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케호의 눈 흰자위가 군청색으로 얼룩이 졌다. 눈 뿐만 아니라 얼굴과 자동차, 욕조 몇 개와 아이들도 몇 명째 얼룩을 들여놓았다. 그는 집이 유독한 냄새로 가득 차 가족들을 내보내야 했다. 이사하는 집마다 부엌은 모두 엉망이 되었다.
미네소타 세인트 폴에 사는 35세의 완구발명가인 케호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건 10년 전 구상했던 컬러 비누방울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런 비누방울을 만들 수 없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투명한 비누방울이 전등 불빛을 받아 생기는 희미한 무지개 효과를 애기하는 게 아니다. 케호의 비누방울은 전체 표면에 고르게 단 하 가지 밝은 색상을 띤다. 초록색 방울, 주황색 방울, 연분홍색 방울이 만들어진다. 이런 방울을 보면 CEO들이 낄낄대며 웃을 것이고, 놀란 엄마들은 감탄해서 눈물을 흘릴 것이다. 비누방울은 투명한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으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런 비누방울을 보기 힘들다.
케호는 주방에서 실험하다 화학약품으로 여러 차례 화재를 내며 2년간 연구한 끝에 26세 때 이런 비누방울을 만들었다. 그가 이 방울을 장난감 회사 중역에게 보여주었더니 “엄청난 상품”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방울도 다른 여느 비누방울들처럼 터졌다. 그러자 안에 있던 염료가 옷과 카페트, 벽과 피부에 묻으면서 얼룩을 남겼다. 그 중역은 중역회의실 탁자의 얼룩이 묻어도 쉽게 지울 수 있는 비누방울을 만든 다음 다시 오라고 말했다.
그게 벌써 9년 전 일이다. 그동안 케호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섞고, 끓이고, 증류했지만 성공하지 못햇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고집을 굽히지 않고 결국 50만 달러의 융자를 냇는데, 이 정도면 염료 화학자를 고용할 수 있었다. 둘이 힘을 합치자 케호의 집념에 찬 연구는 그가 바랬던 것보다 훨씬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아무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던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성과였다. 얼룩이 지지않는 비누방울의 비밀은 알고보니 색체 화학 분야에 혁명을 불러일으킬 만한 염료였다. 그냥 색깔이 사라지게 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비누방울 해부
일반적인 종류의 비누방울은 물이나 물과 상호작용해 표면장력을 줄여주는 비누의 주성분인 계면 활성제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 성분은 액체가 비누방울을 터뜨리지 않으면서 표면 전체에 골고루 퍼지도록 해준다. 공기를 넣으면 이 얇은 막이 바깥쪽으로 밀다가 결국 분리되면서 비누방울이 형성된다. 사람들이 비누방울 놀이를 즐긴지 400년이나 된다. 17세기 플랑드르 그림들을 보면 점토 파이프로 비누방울을 부는 아이들 모습이 나와 있다.
보통 제품 수명이 18개월이 채 못되는 완구업계에서 비누방울은 경이적인 제품이다. 천토이라는 한 시카고 회사가 1940년대에 비누방울 용액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후 이 제품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업계의 한 추정치에 의하면 비누방울 용액은 연간 2억 병이 팔려 다른 어떤 완구보다 시장이 크다.
적어 놓은 적이
없습니다.
정리보다는
직접 해보는 게
너무 신나기
때문이죠."
끊임없이 사랑을 받아오긴 했지만 비누방울은 60년 동안 큰 발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2002년 토론토의 스핀마스터라는 회사가 기존 제품보다 5배나 오래 가는 캐치어버블이라는 제품을 선보였다. 타임지는 이 제품을 그해 최고 발명으로 선정했고, 이 제품은 첫해에 700만 병이 팔렸다.
오래가는 방울 시장이나 투명한 방울 시장은 대상이 모두 초등학생들이다. 하지만 발명가가 비누방울에 색을 넣을 생각을 하면 갑자기 어른들도 고객이 되기 시작한다. NFL 팀 색깔로 된 그림 비누방울이나 자선 리본용 비누방울 등 가능한 시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계층으로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품은 왜 없는 것일까?
사실 비누방울에 색을 입히는 건 화학적으로 꽤 어려운 일이다. 방울의 막은 계면활성제 분자들이 100만분의 1인치 간격을 두고 그 사이에 물이 들어가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비누방울 용액에 음식용 색소를 넣게 되면 무거운 염료들이 물안에서 마음대로 떠다녀 물이나 계면활성제 중 어디에도 결합하지 못한 채 즉시 측면을 타고 쏟아져 내려 투명한 비누방울 밑바닥에만 색소가 몰려 점 모양이 형성된다. 따라서 계면활성제 분자에 들러붙어 물 층을 따라 고르게 퍼질 수 있는 염료가 필요한 것이다. 염료 분자를 추가하면 보다 깊고 풍부한 색을 구현할 수 있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이처럼 간단하다.
토이 스토리
팀 케호는 180cm가 조금 넘는 키에 다소 우람한 체구를 하고 있다. 그는 현재 세인트 폴에 있는 오래된 벽돌집에 사는데, 이 집은 그가 다녔었고 그의 네 아이들 중 두 명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길건너편에 있다. 그는 친절하고 한 번 시작한 건 반드시 끝을 보고 마는 성격이다.
“팀이 흥분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죠.”라고 찰리 거쉬가 말한다. 그 역시 완구 발명가로 케호가 1995년 결혼하면서 거쉬 아들의 여자 친구인 쉐리를 훔쳐가버린 이후 케호의 스승 역할을 해왔다.
케호는 엄격한 아일랜드 가정에서 자랐지만 쉐리는 시끄러운 이탈리아 대가족에서 성장했다. 케호가 예비 처갓집에서 친척들과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동안 할머니와 사촌들, 아이들이 모두 거실에 모여 앉아 그림사전 놀이를 했다.
이 게임은 시끌벅적하고 아주 재미있어서 케호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이 게임을 즐겼다. 그날 밤 그는 집을 나서며 새로운 소명의식을 느꼈다. 즉,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1989년 그는 첫 시도로 지구 구하기라는 재활용 관련 보드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름만큼이나 재미있었다. 완구 회사들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한 거절 편지에서 케호에게 프랭크 영이라는 독립 완구 제작자를 찾아가 보라고 일러줬다.
케호가 수십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여러 달 동안 따라다니자 결국 영은 이 끈질긴 친구에게 연봉 3만 달러를 제시하며 풀타임으로 완구 개발을 하도록 했다.
그 다음해에 케호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밤낮으로 발명에 매달렸다. 영이 자신을 믿어주고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덕분에 케호의 창의성에 불이 붙어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이 펌프로 바람을 넣어 커다랗게 만들 수 있는 바퀴가 달린 트럭과 손쉽게 장난감 오븐에서 굳힐 수 있는 컬러 모래, 그리고 컬러 비누방울들이 개발되었다.
그렇다! 컬러 비누방울이 탄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누방울 불기를 좋아한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완벽한 아이디어여서 다른 발명가들이 이마를 치며 그런 생각을 미처 못했던 걸 탄식할 정도였다. “가게로 걸어가면서 ‘너무 쉬운 걸. 난 엄청난 부자“전 젤-오의 색깔이 꽤 진해서 그걸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젤-오와 아이보리색 비누를 섞었죠.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어요.
옷을 뚫고
들어갔거든요."
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습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다시 가게로 가 식용 색소를 사와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는 머리 염색약과 잉크로도 실험을 했다. 몇주가 지나자 그는 쉐리와 잡화점에서 데이트를 하며 주머니 사정이 되는 대로 대양한 색소 제품들을 사곤 했다. 돌아오면 부엌에서 과일 주스를 팬에 쏟아붓고 스토브에서 가열해 색소가 배어나오면 접시의 비누에 부었다. 하지만 늘 투명한 비누방울만 생겼다.
잡화점 제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는 특허를 조사하고 계면활성제에 관한 내용들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특허에서 언급된 화합물을 찾아 자금 여유가 됐을 때 주문해서 섞어보곤 했습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한번은 실온에서 붉은 연기가 나는 질산을 시험해 보았다. “정말 근사한 비누방울을 만들었지만 그 때문에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어요’”라고 그가 회상한다.
“옷을 뚫었거든요.”
간단하면서도 독창적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 컬러 비누방울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의 아내는 참아주었다. 하지만 이런 야심 때문에 케호가 밤늦게까지 연구를 한 건 아니다. 그가 광적으로 연구에 매달린 것은 매번 투명한 상태로 그의 손에서 사라지는 비누방울들을 보며 드는 한 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왜 안 되는 것일까?
컬러 방울 등장
영과 케호가 만난 후 1년간 115가지 샘플을 만들다 보니 영의 자금 사정이 빠듯해졌다. 히트작도 많지 않아 영은 케호를 계속 채용할 수 없었다. 결국 케호는 브루스 룬드를 찾아갔다. 그는 시카고에서 12명으로 된 발명 스튜디오를 운영중이었는데 최근 스트레치 암스트롱 탄력 인형의 강력한 라이벌 제품인 백맨 같은 성공작들을 내고 있었다. 룬드는 그의 회사를 공장처럼 운영했다. 벨 소리에 맞춰 발명가들은 업무를 시작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새롭고 쓸만한 아이디어를 제출해야 했다. “전 다 큰 어른들이 자주 우는 걸 봤어요.”라고 케호가 말한다.
케호가 매일 밤과 주말마다 해고되지 않을 만큼 새로운 인형들을 생각해내는 동안 비누방울 연구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1년도 못되어 케호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질려서 쉐리와 함께 미네소타로 돌아왔다. 그는 킥 디자인이라는 완구 회사를 직접 설립하고 비누방울 개발에 전념했다.
컬러 비누방울은 여전히 힘든 과제였지만 닥치는 대로 시도해보는 그의 접근 방식 덕분에 부엌에서는 온통 이상한 방울들이 떠다녔다.
큰 소리를 내며 터지는 방울도 있었고, 터지면서 화상을 입힌 것도 있었다. 가장 근사한 방울은 수퍼볼처럼 통통 뒤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똑같은 것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그는 한 번 실험한 것을 거의 재현해내지 못했다. “전 거의 기록을 하지 않아요.”라고 그가 말한다. “그러기에는 너무 흥분을 잘 하거든요. 하지만 공처럼 튀는 방울 제작법을 잃고 난 후 좌절에 빠졌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도록 실험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케호에게 첫 컬러 비누방울을 만들어냈던 날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면 복잡한 얘기가 펼쳐진다. 그는 빨대를 파란 용액이 든 통에 담그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는 투명한 비누방울 밖에 안나오는 용액들이긴 했지만 이즈음 그가 만든 용액들은 대부분 색을 띠고 있었다. 그는 가늘게 떠는 막을 보면서 이번 것은 뭔가 다르리라는 걸 직감했다. 그가 방울을 불자 파란 방울이 부엌을 가로질러 떠다녔다. 다음 번 방울도 역시 파란색이었다. 그는 쉐리를 불러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닌지 확인했다. 그녀가 보아도 파란 방울이었다. 이들이 아는 한 세계 최초의 파란 비누방울이 부엌에서 탄생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는 특별한 성분을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다만 좀 더 오래 가열한다든지 이것저것 넣어본다든지 했는데 무언가가 작용한 것이다. 방법은 중요치 않았다. 케호는 이론이 아니라 비누방울을 연구했고, 그 결과는 비디오에 녹화되어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프로젝트가 끝난 셈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라이센스 계약을 따오는 것이었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를 들고 완구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하스보로사의 한 직원이 자기들도 2년간 시도했었지만 제가 만든 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말했어요.”라고 케호가 말한다. 이 방울들을 본 완구회사 중역들은 모두 컬러 방울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며 투명 비누방울이 사라져버릴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풍선이 몸에 닿으면 얼룩이 수주동안 피부에 남아 있었어요,”라고 케호가 말한다. “그 때문에 모든 게 날아가버렸습니다. 모두들 그 문제가 해결된 다음 오라는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비누방울 연구실의 파트너
케호의 첫작품으로 닿기만 하면 얼룩이 지게 하는 컬러 비누방울들의 화학적 원리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다. 그는 염료와 이를 계면활성제와 섞어 둘이 결합하게 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것은 계면활성제가 남아있는 동안, 즉 방울을 건드리지 않는 한 색상이 방울 전체에 균일하게 퍼져 있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염료는 물에 용해되지 않기 때문에 씻어내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케호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컨셉만 라이센스를 체결해 공식은 스스로 완성하기를 바랬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한 완구회사들은 모두가 그만이 모르고 있는 점을 알고 있었다: 제대로 된 화학적 방법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컬러 비누방울로 전국의 이사회실과 새로 태어난 아기, 세를 내고 빌린 집을 온통 얼룩지게 해놓고도 케호는 연구를 계속했다. 그 이후 그는 8년간 웹디자인 사업에서부터 최근 그를 만난 회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단 한 가지 사건만 제외하고는 별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2003년 그가 근무하던 소프트웨어 회사가 매각되며 그는 실직했지만 설립자는 큰 돈을 벌었다. 이것을 보고 그는 다시 완구개발에 전념했고, 평소 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던 설립자는 그와 50대 50의 지분으로 새로운 완구회사를 시작했다. 케호는 219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동업자들은 50만 달러를 투자했다. 거래가 확실히 이루어지고 투자금을 받은 후에야 케호는 이들에게 컬러 비누방울에 관해 얘기를 했다.
“일부러 그 얘기는 피했습니다. 보나마나 흥분해 당장 착수하자고 했을 테니까요.”라고 케호가 말한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습니다.” 8년간 중간중간 연구를 통해 수십 가지 염료로 다양한 색의 비누방울을 만들었지만 어느 하나도 판매하기에 적합할 정도로 물에 잘 씻기는 건 없었다. “마술을 부리라고 요구하는 셈이죠.”라고 케호가 말한다. “전 그만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완고했습니다. 돈이나 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 제가 어떻게 그들을 실망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금요일에 그의 사업 파트너로 투자를 승인해 준 가이 해들튼이 케호가 만든 컬러 비누방울을 월요일 아침에 가져와 보라고 했다. 그래서 케호는 오래된 병과 비누가루들을 꺼내 쉐리가 새로 꾸민 대리석 주방 조리대를 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들 수가 없었어요.”라고 그가 말한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예전에 해봤던 것 같은 과정을 모두 되풀이해 보았지만 투명 비누방울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프록터 앤 갬블이 세제용 비누의 일부 성분을 바꾸어 다른 반응을 일으켰던 것 같다. “정말 당혹스러웠습니다. 전 가게에 가서 닥치는 대로 비누를 구해다 시험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허사였습니다.”
만약 비누로 해결이 안되면 새로운 염료를 찾아야만 했다. “전 상점을 휩쓸다시피 돌아다니면서 색소가 든 제품들을 사들였습니다. 점원들은 제가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구입하느라 수백 달러가 들었습니다. 한 상점에는 제가 생전 써 본 적도 없는 특수 잉크를 한 병에 30달러씩 받고 판매했습니다. 집으로 급히 간 저는 잉크들을 섞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실패만 반복됐습니다. 공포에 질린 채 전 엄청난 배율로 투자할 수도 있었을 아이디어에 대해 가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지금껏 해본
연구들 중 제일
어려운
겁니다."라고
사브니스가 말한다.
그런데 잉크들 중 하나가 제대로 작용하면서 제가 여태까지 봐온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컬러 비누방울을 만들어냈습니다. 더구나 문지르지 않아도 피부에서 씻겨나갔습니다. 이 제품은 안료 성분으로 만든 것이라 사용해 본 적이 없었고, 염료보다 얼룩이 더 진하게 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안료는 몇 년 전에 사용을 포기했었죠. 하지만 이 잉크들은 염료처럼 작용해 피부에 묻어도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케호와 쉐리는 이 용액을 옷과 아이들에게 부어봤는데 잘 씻겼다. 월요일에 이 비누방울을 본 해들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오랫동안의 연구와 밤샘 실험이 드디어 끝이 났다. 그는 완구회사들이 시킨대로 해냈고 이제 그 회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재정이 든든한 자기 회사가 있었고 잘 지워지는 비누방울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에 알릴 시간이었다.
놀이 시간
2004년 7월 케호와 동업자들은 수십 명의 아이와 부모들을 세인트 폴 근처에 있는 선피쉬 레이크의 해들튼 저택에 초대해 컬러 비누방울 공개와 주고객층 파티를 개최했다. 이들은 촬영팀을 부르고 대형 비누방울 기계를 빌려 몇 달 후 상점 선반에 진열될 컬러 비누방울 용액에 공기를 불어넣었다. 파티가 시작되고 5분간은 모두가 깜짝 놀랐다. 엄마들 입이 벌어졌고, 일부는 햇빛을 받아 거의 불타오르듯 생생한 색으로 빛나는 방울들을 생전 처음 보고는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방울을 쫓아다녔다. 케호가 오랫동안 꿈꾸어온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처럼 프로젝트가 유쾌한 오후에 끝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방울들이 터지면서 아이들과 부모들, 자동차와 해들톤이 애지중지하는 독일산 쉐퍼드들에게 부딪치며 터졌다. 마치 물감총 전투가 벌어진 것 같았다. 케호가 이미 부모들에게 색소를 씻어낼 수 있다고 말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랑과 분홍으로 얼룩져 있고, 색소가 신발과 머리카락, 콘크리트에 배어든 상황에서 씻어낼 수 있다는 건 의미가 없었다. 경악한 엄마들을 보며 케호는 곧바로 교훈을 얻었다. “씻어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색소를 남기는 상태로는 시장에 내놓을 수 없습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사람들이 기겁을 할 테니까요.”
이제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또다시 실패했다. 세척 가능한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어떤 표면에 닿든 얼룩이 저절로 사라지는 색소였다. 하지만 유기화학 역사상 저절로 사라지는 수용성 염료를 만들어낸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케호는 수년간 실험은 해봤어도 화학자는 아니었다.
전문가 영입
램 사브니스는 극소수의 염료 화학 박사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한다. 전세계에서 이 분야에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은 극히 소수인데, 그나마 미국에는 없기 때문에 사브니스는 봄베이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는 반도체에 관한 연구(실리콘 염색)와 생명공학 연구(핵산 염색)로 수십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사브니스는 케호가 운영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Monster.com의 광고를 보고 처음 회신을 한 화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다만 케호와 그의 동업자들이 원했던 것, 즉 비누방울의 얇은 막에 색을 띠게 하면서 물에 녹아 사라지는 염료의 제작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최초의 화학자였다.
발명된
염료에 수많은
응용가능성이
있었다.
사브니스는 이들에게 컬러 비누방울을 1년내에 상품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케호처럼 사브니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아직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이건 제가 지금껏 해온 연구들 중 가장 어려운 겁니다”라고 이제야 사브니스도 털어놓는다. “간단해 보일 겁니다. 그래서 왜 이런 일을 해내는 사람이 없는지 의아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수개월 동안 그는 매주 60~100번의 실험을 하면서 공책에 분자들의 모습을 빼곡히 그려넣고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계면활성제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면서 염료를 한 종류씩 실험해 보았다.
그러다가 작년 2월 어느 일요일에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한 텅빈 실험실에서 돌파구가 열렸다. 케호의 첫 번째 비누방울처럼 똑같은 과정을 수천 번 반복하면서 천천히, 조금씩 조절한 결과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브니스는 이를 재현할 수 있었다. 그가 합성한 염료는 비누방울의 계면활성제에 들러붙어 발고 생생한 색을 띠지만 마찰이나 물, 또는 공기에 노출되면 희미해지거나 다른 데로 옮겨가지 않고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런 비누방울이 손에서 터질 때 손을 몇 번 비비면 색소가 흔적도 없이 마술처럼 사라져 버린다. 셔츠나 카페트, 개에 부딪쳐 터질 경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보통 물로 살짝 닦아 즉시 지워버리던가 한 30분 동안 잊어버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경우든 색소는 사라져 버린다.
사브니스는 상자같은 기능의 락톤 고리라는 불안정 염기 구조로 염료 분자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이 고리가 열리면 분자는 비누방울의 색을 제외한 모든 가시광선을 흡수한다. 하지만 공기나 물, 압력을 가하면 상자가 닫히면서 분자 구조가 바뀌어 가시광선을 투과시킨다. 사브니스는 이 염기에 다양한 화합물을 부가해 서로 다른 색조들을 만들어냈다.
“아무도 이런 화합물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라고 사브니스가 말한다. “스펙트럼을 커버하려면 200내지 300개의 분자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분자들은 모두 자연상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혀 새로운 염료를 합성해낸 겁니다.” 사브니스는 전직 3M 화학자로 케호와 동업자들이 구인광고 작성하는 일을 도운 다렌 카슨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램이 한 일은 화학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그녀가 말한다. “염료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알기 어려울 겁니다.”
사브니스가 제시하기 전에는 제시하기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락톤 구조가 아니었더라면 케호는 지하실에서 수년을 더 보내고도 결국 그에게 필요한 염료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에 대한 케호의 집요한 헌신과 믿음이 없었더라면 이 프로젝트가 자금지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년간에 걸친 케호의 연구가 없었더라면 사브니스의 염료는 비누방울의 벽을 따라 곧바로 흘러내려 버렸을 것이다.
저블스 출시
컬러 비누방울은 2006년 2월 “저블스”라는 브랜드로 출시된다. 병은 작은 방울 캐릭터들 모양으로 생겼다. 각 색마다 이름과 특징이 있어서 검은 색 악당 질취(Zilch)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여자애들은 분홍색 질리(Zilli)를 좋아한다. 케호는 몇몇 주요 완구회사들과 상담중인데 이번에는 완구회사들이 그에게 계약을 해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비누방울은 전통적으로 여름철 장난감이지만 토이저러스에서는 그에게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제품을 판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퓰러사이언스에서 취재하러 갔을 때 케호는 공식을 비밀리에 유지하면서 6주만에 백만 병을 생산해낼 수 있는 공장을 가진 동업자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업상 미팅이 없을 때 케호는 집에서 다시 발명에 몰두한 채 사라지는 염료의 다른 용도를 생각해내는데, 이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수십년간 색채업계는 색고착에만 치중해왔을 뿐 아무도 잠시동안만 존재하는 색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용 비누방울을 만들기 위해 개발된 염료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사브니스는 색채 화학자 컨벤션에서 우스개소리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케호가 이미 생각해낸 아이디어들 중에는 특별한 종이 외의 어떤 표면에 발라도 희미해지다 사라지는 손가락 물감이나 몇시간 후에 사라지는 머리카락 염색제, 곧 사라지는 분무식 낙서용 페인트가 있다. 아이들이 반드시 30초간 이를 닦을 때까지 입안이 밝게 빛나도록 하는 치약과 손을 제대로 씻을 때까지 색이 남아있는 비누도 있다. 그는 완구 외의 분야로까지 활용 범위를 확장해 주말에는 실험실에서 서성대며 본인이 왔다 갔음을 알리는 기념 흔적 제품이나 최종 색을 칠하기 전에 몇 시간 동안 체험해보는 한시적 벽 페인트 같은 것들을 만든다. 이 염료의 활용가능성은 너무나 넓어 생명공학이나 산업용 용도도 논의되고 있다. “비누방울을 날릴 연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수확을 얻었어요.”라며 그가 흥분된 어조로 말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보려면 수년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케호도 알고 있다. 결국 조금 더 연구해야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