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산업계를 얼어붙게 한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사고가 난 지 25년이 지난 지금(그 사이 미국에서는 단 한 기의 핵발전소도 허가를 받지 못했다), 핵에너지가 다시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 가을, 미 의회는 새로운 종류의 핵 원자로를 건설하는 11억 달러짜리 프로젝트에 예산을 배정하기 시작할 움직임이다. 새 원자로의 설계 요건은 기존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발전했음을 엿볼 수 있다. 기존 핵발전소보다 더 안전하고 테러의 해를 입을 가능성을 줄여야 함은 물론이고, 여기에 두 가지 의무가 더 추가된다. 전력 생산과 함께 미래의 자동차 연료로 예측되는 수소를 생산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
미국 에너지부가 선도하는 국제 과학자 패널인 ‘4세대 포럼’은 지난 2001년부터 이 계획에 착수, 수백 가지가 넘는 초현대적 원자로 개념을 분석 평가한 끝에 모두 6개로 압축시켰다. 미 에너지부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올 가을 국립 아이다호 공학환경연구소단지 내에 시범 발전소를 건설할 예정이다. 아이다호 연구소 소속으로 핵에너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랠프 베네트의 말에 따르면, 비록 월등한 대안은 없지만 이 중 VHTR(Very High Temperature Reactor)이라는 ‘초고온 원자로’가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이 원자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렬한 열을 발생시키며 냉각하는 데 헬륨을 이용한다. 물로 냉각하는 오늘날의 원자로 방식보다 초고온 원자로는 이의 두 배나 되는 온도인 섭씨 1,000℃에서 가동하게 된다. 에너지부 소속 VHTR 전문가인 사우스워스에 따르면, 다양한 화합물의 화학 결합을 촉진하고 수소를 방출하는 데는 초고온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원자로는 미래의 연료인 수소 생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VHTR 원자로에서 생산되는 강한 열은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 뿐만 아니라, 이를 인접한 수소 공장에 동력으로 보내면 화학 과정을 통해 시간당 10톤의 수소를 생산하게 된다(시범 발전소에서는 2톤의 수소를 생산할 예정). 이 수소 생산 과정에서는 온실 가스가 배출되지 않는다. 사실 온실 가스 배출은 석탄이나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고온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오늘날 수소공장이 지닌 최대 결점으로 꼽히고 있다. VHTR의 장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MIT소속 핵공학자 앤드류 카닥의 설명에 따르면, VHTR은 우라늄 연료의 구조배열로 인해 노심용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기존의 원자로에서는 우라늄을 속이 빈 지르코늄 막대 속에 채워 넣는다. 그런데 혹시라도 냉각제가 새어나가 지르코늄에 불이라도 붙게 되면 자칫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태와 같은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지는 방사선 방출을 불러오게 된다. 그러나 VHTR에서는 우라늄이 ‘자갈밭’(흑연으로 감싼 알맹이 모양의 우라늄을 쌓아둔 것)이나 ‘다면체 블록’(우라늄을 가로세로가 각각 90cm, 60cm인 흑연 육면체 속에 넣어두는 것) 형태가 된다.
지르코늄 대신 흑연을 써서 우라늄을 가두게 되면 스리마일 아일랜드 같은 재앙은 일어나지 않는다. 흑연은 냉각제가 없어도 연소하기는커녕 오히려 핵에서 나오는 열을 더욱 빨리 방출시킨다. 이런 ‘수동적’안전 시스템의 운영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VHTR은 고의로도 파괴하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설계를 채택하건 험로는 예상된다. 당장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선 폐기물의 처리를 놓고 반대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핵발전소 옹호자들은 연방정부가 허용한 네바다 주의 유카산에 폐기하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시범 발전소를 짓는데는 여러 해가 소요된다. 에너지부의 계획은 2015년에 가동을 하는 것이지만 그 때가 되면 수소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도로를 굴러다닐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