대학에서는 관성값을 순간적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지 실험하고 있다. ‘관성’이란 물체의 속도를 유지하게 만드는 성질을 말한다.
밀리스와 동료 연구자들은 정상값 부근에서 진동하도록 관성을 ‘교란’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전자기력으로 관성과 중력을 조절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실제로 중력과 전자기력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우주비행체가 관성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 더 적은 에너지로 가속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개념의 골자다.
오는 2003년까지 계속되는 한 연구에서는 일명 ‘영점 에너지’라는 진공 에너지 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이 연구는 위스콘신주 리치랜드 센터의 퀀텀 필즈 LLC와 앨라배마주 헌츠빌의 MEMS 옵티칼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영점 에너지는 다른 모든 에너지가 제거된 진공 안에 남아 있는 전자기력의 임의적인 진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1입방 센티미터의 진공 속에 지구상의 모든 바닷물을 증발시키기에 충분한 양의 에너지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엄청난 힘의 원천이 바로 영점 에너지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심지어 관성의 원천도 이 영점 에너지라고 주장하는 물리학자도 있다. 연구자들은 일단 다른 힘을 배제한 상태에서 순수한 진공 효과만을 식별하는 실험을 통해 과연 진공 에너지가 실재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밀리스는 “진공 에너지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 다음은 그 에너지와 상호작용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 연구는 뉴멕시코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다. 뉴욕주 셰넥터디에 있는 GE 코퍼레이트 R&D 소속의 한 연구원이 하고 있는 전자기력과 공간의 상관성을 조사하는 연구다. 네 번째 연구는 앨라배마주 헌츠빌의 NASA 마셜 우주비행센터가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1992년 처음 발표된 ‘중력과 초전도체의 상관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연구진은 양자 터널을 연구하고 있다. 이것은 증폭매체를 통과하는 빛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규명하는 연구다. 이런 현상은 몇 달 전부터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지만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설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연구의 목적은 이를 설명해보겠다는 데 있다. 이런 기초 연구 영역이 광속의 벽을 돌파하는 신기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좀더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웜홀’을 통한 우주비행을 연구하는 과학자도 있고 심지어 영화 ‘스타트렉’에 나온 공간을 왜곡시켜서 순간적으로 목적지로 이동하는 ‘워프 항법’을 연구하는 과학자도 있다.
1980년대 후반 이론 물리학자들은 웜홀의 존재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웜홀은 우주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을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우주를 한 장의 종이로 생각하고 그 종이를 U자형으로 접었다고 가정하자. 종이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는 U자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두 끝을 잇는 터널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바로 ‘웜홀’이다. 벌레는 종이 위를 기어가는 경우보다 터널을 통해 훨씬 빨리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웜홀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
아직은 아무도 웜홀을 발견하지 못했다. 웜홀을 통해 우주선을 보내는 방법을 알아낸 사람은 더더욱 없다. 5∼6년 전부터 조금씩 거론되어 온 또 하나의 우주 항해법은 ‘워프 항법’이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정상 시공간 안에서는 어떤 물체도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시공간 자체가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팽창 과정에 있는 영역의 시공간은 다른 시공간들보다 빠르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으며, 우주비행체는 시공간 안에서 이 워프에 의해 끌려갈 수 있다. 밀리스는 이를 이동하고 있는 보도 위를 걸어가는 보행자에 빗대어 설명하면서, 이런 상태에서 우주선은 정상 시공간에 있을 때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팽창하는 시공간은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초기 우주를 설명하면서 빅뱅이 일어났을 때 시공간은 광속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고 주장하는 이론도 있다. 물론 워프 항법이 정말로 광속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워프 항법에는 우주선 주위를 두르는 음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밀리스가 이끄는 연구진은 음에너지 없이도 가능한 워프 항법을 모색하고 있다. 수학의 음수처럼 추상 개념에 가까운 음에너지의 존재는 물리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음에너지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연구진은 이 효과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밀리스는 “솔직히 말해 우리는 아직 수학적 호기심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고백한다.
이런 파격적인 우주 항법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인과율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즉, 미래의 누군가로 하여금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는 사실이다. 흔히 들 수 있는 예로, 과거로 돌아가서 ‘내가 태어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밀리스는 “이러한 논리는 관련된 항법들이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며, “우리는 어떠한 결론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NASA 비판가로 유명한 미국물리학협회의 로버트 파크 공보이사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은 밀리스의 연구가 시간과 돈의 낭비일 뿐이라고 공격한다.
허황되어 보이는 느낌 때문에 소수 열광자를 제외하고는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접었지만 밀리스의 동료들은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밀한 과학적 방법을 고수한다. 밀리스는 “성공은 획기적 돌파구를 여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성공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거창한 목표를 앞세우면서 들뜨다 보면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비전을 제시하거나 신뢰감을 주기는 쉽다. 하지만 비전과 신뢰감을 한꺼번에 주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연구에 쏟아 부은 노력은 비록 우주 항법을 개발하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밀리스의 생각이다. “이 모두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여전히 배우는 것이 많다. 가령 양자터널 연구는 컴퓨터 속도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수:장영근 항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