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예술 과학아카데미 ‘과학 기술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교시절 물리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카데미 과학기술상 수상자들은 시상대에 올라 눈물을 글썽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수효과를 즐기는 영화관객들에게 있어, 이들 영화 과학기술 분야의 천재들이야말로 헐리우드 영화의 숨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2월이면, 로스앤젤레스에서 조촐한 행사가 거행된다. 이 행사는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시상식으로 매우 영광스럽고 뜻 깊은 상을 수여하는 자리다. 바로 과학기술상이다.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하면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 연예들의 인터뷰를 도맡아 진행하는 조앤 리버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행사는 톰 행크스, 브래드 피트,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등 영화배우들이 나오는 시상식이 아니다. 영화인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차편에 몸을 싣는 그 시간, 영화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은 지하실에서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영화제작의 신기원을 열수만 있다면 겉보기에만 화려한 붉은 카페트가 무슨 필요가 있으랴.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기숙사 대소동 5편: 천재들, 할리우드를 접수하다”이라고나 할까?

지난 10년 사이에,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의 특수효과 부문 예산이 5백만 달러에서 5천만 달러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점점 더 정교해지고 간편해진 디지털 특수효과로 인해 디지털 특수효과가 사용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간의 장벽이 차츰 무너져가는 상황이다. 오늘날 영화제작자들은 디지털 특수효과를 이용하여 실체를 교묘히 조작할 뿐만 아니라 무(無)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도 가능해졌다.

“영화감독을 화가에 비유한다면, 이 상은 바로 붓을 공급해주는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라고 과학기술 위원회의 리차드 에드런드 위원장은 설명한다. 따라서 이 상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아주 기발하고 새로운 기술을 선보여야 한다. 그 영향력의 실질적인 파급효과에 따라 상장과 상패 그리고 가장 영예로운 오스카상(彫像)이 판가름 난다. 아카데미는 특정 영화 자체보다 거기에 사용된 기술력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최신 기술보다는 영화계에서 검증받은 기술인지가 더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이 상은 기계적 면에서의 쾌거 즉, 렌즈, 필름, 무대장치 조명 부문에 수여되었지만 2002년 이후부터는 거의 디지털 기술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 상의 개수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의상 디자인이나 최우수상 같이 특별 부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 3개나 수상할 때도 있지만 1개도 없을 때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2004년도 경쟁후보 5명의 핵심 기술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기후 제어 신호를 보내다!
기술: 볼류메트릭 효과
후보: 앨런 캐플러 | 디지털 도메인 스톰
작품: 투모로우,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등
2004년도 상영작 ‘투모로우’ 속 과학은 한마디로 엉터리다. 현재까지 빙하기가 이어지고 있다니? 그러나 어른 주먹만한 우박이 도쿄를 강타하고 뉴욕에 홍수가 뒤덮치는 기후 대재앙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이 영화는 ‘트위스터’의 회오리바람, ‘퍼펙트 스톰’의 폭풍을 훨씬 능가하는 특수 효과로, 재난 영화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며 관객들의 탄성을 이끌어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기상 이변 장면은 바로 아카데미 과학기술상 수상자인 앨런 캐플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수효과 전문업체인 디지털 도메인 캘리포니아 지사, 베니스(Venice)의 기술 감독인 캐플러는 스톰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시각 효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아티스트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볼류메트릭 효과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괴물같이 딱딱하면서도 특정한 형태를 지닌 물체들은 기하학을 이용하면 컴퓨터로 아주 쉽게 표현해낼 수 있다. 그러나 구름이나 안개, 물 같이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기란 이만 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라고 캐플러는 말한다. 스톰은 이처럼 무형의 물질을 고해상도로 만들어내고 거기에 그림자를 입히고 밝기를 조절하는데 아주 뛰어난 프로그램이다. 또한 2002년에 개봉된 빈 디젤의 액션 영화 ‘트리플 엑스’에서 나왔던 것과 같이 질서와 혼돈을 실제처럼 혼합시켜 만든 눈사태 등의 자연 재해를 시뮬레이션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 결과, 영화 관객들은 더 큰 스릴감을 느낄 수 있고 특수효과 전문가들은 오랜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기반으로 컴퓨터 그래픽 처리를 한다.” 라고 캐플러는 말한다. 그는 취미삼아 조가비, 눈송이, 나뭇 잎사귀를 재생하는 프로그램을 고안하기도 했다. 캐플러는 영화 한편이 끝날 때마다 직접 차를 몰고 캐나다 북서지방이나 알래스카로 하이킹이나 낚시 여행을 떠난다. 영화 ‘투모로우’는 자연현상에 대한 그의 집념과 애착이 진가를 발휘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홍수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캐플러는 맨하탄 거리와 빌딩들의 사진을 무려 4만장이나 촬영했다. 그리고 이를 디지털 기술로 조합한 다음 유체역학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노아의 방주에 버금갈 정도의 대규모 홍수가 도시를 집어삼키는 장면을 재현해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정도는 쉬운 작업에 속했다.

거대한 물의 흐름을 사실적으로 살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극도로 세밀한 부분들의 처리 문제였다. 전방을 향해 밀어닥치며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들, 하늘을 향해 휘감아 치솟는 물줄기, 수천 개에 달하는 물보라와 안개 물방울들. 개략적인 홍수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특수효과팀은 ‘미립자’ 시뮬레이션을 가동했다. 수많은 점들이 일정 정도까지는 멋대로 움직이며 흐르게 하고 물의 흐름과 유속의 조절, 바람과 중력 효과를 가미하기 위해 매개변수를 사용했다. 그런 다음 스톰 프로그램에 그 결과물을 입력하면 각각의 미립자들은 ‘복셀’(voxels)이라고 불리는 더 큰 3D 픽셀로 전환된다. 이 부분이 바로 스톰 프로그램의 가장 눈부신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컴퓨터의 과부하 문제 때문에 겨우 수십만 개의 파티클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톰 프로그램의 복셀을 이용하면 시야에 들어오는 수십억 개의 파티클을 조합하여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캐플러가 개발한 것은 복셀 자체가 아니라 대형화면 효과에 필요한 규모의 메모리 절약 압축 루틴이다. 또한 캐플러는 운용자가 이용하기 쉽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사용자가 몇 가지 대략적인 지시사항을 입력하면 프로그램은 캐플러의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그럴듯한 모양의 서로 연결된 작은 물방울을 무한대로 생성해낸다.

그 물방울들의 색깔, 형태, 내부 움직임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리고 물방울 복셀이 광원에 따라 어느 지점에 위치해야 하는지, 또 이를 가로막는 다른 복셀이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처리능력이 뛰어나다. ‘투모로우’에 나오는 홍수장면에서도 주된 물줄기는 어둡게, 파도치며 잘게 부서지는 흰 포말은 반투명으로, 그리고 공중의 물안개는 투명하게 처리했다. 어떤 물 입자에 빛을 가미하고 어떤 물 입자에 그림자를 입힐지 수동으로 일일이 결정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은 핀셋으로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하나하나 들어 옮기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시각효과의 모순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즉, 자연 상태에서 가장 단순한 물질이 합성하기에 가장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물, 눈, 연기, 먼지 같은 것들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 그런 물질들의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거나 그림자 처리가 잘못되었을 경우, 관객들의 뇌는 ‘잘못된 특수효과’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캐플러는 설명한다.



어셈블리가 필요한 몇 가지
기술: 합성 소프트웨어
후보: 데이비드 사이몬스 | 아도비 애프터 이펙츠(Adobe After Effects)
작품: 에비에이터, 인크레더블, 월드 오브 투모로우
거실 발명의 연대기 제1부 - 1990년, 로드아일랜드주 프라비던스. 브라운대학을 갓 졸업한 4명의 학생이 자신들의 아파트에 코사(CoSA)라는 멀티미디어 회사를 설립한다. 도너츠와 베트남 음식으로 거의 매 끼니를 때우며 네 사람은 하루 종일 일에만 매달린다. 그리고 1993년, 애프터 이펙츠를 출시한다. 가히 혁신적이라 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 덕분에 데스크탑 컴퓨터 사용자들도 합성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별도로 제작된 실제 동작과 컴퓨터 시각 효과를 결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실 발명 연대기 제2부 - 1995년, 캘리포니아 셔먼 오크스. 애프터 이펙츠에 영감을 받은 풋내기 영화감독 케리 콘랜은 알루미늄 호일로 자신의 집 창문을 모두 가리고서 임시 블루스크린 스튜디오를 차린 다음 단편 영화를 제작한다. 로봇의 공격으로 위급한 상황에 빠진 뉴욕을 소재로 한 영화다. 8 차례에 걸친 각본수정과 9년이라는 제작기간 끝에, 파라마운트 픽쳐스는 콘랜의 영화 ‘월드 오브 투모로우’를 개봉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과학기술상 후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특수효과로 가득한 영화에서 관객들이 보게 되는 화면은 실제로는 개별적으로 제작된 영상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하나의 프레임이 많게는 500개의 개별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도 있고 영화 세트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 처리한 캐릭터들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합성 소프트웨어는 이 모든 조각들을 조합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다른 점이라면, 움직이는 영상을 다룬다는 것이다. 애프터 이펙츠가 나오기 이전에는 합성 처리를 슈퍼컴퓨터로 해야 했는데, 그 비용이 무려 20만 달러 이상이나 됐다. 그에 비해 애프터 이펙츠는 1천 달러 정도면 구입할 수 있었다. 영화제작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프로그램이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사는 앨더스(Aldus)에 인수되었다. 앨더스사는 그 후 어도비 시스템즈(Adobe Systems)와 합병했다. 그 후 10년간, 데스크탑 컴퓨터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오늘날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합성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의 경우만 보더라도, 콘랜 감독은 애프터 이펙츠를 이용하여 중고 만물상같은 영화 분위기를 만들었다. 1930년대와 40년대의 테크니컬러 시리즈, 필름 누아르, 만화책 및 과거 공상과학소설에서 받은 영감 등을 조각조각 이어붙인 듯하다. 영화 초반, 주인공 스카이 캡틴(주드 로 분)이 악당으로 변한 로봇들을 피하기 위해 맨하탄의 고층건물들 사이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클로즈업 화면은 사운드필름 제작용 방음스튜디오에서 대형 블루스크린으로 배경을 처리한 후 주드 로를 P-40 전투기 모형에 넣고 촬영한 것이다. 로봇들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고, 세부 길거리 화면은 3D 디지털 모델로 대체했으며 배경은 현대의 사진과 기록보관소용 사진들을 2D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영화 전체를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



3D 클론의 습격
기술: 3D 스캐닝
후보: 더크 캘래츠(左), 마크 프로에스먼(右) | 아이트로닉스 쉐이프웨어
작품: 블레이드 3, 마스터 앤드 커맨더, 툼 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
공포영화 블레이드 3편에 나오는 사악한 흡혈귀는 불쌍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말 개봉한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의 이 영화 속 흡혈귀들은 피부가 마구 끓어오르기도 하고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리기도 한다. 또 해골로 변하기도 하며 몸이 폭발하여 재로 변하기까지 한다.

‘블레이드’의 흡혈귀들은 실제 배우들이 연기했지만, 끔찍하게 죽는 장면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합성했다. 컴퓨터 아티스트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50여개의 기괴한 모양의 흡혈귀들을 디자인하고 연기할 실제 배우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각각의 흡혈귀들을 손으로 일일이 작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블레이드 3편의 시각효과 감독인 조 콘미가 생각해 낸 것이 아카데미 과학기술부문 후보에 오른 아이트로닉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모든 배우들을 3차원 스캐닝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디지털 복제 배우들이 스크린상에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콘미는 3D 스캐닝 덕분에 작업이 순조롭게 출발함으로써 디자인하는 수고로움을 무려 수천시간이나 절약할 수 있었다고 했다.

스캐닝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를 재빨리 디지털로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작업 과정은 사진이나 슬라이드를 디지털로 복제하기 위해 평반 스캐너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3차원 물체도 스캐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영화제작현장 어디를 가더라도, 손으로 제작한 모델을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를 만들고 심지어 실제 풍경에서 도출한 가상 환경을 만들어내고 진짜처럼 보이는 예술작품과 가구로 디지털 무대장치를 꾸미는데 이 첨단기술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제1세대 3D 스캐너 장비는 너무 커서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배우들을 스캐닝 장비가 있는 곳으로 데려와야 한다. 하지만 A급 스타들과 함께 작업을 해야 할 경우, 스케줄 조정이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장비를 간이 트레일러 형태로 제작해서 무대 세트가 있는 곳으로 옮겨와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번거롭다.

이에 비해 아이트로닉스 시스템은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의 소형이기 때문에 휴대가 가능하다. 철제 프레임의 한쪽 끝에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6.4 메가 픽셀 캐논 EOS 10D)가 장착되어 있고, 다른 한쪽 끝에 달려있는 플래시에서는 미세 격자광이 투사된다.

사용자는 렌즈와 플래시를 스캐닝할 대상을 향해 장비를 들기만 하면 된다. 벽면에 비추면 격자가 평평해지고 얼굴이나 물체 주변에서는 등고선 모양의 선이 생긴다. 뒤틀어진 그물모양을 기록하며 사진을 촬영하면 아이트로닉스 소프트웨어는 이를 x, y, z 좌표 형태로 전환한다.

일반 사진기 대신 비디오카메라를 장착하면 표정연기를 포착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10여장의 사진 데이터를 조합하면 하나의 3차원 모형이 완성된다. 또는 블레이드 3편의 경우에서처럼 55개의 3D 모형들에게 옷을 입히고 조작하여 환상적인 연기를 펼치도록 만들기도 한다. 참혹하게 죽는 장면까지도...



도트 매트릭스
기술: 모션 캡처
후보: 줄리안 모리스 | 비콘 모션 시스템즈
작품: 폴라 익스프레스, 스파이더맨 2, 타이타닉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일반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업으로는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베스트셀러 동화책인 ‘폴라 익스프레스’를 영화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반 만화 영화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사영화로 찍을 수도 없었다.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북극으로 기차 여행을 떠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저메키스 감독은 ‘움직이는 그림’을 배경으로 한 와일드 액션 세트를 구상했다. 책속의 아기자기한 삽화들을 현실 무대로 옮겨놓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바탕을 둔 컴퓨터 그래픽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실감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저메키스 감독이 원한 것은 디지털화된 실제인간이었다.

저메키스와 디지털 효과 감독인 알베르토 메나키는 비콘 모션 시스템즈로 눈을 돌렸다. 이 회사는 ‘모션 캡처’를 이용하여 새로운 영화기법을 개척한 공로로 아카데미 과학기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메키스 감독은 배우들의 모든 동작, 즉 얼굴 표정과 몸의 움직임을 동시에 포착할 수 있는 장비를 원했다. 과거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했던 것이다. 단순히 극적인 특수효과를 필요로 하는 특정 장면이 아닌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에 많은 것을 걸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우리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비콘 측에서 ‘한번 시도해보자’라고 했다.”라며 메나키는 말한다.

비콘사의 기술은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처음에는 뇌성마비 환자의 걸음걸이를 분석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최초로 모션 캡처 시스템을 영화업계에 선보였고, 그 후 타이타닉, 스파이더맨 2 등 수많은 영화에서 배우가 실제로 연기하기에 위험한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한 캐릭터들이 대신해왔다. 최근에는 ‘헐크와 미라’에 나오는 괴물들도 전부 이 기술을 통해 제작되었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경우, 톰 행크스를 비롯하여 모든 출연 배우들이 80개의 광반사 장치가 부착된 스파이더맨 의상처럼 몸에 밀착되는 옷을 입고 연기를 해야 했다. 여기에 추가로 배우들의 얼굴에도 152개나 되는 광반사 장치를 부착했다. 이 배우들이 가로 세로 각각 3m의 무대에서 연기를 펼치면 이를 모션 캡처로 잡아낸다. 영화 전체를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무대의 측면에는 72대의 비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전 보다 두 배나 많은 카메라 대수였다. 각 렌즈 가장자리의 달려있는 고리에서 적외선 빔이 발사되고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동안 몸에 붙어있는 반사장치들이 초당 120개의 프레임에 기록되면서 컴퓨터 네트워크에 입력된다. 그러면 비콘은 이동점들의 3D 데이터 세트를 조합하여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업에 필요한 세부적인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낸다.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저메키스 감독은 최대 4명의 배우들이 동시에 연기를 펼칠 것을 주문했다. 이는 926개의 광반사 감응장치들을 약 1mm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모션 캡처로 잡아내야 함을 뜻한다. 비콘사의 iQ 소프트웨어는 마치 하늘 가득 뿌려진 별들 중에서 별자리를 짚어내는 것과 같이 무수히 중복되는 반사점들 속에서 각 배우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잡아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모션 캡처한 데이터 세트가 완성되면 컴퓨터 아티스트들에게 건네진다. 그들은 데이터를 일련의 시뮬레이션 장치에 넣고 작동시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근육의 움직임을 살려주고 피부와 의상, 머리카락까지 만들면, 짜잔! 컴퓨터로 합성된 톰 행크스가 어린 소년, 기차 차장, 산타클로스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영화는 동명 동화책이 살아 숨 쉬는 듯하고 아슬아슬한 액션과 때때로 그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까지도 마치 실제인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생기없는 잿빛 얼굴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지만 사실, 우리에겐 작업해야 할 분량이 너무 많았다.”



안정감 있는 촬영
기술: 카메라 안정장치
후보: 데이비드 그로버 | 퍼펙트 호라이즌(Perfect Horizon)
작품: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스텝 인투 리퀴드, 블루 크러쉬, 007 어나더 데이
서핑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스텝 인투 리퀴드’(2003년도 작)의 다나 브라운 감독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100마일이나 떨어진 코테즈 뱅크의 거대한 파도 위에서 서핑하는 환상적인 장면을 찍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결과는 아주 흥미로웠다. 65 피트나 되는 거대한 파도와 맞서는 켄 ‘스킨독’ 콜린스 같은 서퍼들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이다. 혹시 알맹이는 없고 화려한 액션의 눈요깃감만 가득한 영화 아닌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시적인 우아한 접근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렇다고 특별한 기교를 부린 것은 아니다. 카메라를 실은 배 역시 같은 시간, 동일 바다위에 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파도 속에서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고 있기 위해서는 미리 멀미약 한두 줌은 먹어두어야 했다. 그리고 아카데미 과학기술부문 수상후보에 걸맞은 가히 혁신적이라 할 수 있는 카메라 받침대, ‘퍼펙트 호라이즌’이 필요했다.

디지털 영화제작 시대인 오늘날에도 기어, 윤활유, 볼트, 케이블 같이 기계적인 부분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여전히 많다. 여기서 어느 이름 모를 발명가의 수년간의 열정과 노력이 문제 해결에 한 몫 한다. 카메라를 향해 돌진하는 경주마를 찍어야 한다면? 아카데미 과학기술상을 받은 테크노크레인을 사용하길... 회전, 급강하는 물론이고 50 피트까지 길이가 연장된다. 시속 150m의 오토바이에 올라타서 촬영을 해야 한다면? 올해 아카데미 과학기술부문 후보에 오른 도기캠 시스템즈(Doggicam Systems)사의 스패로우 헤드(Sparrow Head)를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카메라 헤드의 안정감이 탁월하고 무선 원격 조정도 가능하다.

퍼펙트 호라이즌을 고안한 데이비드 그로버는 영화해상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베테랑급 코디네이터로 모션 픽쳐 마린(Motion Picture Marine)이라는 회사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수년간 작업을 해오면서 작고 쉽게 운반할 수 있는 카메라 고정 설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라고 그로버는 말한다. 이보다 좀 더 일찍 개발된 몇몇 장치들은 파도의 출렁거림으로 인한 카메라의 흔들림을 줄이기 위해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했다. 그러나 카메라 촬영기사의 의도적인 움직임까지는 제대로 살릴 수 없었다. 또 물의 압력으로 생긴 에너지로 작동되기 때문에 무거울 뿐만 아니라 아주 번거로웠다. 수년간 이 문제를 고심하던 그로버는 1999년, 마침내 자신의 발명품을 선보였다.

그로버의 발명품의 획기적인 진전사항은 다음과 같다. 움직임을 감지하는 전자 센서와 적정한 안정반응을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 여기서 핵심은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앞에서 뒤로 재빨리 회전할 수 있는 짐벌로써, 그 아래의 상황에 상관없이 카메라 플랫폼은 항상 수평을 유지한다. 카메라 받침대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전원을 공급하는 한 쌍의 전기 모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그로버에게는 가장 큰 문제였다. “만약 기계에 백래쉬가 생길 경우, 화면으로 알 수 있다.” 라고 말한다. 퍼펙트 호라이즌은 처음 출시된 이래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최근에는 방수는 물론이고 탄소섬유와 알루미늄 외장재를 사용하여 무게도 줄어들었다. 원래는 130 파운드였던 것이 지금은 30 파운드 정도밖에 안 된다. 또 카메라를 바로 위쪽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퍼펙트 호라인즌을 삼각대 위에 설치할 수도 있고 크레인 아래 매달아놓을 수도 있다. 카메라는 평상시처럼 상하좌우로 이동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사각도도 자유로이 조정할 수 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카메라의 수평상태를 유지해주는 퍼펙트 호라이즌은 자동차(영화 ‘씨비스킷’), 골프 카트(영화 ‘스팽글리시’) 외에도 보트(007 어나더 데이)와 제트스키(개봉예정작 ‘히치’)에서도 그 진가를 입증했다.





수상자의 명단이 들어있는 봉투의 개봉
설렘, 초조, 불안...

2월 12일, 영화 과학기술 분야에서 쾌거를 거둔 12개 부문에 영광스런 아카데미상이 수여되었다.


오스카상
* 호스트 버벨라: 망원 카메라 크레인인 테크노크레인의 개발자
* 장 마리 라발로우, 데이비드 사뮤엘슨, 알랭 마세롱: 원격조정 로마(Louma) 카메라 크레인

상패
* 린지 아놀드, 가이 그리피스, 데이비드 허드슨, 찰리 로렌스, 데이비드 만: 씨네온 디지털 필름(Cineon Digital Film) 합성 워크스테이션
* 기라 메스터, 키스 에드워즈: 테크노크레인 디자인에 기여

상장
* 그렉 캔놈, 웨슬리 워포드: 실리콘 소재를 이용한 인조 살(肉) 제작
* 제리 코츠, 앤서니 시먼: 아주 작고 가벼운 새틀라이트-X HMI 소프트라이트(Satellight-X HMI Softlight)
* 스티븐 E. 보즈: DNF 001 멀티밴드 디지털 오디오 잡음 억제기
* 크리스토퍼 힉스, 데이브 벳츠: Cedar DNS 1000 멀티밴드 디지털 잡음 억제기
* 넬슨 타일러: 자이로플랫폼(Gyroplatform) 수상 촬영시 카메라 받침대 고정장치
* 줄리안 모리스, 마이클 버치, 폴 스미스, 폴 테일: 비콘(Vicon) 모션 캡처
* 존 그리브스, 네드 피프스, 안토니에 반 덴 보거트, 윌리엄 헤이스: 모션 캡처 카메라
* 넬스 매드센, 본 카토, 매튜 매든, 빌 로톤: 바이오메트릭(생체인식) 모션 캡처 소프트웨어
* 앨런 캐플러: 볼류메트릭 소프트웨어 ‘스톰’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