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AI(조류 인플루엔자) 무풍지대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3년 말 국내에서 AI가 유행했을 때 닭이나 오리 등 가금류의 살처분에 참여했던 4명이 AI 바이러스인 H5N1 항체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H5N1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5N1은 H5N2나 H5N7과는 달리 인체감염이 가능한 고병원성 바이러스다. 우리나라에서도 `AI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급속히 번지는 AI…우리는 안전한가
세계는 지금 AI와의 전쟁중이다. 지난해 중국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창궐했던 AI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과 사망이 잇따르면서 초비상이 걸려 있는 것이다.
더욱이 AI는 수그러들 기미 없이 유럽과 아프리카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AI에는 사실 완벽한 안전 지대는 없다. 다만 어느 정도 수준의 차단망을 구축, 억지력을 가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AI 감염 경로는 대략 두가지다. 사람.가금류.철새의 이동이나 가금류 등과의 접촉을 통해서다. 이를 100%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경우 다음 달까지가 최대 고비다. 철새 이동이 이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무사히 넘기면 가을까지는 다소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 질병관리본부측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과 동남아가 인접해 있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항상 AI에 노출돼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특히 북한을 통한 AI 전파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AI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국경이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중국간 빈번한 이동과 교역 등을 감안하면 중국→북한→한국의 유입루트는 잠재해 있는 항시적 위협이다.
충분한 치료제가 확보되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 학자는 밀수입 애완 조류를 통한 AI 유입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행정당국의 방역망이 전혀 미치지 않는 무방비 사각지대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AI 청정국이라고 밝히고 있다. 세계수역기구(OIE)는 6개월 이상 AI 바이러스의 동물 감염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청정국 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사례도 `무증상 감염’이다. H5N1에 감염은 됐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규정하는 AI 환자는 아니다.
H5N1은 일본에서도 올해 1월에 77명이 감염되는 등 무증상 감염이 두차례 발생했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방역 어떻게 하고 있나
우리나라의 방역망에 대해 WHO는 상당히 견고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근까지 국내에서 사람은 물론 AI에 감염된 동물도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보건당국은 우선 공항과 항만 등의 검역망을 대폭 강화해 놓고 있다. 특히 AI 오염국에서 입국하는 여행객 등의 경우 집중 검역 대상이다. 인천공항은 물론 전국 시·군·구별로 AI 발생에 대비한 모의 훈련도 실시했다.
최근에는 휴전선 인근과 철새 도래지, 과거 AI 발생지역 등을 중심으로 집중 조사를 벌였다.
지금까지 저병원성 AI를 보유한 철새가 더러 발견되긴 했으나 고병원성 AI가 아닌 경우는 방역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질병관리본부측 설명이다.
오대규 본부장은 “AI 발생에 대비한 기본 매뉴얼 대로 방역을 해나가고 있다”면서 “만약 가금류 등에서 AI 감염이 확인될 경우 농림부와 함께 즉각 인체 감염 차단을 위한 전방위 대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천병철 고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이 같은 방역망 속에서 조류 독감의 인체 감염 확률이 희박하다고는 하나 인플루엔자는 대유행 하려는 속성이 있는 만큼 상시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과거 멕시코나 이탈리아 등에서 저병원성 독감 바이러스가 확산된 뒤 고병원성으로 바뀐 사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AI치료제 타미플루 확보 `주춤
AI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충분한 치료제가 확보되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있다.
타미플루의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는 스위스의 로슈사가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을 통해 국내 제약사에 타미플루 생산 권한을 주는 `서브 라이 선스’(sub-license) 제안을 해와 16개 업체들이 참여 신청을 했지만 이후 업체 선정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로슈가 중국과 인도 제약사에는 서브 라이선스를 부여했지만 한국은 라이선스를 줄만한 큰 시장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현재로서는 로슈 로부터 라이선스를 확보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타미플루의 자체 생산도 라이선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가 현재 비축해 놓은 타미플루는 72만명 분으로 연말까지 100만명 분을 확보할 계획이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국민의 10%에 해당하는 타미플루 확보를 추진하고 있고 일본은 모든 인구를 커버하는 물량을 비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적정 물량은 500만명 분”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