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의 깁스만 아니었다면 파울레트 서턴은 사방에 피를 묻히며 한창 작업 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파트너의 작업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한쪽에서는 그녀의 파트너가 피 묻은 어깨를 벽에 부딪쳐가며 손과 무릎에 피를 떨어뜨리고 더러운 카펫 위를 기어가면서 손자국을 남기고 있다
서턴은 “이렇게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요.”라며 투덜댄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혈흔패턴분석가인 서턴은 지난 6개월간 미국 전역을 오가며 혈흔을 남기고 있다.
그녀는 미국법무연구소와 테니시 대학의 후원을 받아 형사나 범죄수사관을 대상으로 혈흔이 증거자료로써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교육 중이다.
서턴의 말에 따르면, 그 특성상 그릇된 오해나 통념에 젖기 쉬운 분야가 법의학이기 때문이다.
서턴은 멤피스의 쉘비카운티에서 27년째 재직 중인 베테랑 의료검사관이다. 북미에서 혈흔패턴분석의 아버지라 불리는 허브 맥도널은 “서턴은 거의 나만큼이나 훌륭하죠.”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곧 서턴은 베스트 2나 3이라고 신중한 평가를 내렸다.
다리 깁스를 벗고 똑바로 선 서턴의 키는 167cm로 훤칠하다. 얼굴에는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짧고 숱 많은 회색 머리가 볕에 그을린 얼굴 윤곽선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날 서턴은 늘어난 다리 인대 때문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파트너인 스티브 니콜스 옆 보조석에 얌전히 앉아 있어야만 했다. 서턴과 함께 출장을 갈 때면 니콜스는 범죄독물학자로 활약한다.
하지만 오늘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렉싱턴 외곽에 방치된 학교 담장에서 잭슨 폴락이 될 예정이다. (수의학과정을 이수할 당시 서턴과 니콜스는 말의 피를 신선한 물로 희석시켜서 인간의 혈액과 밀도를 동일하게 맞춰 대용했다.)
“좀 더 동맥에서 뿜어 나오는 것처럼 만들어봐.” 서턴의 말이다. 아직도 강하게 뛰고 있는 심장의 동맥에서 뿜어 나오는 파도 형태를 표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동맥 특유의 특징이 있지요.”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하얀 멜빵바지에 보라색 수술용 장갑을 낀 서턴은 니콜스의 작품을 마무리 지어야겠다며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갔다.
그녀는 플라스틱 공구함을 열고 탄창과 머리카락, 작은 술병들이 흩어진 곳을 지나 가짜 손톱과 카드, 위조화폐를 모았다. 그리고 모은 물건들에 피를 묻히고 손가락으로 튕겨 마루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버려진 교실에 살인사건현장 6개를 만들면서 서턴은 “보통 한 팀 정도 실패하지요.”라고 말했다.
내일이면 여섯 팀의 경찰들이 나와 현장을 검증하고 서턴의 가르침을 적용해 사용된 무기와 범인의 수, 공격 각도, 사건진행경위 등을 조사할 것이다.
서턴에 따르면 학생들 중에서 경험 많은 베테랑 수사관들이 종종 부정확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릇된 결론을 내놓기도 한다고 한다. 서턴은 최근 빈집에서 술에 만취된 채 발견된 익명의 시체를 그 중 한 가지 예로 들었다.
서턴이 제시한 사진에는 얼굴이 피 범벅인 남자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움직이는 무기나 다른 물건 혹은 사람에게 피가 튈 때 생기는 혈흔패턴에 대해 언급하며 서턴은 “한 경찰 부서장은 시체에 버려진 흔적이 없기 때문에 단순사고사라고 주장하더군요.”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살해당하든 사체에 항상 그런 흔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덧붙인다. 서턴은 그 살인사건 현장을 좀더 철저히 조사하면서 피 묻은 탁자 다리와 침대기둥에 관심을 기울었다. 그리고 침대기둥에 피가 튄 각도를 시체의 얼굴과 매치시켜 침대기둥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 무기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불어 바닥에는 탁자 다리로 연속적으로 내려쳤을 때 흘린 피가 묻어 있다.
서턴에 따르면 이런 단순화보다 더 위험한 경우는 지나친 비약으로,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매순간 사건의 경과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혈흔분석가라고 한다.
서턴은 혈흔의 흔적으로 보고 범인이 어느 손잡이인지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장담하는 범죄학자들을 비웃는다.
그녀는 “구타나 자상으로 사람을 죽일 정도의 상황에서는 모두 양손을 사용합니다.”라고 밝힌다.혈흔의 패턴을 읽을 때 한 가지 가정만을 고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서턴은 “때론 좌절감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너무나도 알고 싶은 거죠. 그래서 마구 이론을 세워갑니다. 하지만 훌륭한 과학자라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여러 해석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죠.”
혈흔자국패턴 분석가들은 수학이나 물리를 바탕으로 삼아 매우 상식적이며 과학적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우선 피 한 방울이 유출되면 낮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바닥에는 길게 늘어진 핏자국이 생기게 된다. 그 혈흔의 넓이와 길이에 다소 단순한 삼각법을 적용하면 혈액이 떨어진 각도를 알 수 있으며 일단 그 각도를 알아내면 혈액의 예상발원지를 추적할 수 있다.
과학수사원들은 흩어져 있는 여러 개의 혈흔으로부터 실이나 레이저를 이용, 하나씩 거꾸로 경로를 추적하여 그 경로들이 서로 교차되는 지점인 예상발원지를 찾아낸다. 이렇게 실이나 레이저로 그린 일직선으로 혈흔이 그린 대략적인 포물선을 알아내는데, 이는 실제발원지가 항상 이 예상발원지와 동일지점이거나 그보다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서턴은 이렇게 일직선이 만들어낸 가능과 불가능의 분리선은 혈흔분석의 진정한 가치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즉 거짓을 드러내고 진실을 확인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수사관들에게 새로운 각도에서 질문을 제기하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왜 이런 질문은 하지 않는가 하면서 수사관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으니까요.”라고 서턴은 말한다.
때로는 베테랑조차도 드러난 진실에 놀랄 때가 있다. 서턴에게 가장 놀라웠던 사건은 1999년 열렸던 제임스 버드 살인범 재판으로, 일년 전 잔혹하고도 엽기적인 방법으로 제임스 버드를 살해했던 범인 세 명중 한 명인 숀 알렌 베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당시 베리는 자신은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단지 친구들을 말리다가 오히려 협박만 당해 트럭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고 주장했고, 변호인단은 서턴이 알렌의 주장을 입증해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범인은 버드를 심하게 구타한 후 트럭에 매단 채 팔과 머리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3마일을 차로 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베리는 사건이 끝나고 오후가 되서야 친구들을 만났으며 자기 청바지에 묻은 핏자국은 피로 범벅이 된 친구들의 트럭과 체인을 스플래쉬 세차제로 닦아주는 와중에 묻은 것이라고 증언했다.
서턴은 “사실 저는 베리가 거짓 증언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고 싶었지요.”라며 어느 정도 자신의 선입견을 인정했다. 그녀는 우선 사건 당시 베리가 입었던 것과 동일한 색상의 중고 청바지를 가져와 피를 뿌리고 쥐덫을 이용, 구타했을 때와 동일한 혈흔 자국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스프레이를 이용해 피해자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처럼 빠른 속도로 분사되는 핏자국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옷에 묻은 혈흔을 씻어내, 베리가 입었던 청바지에 남아 있던 것처럼 크고 비교적 밝은 색의 핏자국이 생기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청바지에 묻은 피가 응고되고 거기에 다시 수분을 가해주면 혈흔의 바깥 테두리에 어두운 색깔로 고리 모양이 형성되더군요.”
이번에는 더 많은 청바지와 굵은 체인, 스플래쉬 세차제를 준비했다.
우선 바닥깔개 선반에 깨끗한 청바지를 걸어 놓은 다음 다리 부분을 비닐로 감싼 종이타월로 채웠다. 그리고 그 앞에 피가 묻은 체인들을 늘어놓고 마지막으로 높은 수압의 물줄기를 체인에 뿌렸다.
거센 물줄기로 인해 체인에서 청바지로 튀어 묻은 피는 베리의 바지에서 발견된 혈흔과 그 크기와 농도가 동일했다.
그러나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던 서턴은 트럭을 세차할 당시 누가 무엇을 했었는지 베리에게 질문하라고 변호인에게 요구했다. 만약 증언이 거짓이라면 베리가 올바른 답을 말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혈흔 증거들의 강점이기도 한다. 베리는 룸메이트 빌 킹이 맥주캔을 멀리 던져버리고 트레일러에서 피 묻은 체인 줄을 끌어내고 있을 때 자신은 밖에서 트럭 외부를 닦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킹에게 체인을 씻으라고 물 호스를 넘겼다고 했다.
베리는 체인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고 체인에는 피가 얼마나 묻어 있었을까? 서턴은 알고 싶었다. 베리는 체인에서 매우 가까이 서 있었고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체인은 피 범벅이었다고 대답했다. “그의 증언은 제가 발견한 증거와 일치했습니다.” 라고 서턴은 말한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서턴은 변호인의 증인으로 섰다. 어쩌면 사형을 언도받은 다른 두 범인들과 다르게 베리가 종신형을 언도 받은 데는 서턴의 증언이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