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Dilemma)가 두 가지 사안이 얽힌 것이라면, 트라이레마(Trilemma)는 세 가지가 얽힌 것이다. 우리나라도 21세기를시작하면서 경제(Economy)와 환경(Environment)과 에너지(Energy)의 세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트라이레마에 처해있다.
지금까지는 별개의 사안인 것처럼 논의가 되어 왔으나, 이제부터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고려하여야만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경제 발전을 위한 에너지의 사용은 필수적이고, 지금과 같이 수입한 화석 연료에 주로 의존하는 에너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환경 문제를 야기 시킬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세계기후변화협약으로 인해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산업제품은 수출을 하기도 어렵게 되어 간다. 이같이 경제와, 환경과, 에너지의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다. 97%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수입하는 에너지를 돈으로 환산하면 약 370억 달러 (2000년 기준)에 달하고, 이는 우리나라 수출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와 자동차를 합한 것 보다 많다.
만일 우리나라가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가 있다면 에너지 수입에 들어가는 외화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쓸 수 있어 우리나라는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10년경이 되면 환경 친화적인 제품이 아니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우리의 수출 대상이 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수입을 규제할 전망이다.
삼성 반도체가 최근 모든 생산라인에 CFC (프레온 가스) 포집기를 설치하고, 현대 자동차가 수소 자동차 개발을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가 주된 원인으로 알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탄산가스 배출권을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현재 시세로 탄산가스 1 톤당 평균 약 $30에 거래되고 있다.
탄산가스를 처리하는 비용이 톤당 약 200 달러 정도가 된다고 하니 배출권의 상한선도 이 정도까지 올라 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의 경제규모와 비슷하게 탄산가스 배출량도 세계 10위권이다.
국토가 매우 좁아서 면적 당 탄산가스 배출량은 세계 1위이다. 국가 차원에서는 아직 세계기후변화협약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있지만, 산업별, 제품별로는 심한 제약이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수출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 규제에 따른 수출 상품의 국제 규제가 강해지면 우리나라 경제에는 거의 치명적이 될 수가 있다.
수소 경제시대 등장과 각국의 대응
2020년경이 되면 수소경제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고 한다. 본격적인 수소 경제 시대에 대비한 세계 각 국의 준비도 매우 치열하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2003년 1월 말,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 (State of the Union)에서 에너지 자립을 천명한 이후, 정부가 주도하고 산업계, 학계, 국립연구소 들이 협력하여 수소 자동차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향후 5년간에 걸쳐서 17억 달러( 한화 약 2조 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수소의 생산에서부터, 수송, 저장 및 활용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정책이다.
수소를 통하여 에너지 자립을 이루고, 세계기후변화협약에도 대처하고, 자동차 산업에서도 세계적 우위에 서겠다는 발상이다. 일석삼조인 셈이다.
미국은 2010년까지 수소 자동차의 상용화를 완료하고, 2020년까지는 현재 전기생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산가스를 80% 감축하며, 2040년이 되면 외국에서 수입하는 석유를 더 이상 수입하지 않겠다는 정책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 연합, 일본, 아이슬랜드 등에서도 수소 관련 기술 개발을 중요과제로 추진 중에 있다. 유럽 연합에서는 지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총 1.35억 유로를 연구개발에 투자하였으며, 2003년부터 2006년 사이에는 총 2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2002년 4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각료 간담회에서 “산업 경쟁력 관점에서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서 연료전지 자동차의 조기 실용화를 실행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말하였으며, 2003년경에 시판될 연료전지 자동차 제 1호를 정부에서 대규모로 솔선하여 도입할 방침을 밝혔다.
일본은 2020년까지 24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아이슬랜드에서는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수소로 바꾸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현재 35%에 달하는 화석연료 사용을 수소에너지로 완전 대체하는 5단계 시나리오를 만들었으며, 2030년경에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수소 - 현실적인 대안
수소를 포함하고 있는 물질은 크게 물과 탄화수소이다. 탄화수소는 석유, 천연가스, 메탄 등이 있다. 그리고 탄소로만 이루어진 석탄에서도 수소를 생산할 수가 있다.
수소 분리에 쓰이는 에너지도 이들 탄화수소를 비롯하여, 대체에너지인 태양열과 풍력 등이 있고, 또 원자력이 있다.
수소를 포함하고 있는 물질에 어떤 에너지를 투입하여 수소를 생산해 내느냐에 따라 수소 생산 방법이 달라진다.
이들 중에서 탄화수소를 원료로 쓰는 모든 방법은 탄산가스를 발생시킨다. 물론 이 방법이 현재는 경제적이어서 가장 많이 쓰이는 수소 제조 방법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원유가가 급등하고, 탄소세가 도입되고,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 이 방법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수소 생산을 위한 원료 중에서 탄화수소를 제외하면 남는 재료는 물이다. 물에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물을 전기 분해하는 방법과, 직접 열분해 하는 방법이다.
물을 전기 분해하는 방법은, 전기를 어떤 방식으로 생산했느냐에 따라서, 탄산가스와 같은 공해 물질 발생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기를 생산해서, 물을 전기분해 하여 수소를 만들고, 그 수소에서 다시 전기를 생산해서 쓰게 되면, 원래 에너지의 효율적인 사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수소 생산과 관련하여, 이런 논의 과정을 겪으면서, 최근에 활발한 연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물의 직접 열분해 방법이다.
물을 직접 열분해하는 방법은 섭씨 800도 이상의 열을 이용하여 물을 직접 분해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탄산가스를 배출하지도 않고, 전기 분해와 같은 1차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의 문제는 없지만, 고온의 열을 경제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현재까지는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 환경과 에너지와 경제의 트라이레마가 논의되면서, 수소 에너지의 필요성이 한층 더 강하게 대두되고, 이에 따라 수소의 환경 친화적인 생산 방법이 강구되면서 등장한 것이 원자력 수소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상용로 건설중
원자력 수소는 원자력을 이용하여 고온의 열을 얻고, 이 고온의 열을 이용하여 물을 직접 분해하여 생산한 수소를 말한다.
원자력 중에서 고온의 열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고온가스로 라는 원자로이다.
고온가스로는 미국, 독일, 영국 등에서 이미 사용되었고, 일본, 중국은 최근에 원자력 수소 생산용 실험로를 건설하였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상용로를 건설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일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10개국이 모여, 초고온가스로(VHTR)를 개발 중에 있다.
초고온가스로는 지속 성장 가능성, 핵확산 저항성, 경제성 및 안전성 측면에서 기존의 원자로 보다 획기적인 개선이 기대 되는 제 4세대 원자력 시스템이다.
원자력을 이용하여 생산한 원자력 수소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원자력 수소의 가장 큰 이점은,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도 기술만 가지고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소 생산의 전 과정에서 탄산가스를 발생하지 않아서 환경 친화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석탄이나 석유 같은 천연자원은 없지만 우리의 기술로써 환경 친화적으로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게 된다.
2004년은 우리나라의 원자력수소 생산기술 개발의 원년이 된다. 금년부터 우리 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2019년까지 16년 동안 9.861 억원을 투입하여 원자력수소 생산기술 개발 및 실증을 한다.
2020년에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수송에너지의 20%(원유 약 8,500 백만 배럴)를 원자력수소로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목표이다.
수소경제시대 기술개발 인프라구축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우리의 선택은 명백해 진다. 첫 번째, 우리는 우리나라가 천연 자원이 부족한 것을 운명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장점인 머리로써 기술을 개발하여 이를 극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기술 개발의 방향은,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탄산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 물을 직접 분해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원자력 수소 생산 방법으로 가야 한다.
가까운 장래에 도래할 수소 경제 시대를 위한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서둘러도 결코 빠르지 않다.
끝으로, 경제와 환경과, 에너지의 트라이레마를 현명하게 풀어 가는 상징적인 국가 과제로, 현 참여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신 행정수도를 환경 친화적인 도시로 하자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신 행정수도는 계획도시이다. 따라서 입안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우선하는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신 행정수도 안에서 운행되는 모든 교통수단은 수소 자동차로 하고, 필요한 전기와 냉난방 시설도 모두 수소 연료전지로부터 에너지를 얻게 하자. 또한 여기에서 필요한 물의 일부는 수소의 부산물로부터 얻을 수가 있다.
정부의 모든 부처가 들어오고 약 50만의 인구가 거주할 예정인 신 행정수도는 세계에서 최초로 환경 친화적인 수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