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한림원 석학을 찾아서] 박수문 포스텍 교수·기능성분자집합체 연구센터장

“우리나라는 산학협력을 통한 연구가 쉽지 않습니다. 기업과 공동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할 경우 그 기술특허의 소유권이 기업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현행 직무발명 제도가 연구원 들의 연구 의욕을 상실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수문 포스텍 기능성분자집합체연구센터장은 현행 특허 관련 직무발명제도가 산학공동연구를 진행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연구자들의 특허권리를 보장해주는 제도적 개선책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그는 특히 기업과의 공동연구 뿐만 아니라 정부 관계기관에 소속돼있는 연구원들에게도 개인의 특허권보다 정부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관을 통한 특허 신청건수가 감소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이어 그는 연구비가 부족한 초기연구의 경우는 기업과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사례가 많으나 어느 정도 연구비가 확보되면 기업과의 공동연구보다는 연구자 개인중심의 연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2003년 국내 과학자로는 처음으로 ISI(미국과학정보연구소)로부터 재료공학분야 최다 피인용 논문 저자로 선정된 박수문 교수는 우수한 기초연구의 결과가 관련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례를 보여준 우리나라 대표 과학자의 표상이다.

그의 삶의 일대기를 통한 연구활동의 세계를 일문일답을 통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교수님께서 화학을 전공하게된 동기와 그 배경을 설명해 주시지요.

“충청북도 충주가 고향인 나는 농촌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넉넉하지 못한 살림으로 대학을 진학하는데 학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는 사관학교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과정에 물리 화학 수학이 필수과목으로 정해져 있어 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해군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 응시해 서류전형과 신체검사에서 각각 탈락하고 국립대학인 서울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이때 진학준비를 위해 공부했던 화학과목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했다.

화학전공해 식량문제 해결

한 예로 다당류 탄수화물 가운데 자연계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섬유소 즉 셀룰로스는 사람이 먹을 수 없으나 소나 초식동물들은 이를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장내에 존재해 이를 먹이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화학분자구조로 봤을 때 OH그룹의 위치를 변경함으로써 셀룰로스를 사람이 먹을수 있는 전분으로 변화시킨다면 우리의 식량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했다.

이는 내가 화학을 전공하게된 동기이기도 하다. 당시 50년대말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화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나에게 의미를 갖게 했다.”

그렇다면 화학을 전공하면서 그리고 유학시절은 어떻했는지요.

“사실 대학시절 4년간은 한마디로 실망했던 시기다. 내가 알고싶은 화학을 깊이있게 공부하기 보다는 실제와 다른 기초적인 학문을 습득하는데 그쳤다는 점에서 그렇다.

67년 졸업후 학병을 지원했으나 돈을 가져오라고 해 보충역으로 남게됐다. 군에 가는데도 돈을 내야한다는 당시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유학을 가는데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연구장비 기기 직접 만들어 사용

박정희 대통령시절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은 외국에 나갈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69년 충주비료에 근무하면서 8절지 20매분량의 진정서를 만들어 박대통령께 편지로 보냈다.

연간 5천달러 규모의 장학금을 받으며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만들어 놓은 행정상의 잘못된 규정으로 인해 개인적인 피해를 보고있으며, 적지않은 외화를 사용한 기회를 박탈시키고 있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이 편지를 받은 청와대가 3개월 뒤 나에게 출국을 허락함으로써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하면서 유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 뉴멕시코 대학서 교수로 재직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는지요.

“80년대 말 당시 포항공대 김호길 학장이 미국에 방문했던 시절 나의 연구실에 들러 포항공대로 와줄 것을 제안했던게 한국에 들어게 된 동기다. 김호길 학장은 내 연구실에서 연구과정에 필요한 장비나 기기를 직접 만들어 이를 연구에 사용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변종홍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재료연구부 책임연구원도 당시 미국에서 나와 같은 연구를 진행했는데, 실험기기나 장비를 직접 고안해 만드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우리는 이를 체계화해 ‘실험실에서의 소형 전산기’라는 단행본을 국내에 발간하기도 했으며 이를 계기로 국내 강연섭외를 받기도 했다. 당시 실험기기를 만들어 컴퓨터에 연결시켜 자동화해 사용했던 것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어쨌든 나는 88년부터 포항공대에서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 들어와 교수로 재직하면서 느끼신 점은. 특히 외국에서의 연구환경과 차이점이 있다면 들려주시지요.

“한국 생활은 미국에 비해 너무 바쁘다. 대학강의를 비롯한 연구보고서 작성, 신입생 선발에 필요한 면접, 국가연구를 진행하는데 따른 중간보고 등 연구활동을 제대로 진행하는데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예를 들면 국가 연구비를 사용할 경우 학생들의 강의 시간보다 정부 관계기관의 출두 요청을 우선시 해야한다는 점이다.
강의 한번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토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또 연구비를 사용하는데 따른 지출내역을 직접 작성해야하며 이를 수시로 점검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외국의 경우 이를 전담해주는 직원들이 연구장비 구매부터 연구비 사용에 이르는 회계상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국내에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연구비 전담 행정요원 필수

최근 국내 대학교수들의 연구비 유용문제가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이에대한 견해는 어떻신지.

“연구원이 직접 연구비를 사용하면 충분히 연구비 유용이라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다. 앞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연구책임자가 직접 연구비 사용내역을 장부로 만들고 이를 회계처리한다는 점에서 연구비 유용은 기존 연구비 운용체제가 만들어 놓은 당연한 결과로 볼수 있다. 미국의 경우 외부로부터 연구비를 수주하게되면 이를 관리하는 전담직원을 대학내에 별도로 배치한다. 이 전담직원의 인건비는 연구비 일부에서 충당하게 되므로 대학은 의무적으로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행정직원을 고용하게 된다. 즉 연구활동이 왕성한 대학일수록 대학의 조직이 커진다는 점에서 연구비 외부수주는 대학발전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의 오버헤드 즉 추가비용을 상향조정 해야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포항공대의 경우 현행 오버헤드의 비용이 연구비의 15%란 점에서 이같은 구조의 개선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타 대학의 경우는 더욱 낮아 국내 연구활동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버헤드 50%까지는 올려야

그렇다면 연구비의 오버헤드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시는지. 만약 오버헤드를 높일 경우 한정된 연구비로 인한 지원범위 축소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이는데.

“포항공대의 경우 연구비지원에 따른 오버헤드는 약 50%가 적당하다고 본다. 물론 오버헤드를 높이면 다른 곳에 지원될 연구비의 규모가 축소될 것은 당연하나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경쟁체제에서 연구활동 역시 필요한 부분에 선택적으로 충분히 지원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국립대와 사립대의 등록금이 다르듯이 연구비 지원도 차등을 둬야한다는 얘기다.”

지난 2000년부터 기능성분자집합체연구센터를 운영해오면서 기업과의 공동연구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업과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개선해야할 점이 있다면 한말씀 해주시지요.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산학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연구결과물에 대한 권리가 대학보다는 산업체 소유로 하는 예가 많아 공동연구를 진행하는게 쉽지않다. 특히 기업이 요구하는 연구는 주로 응용연구분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치중해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또한 공동연구로 얻어진 특허권에 대한 권리도 기업이 가져간다는 점에서 산학 공동연구는 별로 진행하고 싶지않다. 따라서 기능성분자집합체연구센터를 운영함에 있어 초기에는 기업과 공동연구를 진행했으나 현재는 산학공동연구의 범위를 축소시켰다. 사실 지난 3년간 기능성분자집합체연구센터에서 내놓은 특허 건수는 약 1백여건에 이른다. 그러나 직무 발명제도로 인해 특허권에 대한 권리가 소속기관에 귀속된다는 점에서 정부 관계기관 및 기업과의 공동연구는 별로 달갑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소견이다.”

기초교육 철저해야 응용연구 가능

이공대생들에 대한 교육에 남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공계생을 대상으로한 이상적인 교육방향은 어떤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MIT대학이나 하버드대학의 공대생들은 수학 물리 생물 화학 등의 전공과목 보다 문학 역사학 등 기초학문에 비중을 두어 가르친다. 반대로 문과생들은 물리 화학 수학 등 이공계 학문을 강하게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기초학문이 철저해야 전공분야를 응용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초연구가 잘돼있어야 응용 연구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원천기술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신다면.

“궁극적으로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하려면 입시제도를 없애야 한다. 외국의 경우도 이공계보다는 법대나 의대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공계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법대나 의대를 지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학에 흥미를 갖고 이공계에 자질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입시제도와 주변상황이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은 학생들에게 과학의 흥미를 줄 수 있어야하며 이를 통해 흥미를 느낀 학생들이 이공계진학을 희망할 경우 많은 수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이 앞으로 우리의 과학계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실 포항공대도 수시 입학제도를 통해 들어온 학생들이 정시모집 학생들보다 우수했으며, 학교 공부도 능동적으로 하고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이공계 학생들은 해당과목에 흥미를 갖고 있어야 결과가 좋게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과학기술보좌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국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견해는.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은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미국의 경우 노벨상을 수상했거나 그 이상의 학식과 관련 지식을 겸비해야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치 못했다. 황우석 교수 논문사건과 관련, 당시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사이언스란 저널에서 황교수 논문을 검증했다고 했는데, 이는 말 그대로 논문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사람의 얘기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논문은 심사를 하는 것이지 검증을 한다는 것은 실험실에서나 가능하다. 검증과 심사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사이언스지도 황교수의 논문을 검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같은 수준의 사람이 대통령의 과학기술보좌역을 했었다면 그 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은 어느 정도인지 알수 있는 것이다. 사실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하는 일은 행정적인 부분에 속한다. 그러나 과학기술 자문은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다. 해서도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박훈 기자 hpark@sed.co.kr

포스텍 기능성 분자집합체 연구센터

분자 디바이스 축조 … 원천기술 확보

이 센터는 IMS의 복잡하면서도 풍부한 화학반응과 함께 연관된 제 현상들을 연구하여 우수한 기초연구결과를 산출함으로써 우리 화학계의 학문적 수준을 한 차원 높일 뿐만 아니라, 연구결과를 고부가가치 화학 산업으로까지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IMS를 이용한 분자디바이스(molecular devices)란 분자차원에서 선택적인 인식을 통한 분자간의 상호작용 및 화학반응에 의하여 발생하는 각종 신호의 감지 및 증폭, 이에 따른 응답도 가능한 소형의 핵심적인 장치들이며, 생체 내에서의 자기조절기구(self-control mechanism)들과 그 원리를 같이한다.

이들 자기조절 기구는 여러 가지 화학적인 구성요소들이 집합체를 이루어 최대 효율로 작동하도록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되어 왔다.

이와 같은 IMS를 이해하고 모방함으로써 효율적인 분자디바이스의 축조가 가능하다는 개념 하에 기능성 분자들을 포함한 분자집합체에 대한 심도 있는 기초연구를 수행하여 실용 가능한 분자디바이스를 축조하는데 요구되는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센터에선 현재까지 총 285편의 논문이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발표되었으며, 국제특허 56건, 국내특허 72건의 출원 및 등록 실적을 달성하였다.

이는 교수 1인당 평균 17.8편의 논문 발표 실적이며, 평균impact factor (IF)는 2.66에 달하고, IF 3.0 이상의 질 높은 논문들이 전체 논문의 37%에 달한다.

한편 이 센터가 개소한 이래 현재까지 125명의 석사와 41명의 박사가 배출되었다.

박사졸업생의 경우 49%는 MIT, Brookhaven National Lab., University of Norte Dame, Univ. of Wisconsin 등의 대학 및 연구소에서 Post-doc.

과정을 밟고 있으며 나머지 51%는POSCO기술연구소, LG화학, 삼성 SDI, 삼성전자, 삼성종합기술연구원 등과 같은 기업체에 취업하여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앞으로 이 센터는 3단계 9년간의 연구를 통하여 기능성 분자의 창출, 기능성 분자집합체의 축조방법과 그들의 화학적/물리적 특성을 규명하고, 이로부터 여러 가지 실용 가능한 분자디바이스들을 개발하는 데 요구되는 원천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차세대 화학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국제적인 센터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박수문 교수 프로필

학력_ 1960.4~1964.2 서울대 문리대 학사|1970.8-92.6 미국 Texas Tech Univ. 유기화학 석사|1972.8-1975.5 미국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전기화학 박사
경력_ 1964.1~1967.1 충주비료주식회사 사원|1967.1~1970.6 울산 영남화학주식회사 실험실 과장|1975.8~1997.1 미국 University of New Mexico 화학과 교수|1981.8~1992.8 미국 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연료전지 프로그램 기술자문|1984.1~1984.7 캐나다 University of Toronto 기계공학과 방문교수|1988.8~1999.7 포항공대 화학과 방문교수|1996.8~2003.3 포항공대 화학과 주임교수|1996.8~2002.7 포항공대 기초과학연구소장|1998.8~2002.7 포항공대 이학장|1997.1~1998.12 대한화학회 전기화학분과회장|2004.1~2005.12 한국전기화학회장|1995.8~현재 포항공대 교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