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행복의 거리감을 메우며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사상 처음으로 2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실생활은 이 같은 지표와 무관해 보입니다.

소득이 늘었으면 그 만큼 씀씀이도 여유로워지고 저축도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살림살이는 오히려 쪼들리고 있으니 말이죠.

물론 자신과 관련된 개별적 요인을 보편적 현실로 인식하는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받았거나 아이들 학원비 때문에 등이 휘는 가정은 실질적인 소득 증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체감으로 느끼는 어려움은 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돌파는 환율 변동에 따른 착시현상임에 분명해 보이고,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 역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세계적 신용경색,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폭등 같은 외생변수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7.4.7 공약도 출발부터 삐끗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뿐만 아니라 최근의 정치, 사회문제를 보면 행복은 멀고 현실은 각박해 보입니다.

사실 행복과 마주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른 아침 이슬 머금은 잔디 위를 맨발로 달릴 때 행복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새로운 디자인의 옷이나 맛있는 음식, 또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 행복을 향유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의 종류는 참 다양하다는 얘기죠.

특히 독일의 학술저널리스트인 슈테판 클라인은 훈련을 통해 행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 체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습관적 염세주의에서 벗어나 가능한 많은 기쁨과 가능한 적은 싫증을 만들어 내라고 주문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행복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오고, 제대로 음미하기도 전에 사라집니다. 또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여건임에도 생각 여하에 따라 불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는 것은 영예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동메달을 딴 것 만큼 행복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3등을 한 선수는 메달을 획득했다는 사실 자체, 그래서 스포츠 연감에 기록될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등을 한 사람은 1등자리를 거의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가 단 몇 초, 아니 10분의 몇 초도 안 되는 순간 때문에 날려버렸다는 생각이 찰거머리처럼 마음속을 따라다닙니다.

이런 게 사람의 보편적 심리일까요. 사회심리학자 앨런 파두치는 간헐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행복의 순간은 기대치만 높이기 때문에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나쁜 경험을 많이 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의 비밀이다. 나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다. 그러다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삶이 매번 그렇게 가혹하기만 한 것은 아님을 확인하고 기뻐하게 된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로서는 파두치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군요.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는 자신에 대한 연민, 또는 떼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불행을 두려워해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다면 이는 긍정적인 것을 처음부터 봉쇄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죠. 현실과 행복에는 상당히 먼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이를 메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생일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