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천달러짜리 맞춤형 자전거

사람들은 사이클용 자전거를 아직도 10-스피드라 지칭한다. 사실 가는 타이어와 드롭바, 하드시트를 갖춘 본격 로드 바이크가 10스피드 수준을 넘어선 것은 존 케리가 대학생이던 시절의 일인데도 말이다. 오늘날 20 기어는 기본이며 30 기어도 시판되고 있으며 경주용 바이크를 구입했다고 해서 실제 레이스에 참가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있어 초경량, 초고속 자전거보다는 랜스 암스트롱이 더 친숙할 것이다. 이러한 자전거야말로 인류가 발명해낸 최고의 스포츠 장비 중 하나인데도 말이다. 자전거는 인간의 힘을 동력으로 한 교통수단 가운데 효율성이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다.

오늘날의 로드 바이크는 소재와 기술, 공기역학 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으나 기본적인 이중 삼각형 프레임 디자인만은 지난 120년간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자전거에 가장 적합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탄소섬유냐 티타늄이냐

하드코어 로드 바이크의 가장 큰 매력은 1/100 정도의 가격에 경주용 차량의 최첨단 기술력을 고스란히 제공한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자전거에 관심을 갖게 되면 하루 종일 탄소섬유냐 티타늄이냐, 베릴륨이냐 마그네슘이냐라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다가 스프로켓의 톱니 수를 세거나 기어 비율을 계산하며 밤을 지새우는 일도 생길 수 있다.

포르쉐 부품만큼이나 값비싼 자전거 부품 카탈로그를 뒤적거리거나 750마력의 경주용 차만큼 섬세한 자전거의 공기역학 세계에 빠져들거나 페블 비치 콩쿠르(Pebble Beach Concours)의 우승차량에 버금가는 패션을 연출하느라 도료 작업 주문에 신경을 곤두세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바이크의 가격이 만만치만은 않다. 최근 딸아이에게 7,250달러짜리 경주용 바이크를 사준 얘기를 친구에게 들려주자 그 친구는 이렇게 외쳤다. “와, 대단한데! 나도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데. 그래, 엔진 크기가 얼만한가?” 아, 약 5.4피트에 115파운드 정도 나가는데……

브룩에게 사준 자전거는 세로타(Serotta) 제품으로 프레임의 경우 사이클 애호가들 사이에서 미국 자전거 제조업체 가운데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이 회사의 수제품이다. 세로타는 뉴욕주의 사라토가 스프링스에 위치한 작은 회사로 연간 2,500개의 프레임을 생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케리는 3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로빈 윌리엄스는 1대, 샤킬 오닐은 약간 더 큰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속품을 사용한다면 총 3,000달러 정도에 최상의 트리플 버트(triple-butted) 스틸 튜브로 제작된 기본형의 세로타 프레임을 구입할 수 있다. 바퀴나 변속기, 체인 링, 페달, 기어 카세트, 브레이크 및 기타 부품의 경우 일본의 시마노와 이탈리아의 캄파뇰로사가 거의 독점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이에 반해 세로타사의 티타늄/ 탄소섬유 소재의 오트롯 프레임(Ottrott frame)에다 각종 부품까지 최고로 구비하려 든다면 적어도 1만 달러 정도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오트롯 프레임에 세트당 4천달러인 탄소섬유 소재의 바퀴와 5백달러짜리 시트 포스트(보통 망치 손잡이 크기만 한 튜브), 기타 각종 부품을 모두 산다면 대략 1만5천달러는 지불해야 한다. 이 가격이면 123마력의 최신형 토요타 매트릭스를 1대 구입할 수 있다. 자전거에 이렇게 많은 돈을 들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세로타 프레임 제작 30시간

최상의 세로타 프레임 제품의 경우 치수를 재고 형태를 만들고 절단하고 갈고 다듬고 접합하고 도료작업을 끝내기까지 30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4만7천달러짜리 메르세데스 벤츠 한 대를 완성하는 데는 고작 20시간이 소요된다. 고로 자전거를 구입하는 편이 오히려 이익이라 하겠다.

세로타의 공장 건물은 농장 뒤 켠에 위치해있다. 건물 정문에서 바로 바깥 시골길로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데 현재 세로타의 직원 절반가량이 이런 식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퇴근시간이 오후 2시여서 누구나 자전거를 탈 여유가 있었으나 요즘은 일감이 많아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로 작동되는 기계 2대에서 스틸과 티타늄으로 복잡한 부품을 연신 찍어낸다. 하지만 일단 공장안에 들어서게 되면 이런 하이테크적 요소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1950년대를 연상케 하는 구식 선반과 드릴 프레스, 연마기, 경납땜 기기와 용접기, 지그(jig) 그리고 이들 설비를 사용해 수작업을 하고 있는 기능공들이 전부다.

세로타 제품을 구입하는 과정은 맞춤 양복을 살 때보다야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까다롭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프레임 제작 시 고객의 체형과 체력, 운전 스타일뿐 아니라 신체치수까지 고려하기 때문인데 이런 사전 작업에는 양복 치수를 잴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사이클에 있어 몸에 꼭 들어맞는 안착감이야말로 경기력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라 할 수 있다.

딸아이와 함께 찾아간 폴 레빈의 “바이크 스튜디오”에서 우리는 몇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이클 애호가인 레빈은 판매는 물론 맞춤 디자인을 위해 고객의 각종 신체조건을 체크하는 일도 직접 하고 있다. 레빈은 녹음이 우거진 뉴욕주 센트럴 밸리의 맥맥션 단지에 위치해있는 자신의 집에서 스튜디오 일을 겸하고 있다. 집안 벽면은 세로타의 각종 클래식 제품과 최신제품으로 장식돼있었다.

우노브테이늄 소재로 제작된 초경량 스템(stem)과 트릭 시트(trick seat), 핸들바(handlebar)도 전시돼있었다. 실내에는 바이크를 연상시키는 값비싼 가구들이 들어차있는데 사이클 관련 책자로 뒤덮인 높이가 낮은 판유리 소재의 커피 테이블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바이크 점포주는 농부

레빈은 세로타 딜러 가운데 고가의 오트롯 제품을 대상으로 가장 높은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백만 달러는 족히 나갈 저택의 융자금을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한때 소매업 분야의 마케팅 컨설턴트로 일한 바 있는 레빈은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바이크나 타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게 목표”라고 한다.

동북부지역의 바이크 판매업자들 사이에서 질시의 대상이 된 레빈은 이런 자신의 처지를 조소하듯 “폴 레빈은 나의 적”이라는 문구가 박힌 사이클용 잡지를 만들어 팔고 있다.

“레빈을 해고시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내지는 더 심한 내용의 글도 곁들어 인쇄한 채로 말이다. “세일즈맨에는 농부와 사냥꾼, 두 부류가 있죠. 바이크 점포주들은 농부 입니다. 경작지를 정해놓고는 곡물이 자라기만 기다리죠. 이에 반해 저는 사냥꾼입니다. 제가 노리는 고객의 특성을 파악하고 마케팅 작업을 하죠. 그런 다음 1대1로 약속을 잡습니다.” 레빈의 설명이다.

레빈은 브룩을 상대로 자전거를 타는 이유가 뭔지, 어떤 방식으로 타는 걸 좋아하는지, 사이클에 있어서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꼼꼼히 질문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병원에서 하듯 검진과정을 거친 후에 마사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신체의 유연성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런 연후 세로타가 개발한 ‘사이즈 사이클’을 타게 했는데 이 장비는 프레임을 맞춤 제작하는 동종업체 사이에서 잇따라 모방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사이클의 프레임은 서포트(support)에 고정된 바퀴 없는 프런트 포크(wheelless front fork)와 뒷바퀴가 동력계(전력량 계기판이 달린 발전기)를 작동시키도록 설계됐으며 각도와 길이, 크기 및 이음매까지 모두 조정 가능하다. 브룩이 평상시 속도로 페달을 밟는 동안 레빈은 프레임의 이곳저곳을 조정했다. “스템의 길이만 늘렸는데도 10와트 이상 향상됐죠?” 작업 도중 레빈의 지적이다.

작업 결과는 각종 수치와 도표로 가득 들어찬 서류 2장으로 정리됐는데 사라토가 스프링스로 보내질 예정이다. 이곳 공장에서는 서류 내용을 토대로 주문자의 체형에 맞게끔 튜브의 8개 부분 길이와 소형 부품 몇 개를 조정하게 될 것이다.

“고객 중에는 1만 달러를 지불하기만 하면 실력이 저절로 향상될 거라 생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가령 평소의 절반만큼만 힘을 들이고도 곱절은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장비란 공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레빈은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바이크는 몸에 맞아야 합니다. 가게에서 멋진 양복을 사는 것과 같죠. 옷이 아무리 좋다 해도 정확히 나를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죠. 잘 맞지도 않을뿐더러 착용감이 떨어지니 입어도 불편할 수밖에 없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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