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의 왕국 '중국'

짝퉁 명품 핸드백이나 해적판 DVD는 이제 더 이상 중국 불법복제 산업계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현재 중국은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등은 물론 자동차와 마이크로 칩에 이르기까지 금전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외국의 첨단제품들을 모조리 모방해 내고 있다. 모방의 수준 역시 원본 제품을 단순히 참조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아예 대놓고 베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도 지방 어느 곳의 영세업자가 아니라 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더 적극적이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중국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겉모습뿐만 아니라 성능까지 원본품의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복제업자들과 손잡고 서구국가로 물건을 수출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오리지널 제품보다 더 성능 좋은 제품들까지 나오고 있다. 즉 ‘진짜보다 나은 가짜’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복제와 모방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 제친 셈이다. 이제 전 세계가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선호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복제 혁명의 선봉 ‘미니원’


중국의 전자제품 제조업체인 메이주(Meizu, 魅族)사가 개발한 스마트폰인 미니원(miniOne)은 휴대폰 외부에 버튼이 전혀 없다.

지난 6월 출시돼 미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애플사의 최신 휴대폰인 아이폰(iPhone)과 유사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제품은 누가 봐도 아이폰을 베낀 복제품임을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모든 면이 닮았다.

하지만 미니원은 출시도 되기 전에 그 존재가 확인된 것만으로 전 세계 얼리어답터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을 정도로 귀중한 보물 취급을 받았다.

아이폰의 짝퉁이지만 오히려 아이폰보다 뛰어난 성능을 지닌 탓이다.
실제 미니원은 아이폰에서는 실행할 수 없는 인기 모바일 소프트웨어의 실행이 가능하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이동통신 회사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미국에서만, 그것도 AT&T라는 특정 회사 고객들만 쓸 수 있는 아이폰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제품가격이 아이폰의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에 잠재고객은 무려 10배나 많다.

올 들어 지난 3월경 미니원에 대한 첫 뉴스가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커다란 관심을 표명했던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당시 전 세계 네티즌들의 관심은 미니원의 존재가 사실인지, 언제 시판될지, 그리고 정말로 아이폰보다 나은 성능을 가지고 있을지에 모아졌다.

몇 달이 흐른 5월경 미니원의 정체는 사실로 확인됐다. 애플을 약 올리기라도 하듯 아이폰의 출시를 몇 주 앞두고 아이폰의 복제품인 미니원의 시판이 먼저 이뤄진 것.

실체가 드러난 미니원은 아이폰과는 다른 운영체제(OS)를 채용했지만 그 차이를 인식할 수 없을 만큼 화면 디자인 곳곳에서 아이폰을 빼다 박았다. 반면 성능은 예상대로(?) 아이폰을 능가했다.

결국 애플은 미니원의 소식을 접하자마자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섰지만 미니원의 출시를 막지 못했음은 물론 두 제품을 비교해본 소비자들의 평가에서도 판정패 당하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중국산 복제 자동차는 로고를 떼어냈을 경우 진품 자동차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다.


더욱이 메이주는 지난해 애플의 아이팟 나노(iPod Nano)를 카피,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애플보다 더 높은 점유율을 확보했었던 전력이 있어 그 아픔은 더했다.

이처럼 유명제품의 모방과 복제는 중국이라는 나라에게 전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거의 모든 상품들이 복제되고 있다. 그 수법이 너무나 정교해 진품 제작사들이 복제품을 가져온 고객들에게 무료 보증수리를 해줄 정도다.

그러나 기나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중국의 모방과 복제의 역사에도 달라진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진품의 상표까지 위조한 일명 ‘짝퉁’이 주류를 이뤘던 반면 지금은 복제품에 자체 상표를 달아 판매하는 추세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체리(Chery)사는 GM사의 인기모델을 부속품 하나까지 철저히 복제해 생산한 뒤 자사 로고를 붙여 당당히 판매하고 있다.


도로를 누비는 복제 자동차

러시아워에 중국 베이징의 제3 순환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낯익은 자동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웬만한 선진국의 대도시 못지않게 벤츠, 폭스바겐, BMW, GM(대우), 도요타 등 세계의 유명 차들이 좌우에 널려있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익숙한 외관과는 동떨어지게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로고와 이름들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라이바오 SRV(Laibao SRV)’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한 자동차는 혼다의 CRV와 똑같이 생겼으며, 질리(Geely)사의 중형세단 미리에(Meerie)는 벤츠 C클래스를 완벽하게 카피했다. 미리에의 경우 신차의 가격이 벤츠 C클래스의 중고차보다도 적은 12만 위안(약 1,5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판매율이 높은 모델은 5,000달러(약 500만원) 미만의 제품군.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아주 약간의 심적 부담을 않고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중국의 도로 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자동차는 이 제품군 중 가장 시장점유율이 높은 체리(Chery)사의 큐큐(QQ)다.

이 큐큐 또한 셰비 스파크(Chevy Spark)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대우자동차의 마티즈 모델을 작은 부품까지 완벽하게 복제한 차종. 마티즈의 가격은 1만 달러(약 1,000만원)를 조금 밑도는 수준인데, 지난 2003년 체리가 5,000달러의 큐큐를 내놓자 대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티즈의 문을 떼어내 그대로 큐큐에 달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나사 구멍조차 철저하게 복제한 차량을 너무도 당당히 시장에 내놓은 까닭이다.

이와 관련, 미국 위스콘신 주의 제임스 센슨브레너 의원은 2004년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마티즈와 큐큐는 로고만 제거하면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보하는 복제 기술

중국이 짝퉁 명품과 해적판 DVD에서 벗어나 휴대폰, 자동차와 같은 기술 집약형 제품의 복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수년전부터 본격화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에 기반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인 A.T.커니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복제업자들은 지금까지 크게 5개의 단계를 거쳐 왔다고 한다.

제1기는 1980년대. 이때에는 미키마우스 티셔츠 같은 섬유제품의 복제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품질이 워낙 좋지 않았고 디자인도 조잡했기에 거의 모든 복제품은 내수용으로만 소비됐고 해외에서 사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해외에 중국 복제품이 알려진 것은 제2기에 해당하는 1990년경이다. 이때에도 여전히 의복과 액세서리의 복제가 주종을 이뤘지만 품질이 일정수준에 다다르면서 알뜰한 서구인들이 중국산 짝퉁을 고가 브랜드의 대체품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중국 복제업체들은 듀라셀 배터리, DVD와 같은 하급기술 제품의 상표권 침해를 개시했다.

지난 1998년에는 캘러웨이 골프 클럽이 등장했으며, 가짜 자동차 안전유리 등 기능적으로 원본품과 별 차이가 없는 복제품들이 나타났다. 바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첨단기술의 불법 복제’가 시작된 것이다.

2000년부터는 기술 수준이 한층 높아져 기능적으로 완벽한 인텔 프로세서, 비아그라, 보슈 전동공구의 복제품 등까지 만들어냈다.

이렇게 중국은 저가의 장난감이나 휴대형 CD플레이어 등 값싼 소비재를 생산하던 과정을 지나 이제는 서구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브랜드의 대체품을 생산하는 단계로 성장했다.

이 같은 중국의 산업 행보는 여러모로 일본이나 한국이 걸어갔던 길과 유사점이 많지만 중국만의 독특한 측면이 있다.

경제발전 속도가 앞의 두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뤄짐으로서 형편없는 짝퉁 생산으로부터 고품질 대체품의 생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10여년 정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불가능은 없다

중국의 복제 능력은 가히 경이적이다. 어떤 제품이든, 어떤 첨단기술이 활용됐든 중국인들의 복제 대상 리스트에서 제외될 수 없다.

중국이 지금까지 가장 자주 활용한 복제 방법은 ‘몰래 생산하기’. 이는 해외업체와 합법적인 하청 생산계약을 맺은 후 공장을 24시간 풀가동시켜 낮에는 정품을, 밤에는 암시장을 겨냥한 복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 복제품들은 진품과 동일한 기술로, 동일한 공정을 거쳐 생산되므로 소재의 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진품과 거의 똑같다.

유일한 단점은 하루 중 반나절만 복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때문에 90년대 중반에는 정품 생산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정부에 제출한 제조공장의 설계도면을 빼내 불법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진화됐다.

당시에는 현지 공무원들과 조직 폭력배들이 개입돼 조직적으로 청사진 복제가 이루어졌다.

점차 중국의 불법복제 문제가 이슈화되자 해외의 기업들은 중국 업체에 외주를 줄 때 보다 신중을 기했다. 기술력이 필요 없는 단순 부품만 중국에서 만들고 중요도가 높은 핵심부품은 자국에서 만드는 묘안을 떠올린 것.

그러나 복제능력에 탄력이 붙은 중국을 저지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이었을까. 그 신묘함은 더욱 두드러졌다. 중국과 전혀 협력관계가 없었던 회사의 제품들마저 복제품이 출현한 것이다.

실제 보트와 군용 험비 차량의 계기판을 제작하는 미국 토머스 G. 파리아 코퍼레이션은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본사가 위치한 코네티컷 주 이외의 업체들에게 외주를 준적이 없었지만 중국 내에 자사 제품을 복제하는 공장이 있음을 발견했다.

성능은 진품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외관만큼은 사소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복제한 제품을 내놓고 있었다.

이 회사의 데이빗 블랙번 사장은 미-중 경제안보위원회에서 “중국인들이 우리 회사의 제품을 복제하고 있다”며 “복제품의 라벨에는 토머스의 사명은 물론 카탈로그에 적힌 부품번호, 품질 검사관의 이름까지 정확히 적혀 있다”고 시정을 촉구한 바 있다.

이와 같이 ‘복제품의 전 세계 유통’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중국 복제업자들은 언제라도 유통망의 빈틈을 헤집고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심지어 한정판으로 생산된 신제품 정보까지 입수할 정도로 말이다. 향후 1년간 북미지역에서만 한정 판매될 예정에 있던 아이폰의 복제가 좋은 사례다.


경쟁력은 ‘스피드’

이처럼 막강한 정보력, 티끌 하나까지 정확히 베껴내는 정밀함, 진품의 성능에 버금가는 기술력은 중국을 ‘복제의 대가’로 성장시킨 3대 성장 동력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중국의 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11월, 세계 3대 휴대폰 제조업체인 LG전자는 아이폰의 출시가 예상되는 세계 각 지역에 ‘초콜릿폰’이라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아이폰 발매 이전에 관련시장을 사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 제품은 슬라이드형 키패드, 대형 컬러 스크린, 아이폰과 유사한 내비게이션 휠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전화통화, 문자메시지 송수신은 물론 디지털카메라 및 MP3 재생 등의 기능을 채용해 LG의 야심작으로 평가될 정도였다.

깔끔한 디자인과 탁월한 성능에 힘입어 LG전자는 출시 후 1년 6개월 만에 전 세계에 약 1,000만대의 판매고를 올렸다.(이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의 판매 목표로 잡은 양과 동일한 수준이다.) 전 세계 어느 국가든 초콜릿폰은 런칭되는 즉시 매진에 매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다.

단 한곳의 예외가 있다면 바로 중국. LG전자가 초콜릿폰의 개발 후 중국 버전을 내놓기까지 약 4개월이 소요됐는데, 이때는 이미 가짜 초콜릿폰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뒤였다.

중국 소비자들의 휴대폰 선택 기준에 ‘품질’이라는 항목은 뒤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초콜릿폰의 막강한 성능도 복제폰의 열기를 꺾지 못했다.

당시 LG전자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복제 초콜릿폰은 원본품과 완벽하게 동일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며 “복제폰의 출시가 먼저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LG전자의 휴대폰이 자국 회사 제품을 복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까지 하다”고 토로했다.

휴대폰 분야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삼성전자도 LG전자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처지다. 중국의 불법 복제 전화기로 인해 지난해에만 무려 10억 달러(약 9,500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은 것.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얼마 전 중국 내 휴대폰 판매망을 역(逆) 추적하는 방법으로 복제폰 생산업자들을 조사, 역설계 작업을 거쳐 탄생한 중국 복제폰 제조업체들의 기술전략 몇 가지를 파악해냈다.


품질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면서 복제품의 성능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산 복제품은 이제 정품을 능가하는 성능을 자랑한다.



먼저 복제업자들은 어떤 모델을 복제해야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복제 대상을 선정한다. 이렇게 대상이 확정되면 해당 휴대폰과 관련해 가능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전시회에 시제품이 출시되기라도 하면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을 때까지 제품 구석구석을 근접 촬영하며, 출시된 이후에는 가장 먼저 그 제품을 구입한다.

그리고 복제품 제작을 좀 더 쉽게 해줄 수 있는 기술, 예를 들어 중국에 출원된 특허 같은 것을 찾아다닌다.

사전분석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제조 단계로 넘어가면 20~40여명으로 이루어진 엔지니어 팀이 고용된다. 이들은 원본품을 분해, 회로기판의 해독작업에 나서는 한편 그것과 유사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운영체제(코드)를 개발한다.

이때 복제업자들은 대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코드를 발견해서 활용하거나 소스가 공개된 리눅스 기반 시스템을 일부 변형하는 방식을 애용한다. 이 두 작업의 실행에 약 한달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한 달여의 시간은 플라스틱 케이스, 액세서리, 사용 설명서, 포장 상자 등 보조 아이템들을 완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를 고용한 후 8주 이내에는 대량생산에 돌입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관계당국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한 공장에서 약 3만대의 제품을 만들고 나면 다른 공장으로 제조 루트를 옮기는 치밀함까지 갖고 있다.

이 같은 신속성은 복제업자의 색출 및 고발을 위해 자체 조사를 실시했던 삼성전자를 탄복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초 목적은 새까맣게 잊은 채 그들을 직원으로 채용하려고 시도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복제업자들은 이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경찰을 피해 다니며 가짜를 만드는 것이 다국적기업인 삼성전자의 직원으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복제폰 1대 당 약 1달러 25센트(약 1,200원)의 순수익이 발생한다.)

결국 삼성전자는 이 경험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복제업자들에게 아예 시간을 주지 않는 것만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비책임을 깨달은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신제품을 출시한 직후 가능한 빨리 중국에도 같은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회사까지 복제한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산 복제품에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고 있던 일본의 유명 가전업체 NEC사도 지난해 중국의 복제산업을 철저히 조사한 적이 있다.

아직 자국에서 조차 정식 출시되지 않은 최신 휴대전화와 DVD플레이어, MP3플레이어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불만이 AS센터에 접수됐기 때문이다.

NEC가 사설보안기업인 인터내셔널 리스크사에 의뢰해 조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에 ‘가짜 NEC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회사는 NEC의 중국 자회사를 사칭하고 있었는데, 적발 당시 무려 50여개 이상의 공장을 거느리고 있었을 정도로 엄청난 활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인터내셔널 리스크의 스티브 빅커드 조사원은 “외견상 이 회사는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것으로만 보이지만 NEC라는 기업을 통째로 카피한 국적 불명의 유령단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회사의 중역들은 NEC 직원들과 똑같은 명함과 이메일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마케팅 플랜과 도매 공급 망도 갖고 있었다. 일부 시설들에는 NEC의 로고가 선명한 간판까지 버젓이 내건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NEC측이 혀를 내둘렀던 부분은 따로 있다. 놀랍게도 이 가짜 NEC는 일본 NEC로부터 하청을 받아 정품 제품을 생산 중이던 모 기업에 저작권 사용료까지 받고 있었던 것.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된 후 지난해에만 18개 공장에 대한 수색이 벌어졌으며, 5만여 점의 복제품이 압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장들 가운데 문을 닫은 곳은 하나도 없다. NEC의 이름만 버린 채 아직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듯 중국이 복제의 천국이기는 해도 불법 복제업자들이 당국에 적발되면 그 처벌 수위는 어떤 국가보다 가혹하고 엄격하다.

특히 매스컴의 톱기사를 장식, 정부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을 때에는 일말의 선처도 기대할 수 없다.

올해 5월 29일 중국 식품의약국의 전 국장인 정 샤오위에 대한 판결은 중국이 얼마나 단호하고 신속하게 형을 집행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지난해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짜 항생제의 제조를 승인해 준 대가로 미화 85만 달러(약 8억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했다.

법원이 내린 판결은 뇌물수수 공무원에게 내린 벌이라고 하기에는 부당하다고 느껴질 만큼 무거웠다. 사형이 선고된 것이다. 결국 샤오위는 형이 확정된 후 단 11일 만인 6월 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복제업자를 찾아내 수년간의 소송을 통해 승소를 한다고 해도 얻는 것은 별로 없다.

지난해 소니는 자사의 캠코더 배터리를 복제한 한 회사에 승소했으며 프라다, 샤넬, 구찌, 버버리, 루이비통 등도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명품 짝퉁 거리였던 ‘실크 마켓(Silk market)’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현장 폐쇄 조치를 이끌어냈다.

당시 중국 언론은 이 재판 결과를 놓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중국 정부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논평했지만 현실은 이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현재 베이징에는 실크마켓이 다시 문을 열었으며, 예전보다 더욱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대니 프리드만은 “중국을 보면 얼핏 중앙정부가 강력한 통치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권력이 여기저기로 분산되어 있는데다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소황제’들이 넘쳐나는 국가”라고 말했다.





상단 좌측부터] 텔스다(Telsda)의 T218, T607, TS9. [하단 좌측부터] 삼성전자의 D500, E720, E330.








겉모습 속에 감춰진 위험

전문가들이 중국산 복제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 꼭 빼놓지 않고 지적하는 점이 있다.복제품의 만연은 단순히 해외기업들의 매출 감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시민들의 안전에도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다수 복제품들이 품질 면에서 정품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래서 쌍둥이처럼 닮은 겉모습과는 달리 복제품은 일반 소비자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치명적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자동차 등 위급상황에서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우자동차의 마티즈를 복제한 큐큐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제품. 지난해 독일의 한 자동차클럽이 동일조건 하에서 두 차량의 충돌실험을 실시한 결과, 안전성에서 무시무시한 차이가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마티즈는 장애물에 부딪치자 차의 앞부분이 구겨지며 위로 튕겨져 올라갔다.

운전자가 받은 충격의 치명도를 나타내는 그래프에 따르면 운전자와 승객은 머리와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일한 환경에서 큐큐는 차체의 구겨짐이나 충돌할 때 차량의 들림 정도가 훨씬 강했다.

운전석 문이 열렸고 보닛을 비롯해 엔진, 천정이 모두 찌그러져 탑승 공간으로 밀려들었으며, 차량의 골조가 휘어지면서 전복됐다. 그래프상에서 운전자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수준의 충격을 머리, 목, 어깨에 받았다.

최근에는 중국산 복제품, 또는 중국산 소재를 사용한 제품들의 안전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걱정이 현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올해 6월 미 식품의약국(FDA)은 미국에서만 수백만 개 이상이 팔려나간 중국산 치약에 경고 조치를 내린바 있다.

이 치약들에는 일반적인 감미료인 글리세린 대신 디에틸렌 글리콜(유독성 부동액으로 지난해 파나마에서 1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 있다)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가짜의 벽을 뛰어넘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얄밉게도 중국은 이렇게 널리 알려진 위험 사례에 자극받아 자신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 즉 정품보다 우수한 복제품을 만드는 단계로 도약할 필요성을 느낀 것.

1970년대의 일본, 1980년대의 한국이 그랬듯이 중국도 남을 베끼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만큼 품질이 우수해지는 순간 불법복제도 종식된다.

대니 프리드먼은 “선진 품질관리 기법이 중국에 정착된다면 불법 복제업자들은 이제까지 만들었던 것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은 지금 이러한 복제의 제6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점”이라고 말했다.

큐큐로 지명도와 기술력을 쌓은 체리 사는 제6 단계에 접어든 대표주자.
이 기업은 큐큐가 단종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3일 세계적인 완성차 메이커인 크라이슬러사와 합작생산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체리는 내년부터 크라이슬러를 통해 동유럽과 중남미에 자사 자동차의 판매를 개시하게 되며, 2009년부터는 서유럽과 북미지역 진출도 꿈꾸고 있다.

이번 거래는 체리가 엔지니어링과 설계를 서구기업에 맡겨 자동차의 품질을 대폭 개선할 계획을 세움으로서 성사됐다. 이들로부터 체리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기술 노하우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정부의 정책도 변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얼마 전 전국의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제를 제정했다. 이는 식품가격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결과적으로 중국 제조업체들의 생산비를 증가시켜 저 품질의 하급제품 생산을 그만두게 만들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중국 내에 부유층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소비자들의 품질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중국 업체들도 해외수출 기준에 적합한 제품개발에 적극 나서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불법 복제와 모방의 왕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설계와 공학의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차세대 아이클론

지금까지 중국의 복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복제는 중국의 전유물은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도 종종 복제와 모방을 훌륭한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폰만 해도 그렇다. 가장 유명세를 탄 모델이기는 하지만 메이주의 미니원은 여러 종류의 아이폰 모방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이폰 복제품은 크게 고급형과 저가형으로 나뉘는데, 고급형은 HTC사나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같은 유명 업체들이 생산한다. 이중 HTC는 올 가을경 ‘터치(Touch)’라는 명칭의 스마트폰을 일반에 선보일 예정이며, 썬의 경우 지난 5월 아이폰을 본 딴 1회용 터치스크린 방식의 휴대폰 시제품을 공개했다.

당시 썬의 스코트 맥닐리 회장는 아이폰과의 비교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참석자들에게 “우리의 휴대폰은 애플의 아이폰보다도 간단한 버전을 구현할 수 있는 썬 만의 기술이 있다”고 밝혔다.

아이폰의 복제품 숫자도 증가하고 있다.
메이주가 애플의 소송에 겁을 먹고 침묵하고는 있지만 여타업체들의 전진은 계속되고 있다. 아이폰 출시를 며칠 앞두고 중국에서는 ‘P168’이라는 멋진 신제품에 대한 온라인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동영상에는 동시에 두 개의 네트워크에서 작동하는 기능, 6자 동시통화 기능, 그리고 아이폰 발매 이전에 소비자들의 큰 불평을 샀던 배터리 문제도 외장형 배터리로 해결하는 등 아이폰에는 없는 기능이 추가돼 있었다. P168의 제조업체는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았지만 휴대폰은 실존했고 잘 작동됐다.

미니원도, P168도, 그리고 HTC의 제품도 아이폰의 후광이나 품질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시대에서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제품들은 아이폰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수백만 개나 더 많이 팔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소비자들은 이 복제품들을 원판으로 믿게 될 수도 있다.

비단 휴대전화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의약품, 식료품, 가전제품 등 모든 중국산 제품들이 복제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 모델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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