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기술연구원 한장선 박사

“혼자만의 수상이 아닌 팀 전체의 수상이라 생각합니다.”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7월 수상자인 LG화학기술연구원의 한장선 박사는 수상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한장선 박사는 새로운 유화 중합방법을 도입, 고급인쇄 용지의 코팅층에 사용되는 효율성이 뛰어난 바인더(Binder: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한 공로로 상을 수상했다.

기존 제품보다 20%이상 우수
신문과 잡지, 카탈로그 등 거의 모든 인쇄물은 기본적으로 ‘오버코팅(overcoating)’의 과정을 거친다. ‘오버코팅’이란 돌가루에 탄산칼슘을 섞어 종이 위에 발라 광택을 내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오버코팅 과정은 돌가루를 종이 위에 효율적으로 발라내지 못함은 물론, 광택성도 떨어지는 등 단점이 많았다. 하지만 한 박사가 개발한 접착기술은 접착효율이 좋은 동시에 광택성도 우수한 것이 특징.

코팅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선 만만치 않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기본적으로 코팅지의 물성(성질)에는 광택과 접착력, 잉크 침투속도, 인쇄후의 광택 등이 있는데 이러한 물성들은 서로의 반대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접착력이 높아지면 광택이 떨어지는 등 모든 물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더욱이 LG화학이 94년 고급인쇄용지 코팅층에 사용하는 고효율 바인더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이미 관련기술에 있어 40년 이상 축적 노하우를 가진 다우, 라텍시아, 바스프 등 막강한 외국업체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회사의 우수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터라 이러한 회사들을 따라잡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10년도 채 안돼 우수기술 확보
외국업체들의 40여 년에 걸친 노하우 등에 맞서 96년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들어간 한 박사는 예상대로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외국업체들과의 격차를 줄이기는 커녕, 실험을 해도 아이디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 박사는 “마치 마라톤을 뛸 때 선두가 너무 앞질러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과 비슷한 심정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한 박사는 일을 차근히 풀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바인더의 접촉효율을 높이기 위해 바인더의 입자크기를 0.1㎛(1만분의 1mm)로 줄여 나가기 위해 펄프에 접착제를 붙일 때, 결합제 역할을 하는 ‘SB(Styren Butadiene) 라텍스’를 개발, 유화종합기술을 통해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자가 작아질수록 펄프층에서의 유실성도 높아졌다. 한 박사는 유실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인더 입자의 셀(cell)을 정전기적 특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코어-쉘(Core-Shell)’이라는 이 기술은 마치 양파의 속껍질이 계속 붙어있는 것처럼 정전기 특성을 갖게 하는 첨단 기술. 이 기술로 한 박사의 연구는 지난 99년 빛을 보게 됐다. 물성도 20% 이상 증가하는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남아 있는 문제는 광택. 한 박사는 코어-쉘 상태의 입자를 외부에서 안쪽으로 만들어 가는 소위 역상 코어-쉘 기술을 적용, 광택문제를 해결해 목표 이상의 결과를 얻어 내는데 성공했다.

물성 우수해 외국회사 합작제의 쏟아져
LG화학이 94년 일본 제온(ZEON)이라는 회사와 기술협력을 체결, 사업에 본격 진출한 이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많은 우수한 외국업체들을 따돌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경쟁회사가 원천기술 확보에 40∼50년이 소요됐던 것을 고려할 때, 한 박사의 새로운 바인더 생산 및 공정기술은 높은 사실상 사업포기까지 결심했던 회사를 세계 5대 경쟁기업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 박사는 “당시‘경쟁업체’라는 말도 못 꺼낼 정도로 우수한 기술을 하나도 확보하지 못한 열악한 상태에서 출발해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룬 쾌거라서 형언할 수 없이 기뻤다”고 말했다. 상업화가 완료된 지 3년이 지난 현재 LG화학의 생산규모는 연간 생산 3만t에서 6만t 규모로 급증했다. 수출도 98년 3천t에서 작년에는 1만 9,000t까지 늘었다. 올해 수출목표량은 3만 3천t.

한 박사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항상‘고정관념을 뒤집어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팀원들을 격려했다”며“그 결과 문헌에 나오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쌓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험 중 알게된 노하우는 모두 국제 특허 등록을 마친 상태. 지난해 정부로부터 신기술(KT) 인정을 받은 코어-쉘 기술을 비롯, 특허건수도 8건이 넘는다. 현재 세계적인 제지회사들이 한 박사에게 줄을 서 있을 정도다. 심지어 LG화학을 통해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자는 제안까지 받고 있는 상태.

한장선 박사는 현재 코팅의 구조를 예측할 수 있도록 바인더를 조절, 인쇄특질을 더 좋게 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초기단계지만 이 기술이 성공하면 지금의 코팅층의 두께를 줄이면서도 가능한 우수한 물성을 가지게 할 수 있다. 여기에 가장 파급효과가 큰 분야는 IT업계. 전자 및 통신분야의 특수 바인더 개발에 활용도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한 박사는 “지금까지 개발한 기술 뒤에는 묵묵히 연구활동에 전념해준 팀원들이 있다”며 “‘이달의 과학기술자상’도 그분들과 함께 수상한 것”이라고 공로를 팀원들에 돌렸다.
박세훈기자 <isurf@sedaily.com>

PROFILE
1960년 서울생
1983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
198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공학 석사
199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공학 박사
1985년-1990년 (주)럭키중앙연구소 고분자연구부 연구원
1995년-현재 (주)LG화학/기술연구원 기능성 바인더개발 책임연구원
2000년 LG화학 연구개발상 수상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