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y Secrets of the CIA

버지니아주의 가로수가 늘어선 평범한 랭글리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여러 개의 검문소를 지나 도착한 곳은 「조지 부시 빌딩」. 바로 전세계의 광범위한 정보 네트워크가 집결된 CIA 본부가 있는 곳이다. 네트워크를 통해 흘러 들어온 각종 정보는 첩보요원들에 의해 분류, 분석된다.

비밀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정보부 구내에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다소 의외지만, 예상대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Popular Science」취재진은 안내인의 입회 하에 이곳을 둘러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지금 박물관은 두 가지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하나는 「최고의 스파이」라는 책을 쓴 키스 멜턴이 그동안 수집해 온 첩보관련 물품전시회이며, 또 하나는 제2차 세계 대전중 전략사무국(OSS)으로 출범,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성장을 거듭해온 CIA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다.

전시회를 주관한 토니 힐리 소장은“우리는 50년의 역사를 가진 조직”이라며 “젊은 직원들이 많이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50년 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아는 것뿐 아니라 CIA는 물론 동맹국과 적성국이 그동안 개발, 사용해온 첩보용품이 이 박물관에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 영화 「007」에 나오는 가공의 무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첩보장비 제작자들에겐 영감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첩보원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실전에서도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가장 큰 관건이다. 실전에서 그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 첩보 장비 몇 가지를 이제부터 소개한다.

U-2 스파이기
1960년 5월 1일, 미군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는 고공 비행 능력을 가진 U-2B 스파이기를 몰고 파키스탄의 공군 기지를 이륙했다. 그의 임무는 3천 마일의 소련 영공을 가로질러 노르웨이에 착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임무를 완수하기는커녕 소련 미사일에 격추 당한 뒤 포로로 붙잡혀 소련 법정에서 간첩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개발에 들어가 록히드사의 비밀 항공기 개발 공장 스컹크 웍스에서 제작된 1세대 U-2 스파이기는 21,000m 이상의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U-2 조종사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압력 비행복을 착용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비행복과 촬영에 쓴 필름, 헬멧 등은 파워스가 당시 비운의 비행에 나서면서 썼던 것과 유사한 것이다.



1. 비상 탈출 지원장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조종사는 중요한 작전에 나섰다가 적 후방에서 격추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 공장에서 쏟아지는 비행기 생산량에 비해 이를 몰 조종사가 턱없이 부족했던 미국 입장에서는 격추당한 조종사가 적에게 붙잡히지 않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다. 설령 붙잡혔다 하더라도 무사히 탈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 OSS는 격추당한 조종사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비상 나침반과 지도를 제작했다. 나침반은 단추나 허리 벨트, 심지어는 펜 뚜껑에다 숨겼다. 지도는 트럼프 카드속이나 옷안에 숨겼다. 비단으로 만든 지도는 깨알같은 글씨를 선명히 인쇄하거나 펼치고 접을 때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다.

2. 마이크로 필름
고전적인 첩보 영화나 첩보 소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마이크로 카메라는 실제로 있었고 빼낸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교묘한 수단이었다. 막대한 양의 정보를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크기까지 줄일 수가 있었다.
이런 초소형 카메라는 냉전 시대에 미소 양 진영에서 모두 사용했다. 워낙 작은 카메라여서 아무 데나 쉽게 숨길 수 있었다. 마이크로 필름을 주로 많이 숨긴 곳은 우표 뒷면이나 엽서의 얇은 겹과 겹의 틈새였다. 1급 정보가 담긴 필름은 일반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3. 몰래 카메라
냉전 시대에 KGB는 F-21이라는 유명한 카메라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1948년에 처음 나온 F-21은 1980년대까지도 KGB 2국과 7국에서 사용했다. F-21은 스프링으로 움직이는 모터가 촬영이 한 번 끝날 때마다 필름을 앞으로 밀어준다. 28mm 렌즈로 가로 8cm, 세로 5cm 정도의 사진을 찍었는데, 특수 박막 필름을 사용해 한번에 100장까지 찍을 수 있었다. 크기가 작아 몰래 사진을 찍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KGB는 렌즈 크기를 조정하거나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원격 조종장치를 이용,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갖 물건 속에 F-21을 숨겨놓았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중에는 올림픽 휘장이 새겨진 허리 벨트에 감추기도 했다. 원이 여러 개 그려진 올림픽 휘장은 워낙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어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4. 장비사용 매뉴얼
미국이 성능이 한층 향상된 특수 카메라와 무기, 각종 은닉 장비 등을 쏟아내면서 첩보요원들도 이젠 특정 임무에 맞는 장비를 선택할 폭이 넓어졌다. 그러나 첩보당국의 입장에서는 요원들이 첨단 장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 본부에서 수천km나 떨어진 곳에서 활동하는 해외 요원의 경우는 더 그렇다.
OSS는 시어즈 앤드 로벅 백화점의 카탈로그에서 힌트를 얻어, 첩보원이 알아야 할 최신 장비 사용법을 상세히 설명한 매뉴얼을 제작했다. 최초의 매뉴얼은 1944년 7월에 제작되었는데 이 안에는 각종 장비의 그림과 성능, 사용법이 적혀 있었다.

5. 접선 도구
냉전 시대의 스파이에게 가장 힘든 일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수집한 정보를 담당관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얼굴이 알려진 정보 담당관과 직접 만났다가는 들통이 날 염려가 있었으므로 감쪽같이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리 약속해둔 장소에서 정보나 귀중한 물건을 실수로 떨어뜨린 척 하고 집어가는 방법이 애용됐다. 떨어뜨린 물건은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끌지 않으면서 자연재해로부터도 안전해야 했다. 첩보원들은 굵은 대못을 땅에 꽂아두거나 녹슨 볼트를 울타리나 건물 벽에 박아두기도 했다.




1. 미니 오토바이
낙하산을 타고 적진 후방에 침투한 사람은 당장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오토바이를 챙겨 가는 경우도 있었다. 영국 특수작전대가 2차 대전중 사용한 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웰바이크 오토바이는 38cm의 높이에 길이가 130cm에 불과했다. 무게 31kg의 이 오토바이를 접으면 어뢰 모양으로 생긴 일반 낙하산 배낭에 쏙 들어간다. 지상에서는 98cc의 2기통 엔진을 달고 낙하 지점에서 최고 시속 48km로 144km의 거리를 주파할 수 있었다. 상당히 빠른 탈출 수단이었던 셈이다. 전쟁이 끝난 다음 일반인에게도 판매되었지만 인기는 끌지 못했다.

2. 문제의 ‘도청기’
1945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기념하여 러시아 어린이들이 소련 주재 미국대사에게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아름답게 새겨진 도장을 선물했다. 이 선물은 대사 집무실 책상 위에 놓여졌다. 그런데, 도장의 빈 공간에 숨겨져 있던 도청기는 7년 동안 미국 대사의 집무실에서 오갔던 대화를 단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KGB로 전송했다. 미국 대사관은 1952년 간신히 그 사실을 발견했지만 CIA는 ‘도청기’의 작동 원리를 파악해내지 못했다.

영국 첩보기관 MI5는 이 도청기가 세계 최초의 수동 공동(空洞) 공명기(共鳴器)임을 밝혀냈다. 커다란 도장의 독수리 부리에 난 작은 구멍으로 소리가 들어가면 이것이 다시 실린더 모양의 통 끝에 뚫린 여러 개의 구멍을 통해 공명기 안으로 들어간다. 공명기 안에서 소리가 진동하면 바닥에 있는 긴 안테나에 걸린 전하가 바뀐다.
근처 건물에서 발사한 고주파는 안테나의 전하 상태를 파악하고 반사된다. 반사된 전파를 분석해 소리로 재합성하는 것이다. 지금 박물관에 전시된 것은 실물을 정교하게 복제한 것이다.

3. 냄새를 쫓아가라!
냉전이 한창이던 어느 화창한 봄날, 동독에 있는 한 아파트 문을 열고 누군가 밖으로 나간다. 미로처럼 꾸불꾸불한 도시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감시자를 따돌리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누군가를 미행하는 데 반드시 깨알같이 작고 정교한 전자장비를 이용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동독의 국가안전부, 일명 ‘스타시’는 일종의 생화학 추적 장비를 동원했다. 바로 암캐의 호르몬이었다. 독일 셰퍼드 암컷에서 추출한 호르몬을 미행 대상자의 집 앞 매트나 자전거 바퀴, 아니면 몸에다 직접 뿌려놓는다. 그러면 기관원들은 수컷 셰퍼드를 앞세우고 용의자가 간 곳을 귀신처럼 알아낼 수 있었다. 이 냄새는 워낙 지독해 며칠이 가도 남아 있다. 스타시는 호르몬을 10여 가지 냄새로 변형시키는데 성공하여 여러 용의자를 동시에 뒤쫓기도 했다.

4. 위장 송신기
중무장한 적 수송대가 무기와 탄약을 가득 싣고 달빛 한 점 없는 캄캄한 흙길을 덜컹거리며 달린다. 몇 km 떨어진 원격 수신기지에서는 적의 이런 동태를 훤히 파악하고 있다. 이 위장 지진 탐지 침입 장비는 1970년대부터 개발돼 현지 지형에 맞게 제조됐다. 돌이나 마른 진흙처럼 생긴 이 장비는 반경 300m 안에 있는 보행자나 차량의 움직임을 탐지, 내장된 2극 안테나를 통해 채취한 정보를 암호화된 무선 신호로 보냈다. 3개의 수은 전지로 돌아가는 이 송신기는 전략 지역에서 의심을 받지 않고 적의 동태를 감쪽같이 파악하는 데 적격이었다.

5. 목장 처녀의 유품
버지니아 홀이라는 여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측에선 알려지지 않은 영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사냥중 사고를 당해 왼쪽 무릎을 절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전 그녀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그녀는 프랑스 시골의 한 목장에서 젖을 짜면서 첩보원으로 활동한다. 홀이 무전으로 보낸 정보는 연합군이 상륙 작전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홀은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OSS의 작전담당관으로 임명되었다. 홀의 유품은 그녀의 조카인 로나 카틀링으로부터 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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