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푸른 눈, 흰 피부, 금발은 모두 열성

푸른 눈에 흰 피부를 가진 금발. 서양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미인의 조건이다.
그런데 많은 인종이 함께 살고 있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푸른 눈에 흰 피부의 금발 미인을 찾아보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지난 2006년 10월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미국인 가운데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100년 전에 비해 3분의 1이나 줄었다고 보도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푸른 눈, 흰 피부, 금발 모두 ‘열성’이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멘델의 법칙이 생각날 것이다. 멘델은 다른 형질의 완두콩을 교배했을 때 다음 세대에 나타나는 형질을 ‘우성’, 나타나지 않는 형질을 ‘열성’이라고 하는 우열의 법칙을 제시했다.

완두콩에는 우열의 법칙이 잘 나타났지만 사람의 유전에는 어떻게 나타날까? 사람의 유전을 통해 우열의 법칙에 대한 막연한 오해를 풀어보자.

우열의 법칙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우성은 우월한 성질, 열성은 열등한 성질이라는 막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이로운 열성도, 해로운 우성도 있다.

쌍꺼풀, 보조개 등은 갖고 싶은 우성이지만 대머리와 육손은 갖고 싶지 않은 우성이다. 열성이라도 금발, 푸른 눈 등은 갖고 싶은 열성이다.

사실 우열의 법칙은 단백질 생성과 관련이 있다. 분자생물학의 관점으로 볼 때 유전자는 어떤 단백질을 만드는지를 알려주는 설계도와 같다.

만약 어떤 형질이 나타나기 위해 특정 단백질이 필요하다면 그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는 것이 우성, 없는 것이 열성이 된다.

이처럼 우성과 열성은 유전자에 의해 단백질이 만들어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일 뿐 개체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열의 법칙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우성이 열성보다 더 많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우성이 열성보다 나타날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확률을 무시하고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인간의 모든 형질이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는 사람의 피부색이다. 흰 피부는 열성이지만 극지방에 사는 사람의 피부는 대부분 희다.

이들의 피부가 흰 이유는 약한 햇빛을 조금이라도 많이 받기 위해서다. 피부의 바깥부분에 위치해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닌 색소는 햇빛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멜라닌 색소가 적으면 햇빛이 속 피부까지 도달할 수 있다. 반대로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은 멜라닌 색소가 햇빛을 흡수해 속 피부까지 도달하는 햇빛의 양을 줄여준다.

우열의 법칙이든 다른 유전 법칙이든 인간의 유전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키, 몸무게, 피부 색, 얼굴 모양, 머리카락 등의 다양한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여러 다른 유전자와 복잡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실이 밝혀졌지만 알면 알수록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글_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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