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노아의 방주

지구 최후의 날을 대비한 ‘최후의 날 저장고’

노르웨이 북쪽 북극해의 한 섬에 전 지구적 재앙을 대비한 ‘최후의 날 저장고(doomsday vault)’가 만들어진다.

최후의 날 저장고는 핵전쟁이나 소행성과의 충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등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300만 종의 씨앗이 보관된다.

이 저장고의 외부 벽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지는데, 안전성에서 보면 미국 연방금괴보관소를 능가하는 ‘살아있는 요새’가 될 전망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살아있는 요새

노르웨이 정부는 지난 3월 노르웨이 북부에서 1,000km 떨어진 스발바드 섬에 국제종자저장고 건설에 착수, 2008년 완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발바드 섬에 지어질 국제종자저장고는 사람을 위한 대피소가 아닌 종자(種子) 보관소로 전 세계 종자은행과 지구농작물다양성보호단체(GCDT)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된 300만종의 식물 종자가 보관될 예정이다.

스발바드 섬은 학자들이 지질구조, 향후 200년 동안의 기후변화를 예상한 해수면 상승 등을 고려해 최적지로 선정했다. 스발바드 섬을 구성하는 4개의 섬 중 하나인 스피츠베르겐(Spitsbergen) 섬의 바위산 지하 120m에 만들어지는 저장고에는 총 500만 달러(46억7,000만원)가 투입된다.

내부 온도는 영하 18℃로 유지된다. 이 정도면 완두는 20~30년, 해바라기는 수십 년, 수백 년까지도 보관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케리 포울러 GCDT 집행위원장은 “저장고는 사람의 방해를 거의 받지 않을 것이며, 전문가의 현장 방문은 있겠지만 상시 근무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르웨이 정부는 “저장고 외부 벽은 콘크리트로 건설되며, 안전성 면에서 미국 연방금괴보관소를 능가하는 살아있는 요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후의 날 저장고는 핵전쟁이나 소행성과의 충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등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완벽한 방재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저장고의 맨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식차단 축과 공기차단 문을 통과해야 한다.

구약성서에서 노아가 방주를 통해 지구의 동식물을 안전하게 지켜냈던 것처럼 최후의 날 저장고 역시 전 지구적 재앙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식량의 씨앗을 저장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저장고에 보관될 종자의 선정은 물론 수집과 보관 업무를 맡은 포울러 위원장은 “세계에 보급돼 있는 모든 종류의 작물이 저장고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면서 “지하 깊숙이 보관하는 것 이외에는 가뭄이나 기후변화 등으로부터 작물을 효과적이고 안전하며 지속 가능하게 지켜낼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수개월에 걸쳐 이 섬의 방사능 레벨을 조사했으며, 지질학적 특성은 물론 향후 200년간 격렬한 기후변화의 결과도 예측했다”며 “남극과 북극은 물론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도 이 섬은 안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872년 대영박물관의 이집트 및 아시리아 담당자인 스미스는 20년 전 발굴된 한 점토판을 읽다가 뜻밖의 문장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 점토판은 아슈루바니팔 왕(기원전 668~628)이 세운 도서관 유적에서 발견된 것인데, “배가 니시르산에 도착한 다음 날려 보낸 비둘기가 다시 배로 돌아왔다”고 쓰여 있었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얘기 끝부분과 너무나 흡사했다.

점토판에 흥미를 느낀 스미스는 또 다른 점토판을 찾아내 읽었다. 점토판 전체의 줄거리는 구약성서의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점토판은 나중에 길가메시 대서사시로 밝혀지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원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고 있던 셈족의 일원임을 감안하면 구약성경이 맞느냐, 길가메시 대서사시가 맞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정작 관심은 노아가 만든 방주(方舟)다.

120년에 걸쳐 만들어진 방주(길이 90.9m, 너비 15.15m, 높이 9.09m, 상·중·하 3층으로 된 배)에는 8명의 노아 가족과 한 쌍씩의 동물이 태워진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인간은 다시 노아의 방주를 만들고 있다. 핵전쟁이나 소행성과의 충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등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완벽한 방재시설을 갖춘 신(新) 노아의 방주를...

자료제공 : 중소기업진흥공단





각국 종자은행에 대한 백업 역할 겸해

북극 저장고의 건립 목적은 기상이변 등으로부터 종자를 지키는 것이지만 세계 각국에 있는 종자은행을 백업하는 기능도 갖게 될 전망이다.

일례로 지난해 9월 필리핀을 휩쓸었던 거대한 태풍으로 필리핀 종자은행이 초토화된 적이 있다. 포울러 위원장은 “2피트가 넘는 거대한 해일로 인해 종자은행이 진흙으로 뒤덮였다”면서 “이런 사태는 종자은행에서 일어나야 할 마지막 일”이라고 말했다.

최후의 날 저장고에는 벼 10만종과 바나나 1,000종을 비롯해 양귀비 씨만큼 작은 씨앗에서부터 코코넛만큼 큰 것까지 모두 300만종의 다양한 씨앗이 보관된다. 하지만 저장고 건설만으로는 노아의 방주처럼 인류를 위한 미래의 씨앗이 자동적으로 보관되는 것은 아니다.

저장고가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종자가 반드시 0℃ 이하로 보관돼야 한다. 실제로 저장고 내부 온도는 영하 18℃를 유지할 계획이다. 또한 매년 겨울 2차례씩 공기를 교체해줘야 한다. 하지만 핵 오염 등 공기를 교체할 수 없는 극단의 상황이 오면 저장고를 덮고 있는 영구 동토층이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

노르웨이 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것은 지난 1980년대였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중단됐다. 당시 구(舊) 소련이 스피츠베르겐에 대한 접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전 종식 후 식물 유전자원 국제협정에 따라 자국의 식량에 대한 합법적 보호가 허가되었고, 이것은 저장고 계획 부활의 시작이 됐다.

포울러 위원장은 “이 저장고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씨앗은행이 될 것이며, 기존의 종자은행 역할을 하지 않고 오직 엄청난 재앙이 닥쳐왔을 때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표본을 달로 보내는 계획도


최후의 날 저장고와 비슷한 맥락에서 유전자(DNA) 표본을 달에 보내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유전자 표본을 달에 보내는 계획은 로버트 샤피로 뉴욕대 생화학 명예교수를 포함, 우주개발업체 대표, 의회 관계자 등 쟁쟁한 인물들로 구성된 문명구조연대(ARC)가 추진해 오고 있다.

이들은 핵전쟁이 일어나거나 외계의 소행성과 충돌하는 재앙이 벌어져 인류가 멸망하게 되면 최후의 날 저장고 역시 효과가 없을지 모른다는 점을 감안했다.

이에 따라 중요 자료를 따로 저장해 놓듯 인간 유전자와 지식을 달에 ‘백업(backup)’하는 시설을 건설해 두면 설사 지구 자체의 존립이 어렵더라도 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씨앗은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특히 달에 유인기지를 건설하겠다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구상과도 맞물려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달에는 인공수정 시설과 함께 냉동 정자와 난자가 보관되고, 만약의 경우 기지 운영자들이 ‘아담과 이브’의 역할을 맡게 될 수도 있다.

닐 암스트롱에 이어 두 번째로 달을 밟았던 버즈 오드른은 “ARC의 계획은 현재의 우주 기술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시급히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샤피로 교수는 “인류 멸망은 소행성과의 충돌 같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아주 작은 사건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918년 독감 변종 바이러스 때문에 3,000만 명이 죽은 것처럼 조류 인플루엔자(AI)로 전 세계가 공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의 창궐로 공항과 은행, 정부의 행정 업무가 멈추는 등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소해 보이는 문제가 최후의 날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글_박경민 테크타임즈 기자 jenon426@hah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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