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시빅이 대형 머플러를 달고 로스앤젤레스의 선셋 블루버드 도로를 느긋하게 달리고 있다. 큰 휠에 비해 측면폭이 좁은 광폭 타이어를 장착해서 시빅의 웅크린 듯한 모습이 더욱 돋보인다.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훨씬 더 멋진 차들이 지나간다. 몇몇 차들은 터보충전기를 달고는 4기통의 단단하게 장착된 소형엔진으로부터 최첨단의 높은 회전력을 끌어내는 아산화질소 인젝터로 4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내기도 한다.
외관만으로도 두드러져 보이는 이 차들은 가속 경주용 직선 코스와 원형 코스, 미국 서남부의 스페인어권 지역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경주용 차들이다. 개조된 불량 자동차의 신세대 격에 해당하는 이 수입차들이 캘리포니아의 거리를 질주하는 광경을 보노라면 친숙한 글귀가 떠오른다. 다름 아닌 속도에 대한 탐색인데, 이 속도란 이미 알려진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고 난 다음 원제작자가 상상도 못 해봤을 정도로 차를 몰아붙여 봄으로써 알 수 있는 그런 속도인 것이다.
필자가 시승중인 신형 시빅 쿠페는 혼다의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약간 추가 장치를 단 것으로 치장을 좀 하긴 했지만 평범한 축에 속하는 차이다. 매장에서 구입하는 멋진 개조차라는 컨셉은 한 자동차 회사가 젊은 이들이 주로 중고차를 개조한다는 것을 알고는 새로운 하나의 스타일로서 착안해 낸 결과였다.
혼다의 본거지인 일본의 도치기현이나 미국의 디트로이트 같은 신차 개발의 중심지에서도 마침내 수입 개조차들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마즈다는 올해 자사의 MP3 모델인 프로티지의 출시와 더불어 필자가 지금 거리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을 주 타겟으로 하는 전륜 구동 자동차를 최초로 생산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주로 중고이면서 개조된 아시아 자동차들에 매료된 사람들로 최근에서야 마지 못해 포드사의 ZX3 포커스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다.
본지 취재팀은 현재 시판되고 있는 차종 중 가속용으로 개조된 차량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저렴한 가격에 비해 날렵한 전륜구동 소형차 5종을 분석했다. 앞서 말한 적이 있는 프로티지와 ZX3에다가 닷지 네온 R/T, 폴크스바겐의 터보 비틀, 그리고 공장에서 약간 개조된 혼다 시빅 쿠페의 5종이다. 이 차량들은 모두 가속 성능 옵션을 포함해 2만 달러 선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로사몬드 소재 월로우 스프링스 국제 자동차 경기장의 중간 정비소에 이 차들을 나란히 세워 놓고 보니 선셋 불러바드 질주족의 공격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적어도 시빅과 프로티지의 뒷부분이 치켜올라 간 자세가 눈에 띈다. 시빅의 낮은 라커 판넬과 과대한 배기구, 주문 합금 휠, 그리고 낮은 종횡비의 타이어들은 이 천사들의 도시에 있는 자동차 경주로의 기준에는 그런대로 합격인 셈이다. 시빅처럼 낮은 종횡비에 가장 장식이 많은 스포일러를 트렁크에 탑재한 프로티지는 아마 외관 부문에서는 시빅 다음일 듯 싶다.
잔뜩 치장을 한 네온 R/T는 차에 온통 로고들이 부착되어 있어서 알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이것 역시 그런대로 괜찮은 차로, 세련되고 앞으로 수그러진 외양이 매끈하게 접혀진 유선형 차체의 모서리들로 인해 한층 멋있어 보인다.
신형 터보 비틀도 어차피 비틀 차종이긴 하지만 어쨌든 신형 비틀은 신세대 차이다. 비틀 자동차의 가장 두드러진 외관상의 특징은 감상적인 향수를 자아내며 힘없던 사람들의 방랑과 히피족들의 구호를 아직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하위문화 계층의 대다수 사람들이 구식 비틀 섀시를 이용해 모래언덕용 소형차와 가속 경주용 자동차를 만들곤 했지만, 질주를 한다거나 계기반에 실크 꽃을 놓은 채로 캘리포니아 파모나 가속경기장으로 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터보 비틀에는 최신 정보에 밝은 사람들조차도 예상치 못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가속 성능이다. 터보 충전지는 실린더당 5개의 밸브가 달린 1,800cc 엔진으로 150마력까지 끌어올려 기본적인 115마력 2,000cc SOHC 엔진과 비교가 된다. 터보 비틀은 7.3초만에 시속 96km까지 가속된다.
신형 비틀의 눈길을 끄는 둥근 차체는 1930년식 구형 비틀의 모양에서 힌트를 얻긴 했지만 그대로 본 딴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신형 외부 차체는 상자 모양의 골프(Golf)차에서 채택한 섀시에 얹혀진 것으로 내부 구조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 왔다.
기울어진 앞 창 때문에 좌석 위치가 섀시 중앙으로 이동됨으로써 앞좌석의 실내 공간과 뒷좌석의 상부 공간이 줄어들었다. 운전자와 다른 탑승자 한 사람이 아치형 지붕 아래 왕좌에 앉듯이 자리를 잡는다. 좀 떨어져 있는 앞유리를 통한 전방 시야가 좁아 익숙해지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터보 충전지와 작은 기류 조정기만으로는 비틀의 주행 성능을 끌어올리기 힘든데다 구동장치 역시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머리가 뒤로 제껴질 정도의 가속도 쉽게 되지는 않는다.
전속력으로 달리면 차체가 좌우로 흔들리기까지 했다. 일단 트랙에 올라 장애물 사이를 달리면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바퀴가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럴 때마다 차체가 좌우로 크게 기우뚱거렸고, 가속 페달이나 급브레이크를 사용하면서 급격히 변속하면 앞뒤로의 요동이 심했다. 특히 코너를 돌 때 비틀은 차체 뒷부분이 흔들리는 불안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공기역학적으로 설계된 유선형 구조로 인해 횡풍에 의한 흔들림이 오히려 심했고, 울퉁불퉁한 노면에선 앞부분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차의 서스펜션 시스템은 노면이 고르지 못한 도로보다 고속도로에서 진가를 발휘하도록 되어 있다.
닷지 네온 R/T는 비틀과 마찬가지로 움직임이 둔한 소형 자동차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벌레의 눈처럼 생긴 헤드라이트를 단 깜직한 컨셉트카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된 R/T는 좀더 중후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 태어났다. 닷지측은 개발 기간동안 승차감을 높이고 엔진 소리를 최소화해 실내 소음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
네온 R/T와 스타일이 돋보이는 터보 비틀을 나란히 세워놓고 비교하면 네온의 고전적이면서도 컴팩트한 외형이 더욱 돋보인다. 좁지만 다섯 명까지 태울 수 있는 R/T를 운전하면 매일매일의 운전이 즐겁다. 비교적 섀시가 튼튼해 안정감이 있고 운전하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핸들은 육중한 반면 정교하다. 150마력의 2,000cc SOHC 엔진을 장착해 R/T는 비교해 본 5종의 차 중에서 두 번째로 우수한 가속 성능을 보여 준다.
포드의 ZX3 포커스는 세련된 유럽풍 감각의 3도어식 해치백이다. 박진감 넘치는 외관과 푹신하고 편안한 좌석이 달린 깔끔한 스타일의 고기능 실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130마력의 2,000cc급 DOHC식 직렬 4기통 기본 엔진에 5단 수동 변속기를 장착해서 LX와 SE 포커스 세단의 110마력 엔진보다 훨씬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속도면에서는 가장 뒤졌다.
ZX3는 포커스 세단의 대표적인 장점을 그대로 계승했다. 이 차는 짧은 축거로 인해 조종이 쉽고 승차감이 매우 뛰어나다. 지붕과 좌석 높이가 모두 높아져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핸들도 매우 민감하다. 다만 승차감을 높이기 위해 서스펜션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코너를 돌 경우나 브레이크를 많이 사용하는 경우 차체가 심하게 좌우로 흔들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포드는 올해 말 160마력의 서스펜션을 개선한 ZX3 SVT 모델을 약속대로 선보일 계획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자사의 자동차 개조를 거리에서 볼 수 있듯이 일시적 유행 차원에서만 지원을 하고 인정하는 정도의 선에 머무를 것이다.
수입차 개조 열풍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혼다조차도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본지가 테스트해 본 시빅 EX 쿠페는 혼다측에서 개조를 해 준 것으로, 시제품 스프링과 일본 시장 판매용 충격방지기, 2000 시빅 시의 후미 기류조정 바를 장착했다. 외부는 에어쿠션 부품들로 개조되었고, 내부는 탄소 섬유로 마감하고 앞쪽 계기반에는 CD가 6개까지 들어가는 CD 체인저가 장착되었다. 이 차는 현재 생산되지 않지만 3,500달러 정도의 옵션을 추가하면 비슷한 사양을 뽑을 수 있다.
그 결과 거리 유행에 민감한 열성팬들도 만족할 만한 깔끔한 자동차가 탄생했다. 지면에 가까운 마감재에도 불구하고 고속 도로의 승차감도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서스펜션을 개선한 것이 핸들링에서 상당히 좋은 결과를 낳았다. 127마력, 1,700cc의 SOHC 엔진이 기분 좋은 소리를 냈지만 가속 시간은 중간 정도의 수준이었다.
접지력이 우수한 타이어와 개선된 서스펜션 시스템은 트랙에서 발군의 성능을 발휘하며, 전반적으로 정밀한 핸들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타이어 교체와 여러 부분의 개조를 고려해 봤을 때 주행반응은 기대에 약간 못 미쳤다.
마즈다 프로티지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130마력의 엔진으로 약간 힘이 부치는 이 자동차는 로스앤젤레스 국제쇼가 끝난 직후 우리가 받았을 때는 사실상 재고품에 가까웠다. MP3는 140마력의 엔진을 장착하고 올해 말부터 판매가 시작된다.
한편, 취재팀은 줄곧 음향 시스템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빛이 나는 푸른색 돌고래 모양으로 최초로 생산된 MP3 음향 시스템에 장착된 계기반을 가로질러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이 MP3의 돌고래는 자동차를 시운전 해보기도 전에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좌석은 단단한 경주용 시트로 마감하고, 발바닥만 사용해 움직이는 전통적인 알루미늄 브레이크와 클러치 페달이 달려 있다. 힘은 떨어지지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엔진과 부드럽게 튜닝된 서스펜션 시스템간의 비교를 통해 뚜렷하게 나뉘는 성능 측정 결과가 나왔다. 가속 부문에서는 끝에서 두 번째였던 MP3가 핸들링 부문 점수에서는 2위와 큰 격차를 보여 주었다. 단순한 수치 이상으로 MP3는 급선회 성능과 그립 끝부분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균형감을 자랑한다. 이러한 서스펜션 튜닝은 마즈다의 오랜 서스펜션 전문업체인 레이싱 비트사가 한 것으로 최고의 속력을 내는 스포츠카의 서스펜션에 견줄 만하다. MP3의 우수한 음향 시스템과 핸들링 성능은 파워 부족과 약간 답답한 느낌을 주는 외관을 상당 부분 보완해 준다.
사실, 테스트한 5대중 3대는 올 여름에 대대적으로 개조되어 성능이 크게 개선될 예정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메이저 자동차업체들이 개조전문 카센터 앞에 줄지어 늘어선 자동차 매니아들의 취향에 맞게 외관을 바꾸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폴크스 바겐은 유머감각이 뛰어난 자동차를 잘 만들기로 정평이 나 있다. 서스펜션 시스템 보강 작업이 진행 중인 대형 엔진과 꽃병을 연상시키는 외관은 폭크스바겐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포커스 ZX3은 아직 개발이 모두 끝난 것이 아니므로 압도적인 로드카에 기초하여 성능을 향상시킨 변형차로 탄생할 여지가 남아 있다. 네온 R/T는 주로 외관에 비해 힘과 단정함을 갖춘 정통 4도어 세단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혼다는 세련되고 시원한 모습이지만 날렵함이 떨어진다.
그러고 보니 마즈다가 엔진 블록과 같은 부품을 조금만 바꾼다면 MP3는 바로 전시장을 벗어나 거리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말이다.
<감수:조영우 현대 자동차 파워 트레인
연구소 책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