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는 사전적 의미로 ‘어떤 사람의 공업적 발명품에 대해 그사람 또는 그사람의 승계자에게 독점할 권리를 법적으로 부여하는 행정행위’를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업과 개인들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특허청의 문을 넘나들고 있다.
이중에는 머지않은 미래에 히트상품, 첨단제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 아이디어 제품들은 물론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을 만큼 황당무계한 기술이나 상품화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아이템들도 다수 존재한다. [편집자 주]
자기 목소리를 듣는 헤드폰
지난 86년 ‘자기 목소리를 듣는 헤드폰’이라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특허가 출원됐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제품은 자신이 한 말을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헤드폰으로서 마이크와 이어폰이 일체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원인은 이를 어학공부를 위한 발음교정에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의 귀로 즉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발음 분석과 검토가 용이함은 물론 기억력의 촉진, 어학공부의 심도 증진에도 탁월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견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청각에 이상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자신의 말소리를 즉시 듣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발음교정을 위해서라면 실시간 보다는 녹음된 목소리를 차후에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또한 말과 동시에 헤드폰에서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마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아무것에도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 것이 자명하며 실수로 말소리라도 높이게 되면 청각에 심각한 손상을 미칠 개연성까지 있다.
결국 이 아이디어는 ‘내 생각을 나에게 즉시 알려주는 기계’, ‘왼쪽 귀로 들은 소리를 즉시 오른쪽 귀로 전달해주는 기계’ 등과 같이 전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장치일 뿐으로 당연히(?) 특허등록 거절 판정을 받고 사장됐다.
택시강도 방지장치
택시강도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9시뉴스의 단골손님이다. 피해자들은 금전을 탈취당하는 것은 물론 신체상해를 입기도 하며 때로는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한 불의의 강도피해로부터 택시기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택시강도 방지 장치’라는 명칭의 특허가 지난 85년 출원됐다. 이 장치는 고압의 전기를 방출하는 방석을 손님 좌석에 올려놓는 간단한 원리이다.
만일 손님이 강도로 돌변할 때에는 운전석에 설치된 비상버튼을 눌러 고압의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다. 시스템의 단순성에 비해 즉각적이고 확실한 제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강도피해를 당했었던 운전자라면 솔깃한 아이템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택시기사의 안전을 위해 손님을 전기의자에 앉히는 반인권적 행위인데다 오작동에 의한 사고 개연성이 상존해 안전확보 보다는 안전저해의 요인이 더 크다.
심장질환자, 어린이, 노약자 등은 자칫 전기쇼크로 인해 숨질 수도 있다. 특히 이 장치가 범죄꾼들의 손에 들어갈 경우 당초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납치, 강도, 강간 등을 도와주는 범죄장비로 악용될 가능성도 지대하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인 이 특허는 결국 등록거절 됐다.
팔베개 보호대
많은 여성들은 미혼과 기혼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의 팔을 베고 눕는 것을 꽤 좋아한다.
여성들의 입장에서 연인들의 팔베개는 분명 아름답고 사랑스런 광경이겠지만 남성들에게는 웬만해선 시작하고 싶지 않은 고통의 상징이다. 5분도 되지 않아 팔이 저려오고 10분이 넘어서면 잠든 연인의 머리를 강제로 치우고 싶을 만큼 고통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실용신안 등록된 팔베개 보호대는 이처럼 말 못할 팔저림의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남성들을 위한 데이트 아이템이다. 소형베개에 팔을 넣을 수 있도록 아치형 구멍을 뚫어 놓은 이 제품은 쭉 뻗은 팔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아무런 고통없이 여자친구나 와이프에게 장시간 팔베개를 해줄 수 있다.
출원인은 또 탄력고무를 사용해 딱딱함을 없앴고 윗부분을 오목하게 만들어 여성들이 팔을 직접 베는 것 보다 훨씬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출원인은 여성들이 팔베개를 통해 편안함보다는 연인과의 친밀감과 애정을 느끼고자 한다는 심리를 완전히 간과했다.
필자는 남성들에게 정중히 권고하고 싶다. 향후 이 제품이 출시되더라도 팔베개를 해달라는 여자친구의 요구에 보호대를 꺼내놓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기를. 평생을 독신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밥그릇에 밥하는 방법
특허의 한계가 없다지만 이제는 밥을 짓는 방법까지 특허가 출원되는 세상이 왔다.
지난 2000년 2월 경기 시흥시에 거주하는 백모씨는 ‘밥그릇에 밥하는 방법’을 특허 출원했다. 이 특허는 밥솥에 밥을 하여 밥그릇에 담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밥그릇에 생쌀을 넣어 직접 밥을 짓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출원인은 특허출원서에서 “IMF이후 한식집을 창업했는데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밥을 짓고 그릇에 담는 일만을 해야했다”며 “밥솥에서 밥을 풀 필요 없이 밥그릇에 직접 쌀을 담아 밥을 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해법을 찾아냈다”고 개발배경을 밝혔다.
그가 설명하는 밥그릇에 밥을 하는 방법은 감자를 삶는 방법과 유사하다. 먼저 압력솥 속에 구멍 뚫린 선반을 넣고 적정한 물을 붓는다. 이후 적정량의 생쌀과 물을 넣은 밥그릇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7~10분간 센 불로 가열한후 5분간 약한불로 뜸을 들이다 다시 센 불로 가열하면 완성된다는 것이다.
출원인은 이렇게 하면 100인분의 밥을 만드는 시간을 기존 2시간에서 20분으로 대폭 줄일 수 있어 대형식당이나 단체급식소 등에서의 활용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아직 정보공개 중인 상태여서 섣불리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설사 특허로 공식 등록이 이뤄지고 많은 식당에서 이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특허료를 청구하기 위해선 모든 식당의 주방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특허권 행사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주선의 안전한 대기권 통과 방법
우주선은 대기권을 통과할 때 공기(대기)에 함유된 수소(H), 산소(O) 등의 가연성쪾조연성 원소와 마찰을 일으켜 상당한 열을 발생시킨다.
그렇다면 우주선이 열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대기권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 2004년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아닌 대한민국 땅에서 ‘우주선의 안전한 대기권 통과 방법’이 특허출원됐다.
출원인은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열 발생의 원인이 우주선의 빠른 속도에 있으므로 가능한 천천히 대기권을 통과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비행기에 우주선을 싣고 대기권 끝까지 운반한 뒤에 우주선(또는 로켓)을 발사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함께 제시했다.
하지만 우주항공은 이처럼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속력을 늦출 경우 연료소비량이 지금보다 두세배 이상 많아진다는 문제는 배제하더라도 모든 행성에는 지표면에서 우주로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속도(탈출속도)가 있으며 지구의 경우 초속 11.2km이다.
즉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우주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초속 11.2km의 속력으로 나아가야만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출원인은 출원서 말미에 인류를 위해 특허료 무료화 가능성까지 피력했지만 자신의 미천한 지식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교육용 사랑의 매
머지않아 아이들의 가정교육을 위한 ‘사랑의 매’, 즉 회초리를 돈을 주고 사는 시대가 열릴지도 모르겠다. 지난 2000년 10월 ‘교육용 사랑의 매’가 실용신안 등록됐기 때문이다.
이 체벌용 매(rod)는 나무 또는 금속으로 만들어지는데 손잡이를 포함한 모든 부분에 뾰족한 형태의 가시가 촘촘히 박혀있는 것이 최대 특징이다.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예상과 달리 가시의 역할은 체벌을 당하는 피체벌자의 고통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부모님, 선생님 등 체벌을 가하는 사람의 손바닥에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다.
출원인은 몽둥이, 빗자루, 대걸레자루 등 기존의 체벌도구들은 체벌자가 이성을 잃고 과격한 매질을 가할 경우 피체벌자의 육체에 심각한 상해를 입힐 수 있지만 이 제품을 사용하면 체벌의 강도를 높일수록 체벌자 자신의 고통도 강해지기 때문에 도를 넘어서는 체벌을 방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체벌자와 피체벌자가 고통을 함께함으로써 교육적 효과도 배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이 제품은 단순한 의미의 ‘사랑의 매’라기 보다는 ‘과격한 체벌 방지용 매’인 셈이다.
지난 91년이후 출원된 여러 종류의 ‘사랑의 매’ 중에서 유일하게 실용신안 등록을 받았을 만큼 아이디어는 상큼하지만 주소비자인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구입욕구를 자극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에서 상품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