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새 정부에 대한 각계각층의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정부지출, 즉 예산의 확대 지원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들은 이들이 원하는 것에 영합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려고 하고, 그 결과 재정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그너의 법칙’입니다.
복지관련 지출이 대표적입니다. 이 같은 성격의 지출은 늘어나기는 쉬워도 일단 늘어난 것은 줄이기 어렵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복지관련 지출을 삭감한다는 것은 마치 벌집을 건드리는 것처럼 위험합니다. 자칫 정치적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손을 대려하지 않죠.
과학기술 예산도 이와 비슷한 속성이 있습니다. 만일 과학기술 예산을 줄이거나 배분의 공평성, 용도의 정확성, 성과와의 연계 등을 따지고 들면 당장 ‘과학기술 문외한’이라며 비난이 쏟아질 것입니다.
사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불만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부족이죠. 과학기술계의 주장을 옮기면 대략 이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경제 성장만을 앞세워 당장 실용화할 수 있는 응용과학과 기술개발에만 투자하고 기초과학은 소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첨단 과학기술도 결국은 기초과학에서의 발견을 토대로 한 것이다. 경제성을 앞세워 기초과학을 홀대하면 언제까지나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뒤쫓아 다닐 수밖에 없다.’ 맞는 말입니다.
만일 고등학생이 논술시험에서 쓴 것이라면. 실제 이는 모 학원에서 대입 논술용으로 만들어 놓은 모범답안입니다.
그럼 모 대학 주최의 세미나에서 나온 논문 내용을 보죠. ‘이윤 추구를 위한 상업적 연구는 응용 가능성이 적지만 학문적으로는 보다 유망한 연구를 몰아낼 수 있다.
즉 연구 주제나 연구의 우선순위가 시장원리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기초과학, 또는 시민이나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지향하는 대안적 연구 프로그램들은 사전에 배제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 수준에서 보면 이 말도 일리 있어 보입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가 과학기술 정책에 적용해 왔던 선택과 집중은 기조가 잘못된 것이다’, ‘조건부로 지원되는 연구비는 연구자의 창의성을 억누를 수 있다’, ‘과학기술에 효율이라는 메스를 가져다 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등등.
이 같은 주장들은 일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돈’을 더 풀어야 충족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소립자나 핵융합, 천문학 같은 거대과학은 ‘돈 먹는 하마’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원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결코 산타클로스가 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결국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들여야 하는데, 일정한 성과 없이 무조건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집단 이기주의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원천기술 투자확대, 융합 신산업 창출, 중소벤처산업 육성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앞으로 20~30년간 먹고 살려면 이 같은 신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지향하고자 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성이 느껴집니다.
과학기술계도 앞으로는 변화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벤처기업이 많이 나와야 하고, 발명도 팔아야 합니다.
‘성과 없는 연구도 필요하다’며 마냥 앉아만 있어도 연구비가 들어오던 목가적인 시절은 이제 끝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