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인 습관이나 환경에 의한 것인가. 최근 스톡홀름 두뇌연구소의 연구팀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구분 짓는 요인은 뇌 구조와 신경계의 복잡한 역학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여성 취향의 게이는 일반 여성처럼 양측 반구의 크기가 비슷한 반면 남성 취향의 레즈비언은 일반 남성처럼 좌뇌보다 큰 우뇌를 가졌다는 것.
물론 동성애를 선천적이고 생리학적 현상으로 단정 짓기에는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반론도 있다. 여성 취향의 게이라고 해도 남성적인 성적 취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연구를 통해 여러 번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이상향이 다르듯 ‘내겐 너무 완벽한 당신’을 찾는 모든 과정에 있어 태초부터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동성애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
동성애자는 타고나는 것일까. 미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러브 앤 트러블’(2006)을 보면 여주인공 잭스(브리터니 머피)는 외간 남자와 한 집에 산다. 그의 룸메이트인 피터(매튜 리즈)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잭스를 잘 보듬어 주는 친구지만 동성애자다. 게이인 것.
잭스는 피터를 유난히 편하게 대한다. 피터 앞에서 속옷만 달랑 걸친 채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샤워를 하면서 그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피터는 반(半) 나신의 잭스에게 한마디 한다.
“넌 부끄럽지도 않아?” 잭스는 답한다. “뭐 어때. 그렇다고 네가 나랑 자고 싶은 것도 아니잖아.”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 짓는 요인에 대해 선천적이란 주장과 후천적인 영향이 크다는 의견은 지금도 결론 없이 충돌한다. 남자 동성애자인 A가 B라는 남자 이성애자(혹은 양성애자)를 좋아하는데, B는 C라는 여자를 좋아한다면 A를 질투심에 불타오르게 만드는 근거는 무엇일까.
남성 취향의 여성 동성애자(이하 레즈비언)는 남자 이성애자와 주먹다짐으로 맺은 우정을 지속할 수 있을까. 동성애의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성애자들과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면 이들은 하늘이 점지해 준 별도의 부류일까.
많은 학자들은 여성 취향의 게이(이하 게이)와 레즈비언이 일반 남녀 이성애자들과 다른 점을 밝히기 위해 다방면의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남녀로 구분된 성별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동성에 대한 이성적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생리학적 관점에서 찾아내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뇌 구조
최근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뇌 구조와 크기를 비교한 연구결과가 나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내 임상신경과학부 소속 스톡홀름 두뇌연구소 연구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게이의 좌우 뇌 반구는 일반 여성과 비슷한 크기였다. 반면 레즈비언은 일반 남성의 뇌처럼 우뇌 반구의 크기가 좌뇌 반구보다 컸다. 또한 좌뇌와 우뇌 반구를 잇는 신경세포가 게이와 일반 여성은 레즈비언과 일반 남성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띄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스톡홀름 두뇌연구소 연구팀은 90명의 남녀 성인 동성애자들의 뇌를 MRI 스캔 촬영을 통해 비교 분석했다. 연구팀은 대뇌 반구의 부피를 측정하고 뇌의 좌우 반구를 잇는 신경계의 연결기능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봤다.
그 결과 일반 남성의 우뇌는 624㎤로 좌뇌의 크기보다 12㎤ 더 컸다. 이와 달리 게이의 우뇌는 608㎤로 좌뇌와의 차이가 1㎤ 밖에 나지 않았다. 또한 일반 여성은 양측 뇌의 크기가 거의 일치한 반면 레즈비언의 경우 우뇌가 좌뇌보다 5㎤ 더 컸다.
다시 말해 게이는 일반 여성처럼 양측 반구의 크기가 비슷한 반면 레즈비언은 일반 남성처럼 좌뇌보다 큰 우뇌를 가졌다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남성의 우뇌가 좌뇌보다 큰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우뇌가 발달한 남성은 이성적 사고가 여성보다 뛰어난 반면 좌뇌와 우뇌의 크기가 비슷한 여성은 상대적으로 언어능력이 뛰어나고 감정에 호소하는 편으로 알려졌다. 여성은 또 뇌 신경계의 구조상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합해보면 게이는 일반 여성과 같이 언변이 일반 남성에 비해 능할 수 있고, 이성보다 감정에 충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레즈비언은 남성과 같은 비대칭적 뇌구조를 갖고 있어 일반 남성에 가까운 뇌신경 구조에 근거한 사고를 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동성애는 성장 이전에 이미 생성?
스톡홀름 두뇌연구소 연구팀은 여기에 두 가지를 더 제시한다. 뇌의 좌우 반구 사이를 잇는 신경섬유인 뇌량(corpus callosum)의 경우 게이가 일반 남성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두를 둘러싸고 있는 복숭아 모양의 편도체(amygdala)로 들어가는 혈액의 흐름은 게이와 여성이 서로 닮아 있다는 것.
편도체는 감정을 기억하거나 식별해 뇌신경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 보고서는 레즈비언의 편도체 모양이 일반 남성의 것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편도체와 뇌량에서 발견된 공통점이 중요한 이유는 두 부분 모두 뇌 신경구조에 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계의 전문가들이 ‘게이=일반 여성’, ‘레즈비언=일반 남성’의 등식을 성립시키는 근거는 미약했다. 두 그룹이 각각 이성으로 생각하는 상대방의 성적인 자극에 비슷하게 반응한다는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단지 성적 자극을 뛰어넘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구분 짓는 요인이 뇌 구조와 신경계의 복잡한 역학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제기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이는 무엇보다 동성을 사랑하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성향이 선천적인 뇌 구조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맥매스터 의대의 신경과학자 샌드라 위텔슨은 “뇌량이나 편도체는 사람이 성장하기 이전에 이미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동성애자가 이미 유전적으로 구별이 지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위텔슨은 “이번 연구는 동성애적 성향이 후천적인 습득이나 환경요인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주장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런던 대학의 카지 라먼 교수는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길 필요 없이 게이인 사람은 게이로 태어난 것”이라며 급진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선충류 암수의 성적 성향
그동안 동성애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는 꾸준히 있어 왔다. 동성애자의 신경계를 연구한 첫 사례는 지난 1991년 영국 신경과학자인 사이몬 러베이에 의해 이루어졌다. 게이와 일반 남성의 시상하부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처음 밝혀낸 것.
이후 학계는 이 같은 차이가 왜 나타나는지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 이전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을 대상으로 성적 성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다.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2007년 10월호에서 선충류의 신경계를 인위적으로 왜곡해 이것이 어떻게 태도(성적 성향)로 표출되는지 살펴본 사례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선충류의 유전자 조작으로 신경세포를 자극해 선충이 마치 반대의 성별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 선충류는 비가 온 후 흔히 볼 수 있는 지렁이와 같은 암수생물이다. 단 암컷 선충은 암컷이 수컷의 생식기도 갖고 있어 체내 수정이 가능한 자웅동체다.
선충류는 성적 취향이 뚜렷해 수컷 선충은 암컷에 끌리고, 암수 한 몸인 암컷끼리는 서로를 기피한다. 연구진은 암컷의 뇌신경에 해당하는 부분에 수컷 선충의 세포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삽입했다. 예상대로 암컷 선충이 수컷의 성적 성향을 보이며 같은 암컷에게 끌리는 모습을 보였다.
연구진은 “성적 취향은 남성 아니면 여성라는 이분법적 성별의 차이에서 온다기보다 뇌와 신경시스템의 내장된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사실 게이=일반 여성, 레즈비언=일반 남성의 등식은 다른 연구결과에서도 종종 드러난 바 있다.
2006년 5월 카롤린스카연구소의 연구진은 레즈비언이 특정 화학성분이나 합성물질에 대해 일반 여성과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밝혔다. 사람의 땀 성분이 들어간 물질과 여성의 소변에서 발견되는 성분이 담긴 합성물질로 실험했을 때 레즈비언은 일반 이성애자 남성과 비슷하게 반응했다는 것.
게이는 일반 여성과 같이 남성의 땀 냄새에 성적반응을 보였다. 이는 남성과 여성이 인간의 성적 유인 성분으로 겨드랑이 등에서 발산되는 페르몬에 성적으로 흥분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 연구진의 해석이다. 카롤린스카연구소 연구진의 발견은 동성애에 선천적인 발생 요인이 있다는 가설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사회 속 성적 소수자로 편견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이 될 수 있다.
태초부터 정해진 것은 없어
하지만 동성애를 생리학적인 현상으로 단정 짓기에는 아직 근거가 불충분하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자에서 발견되는 성적 성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의 에릭 빌레인 인간유전학 교수는 “게이라고 해도 남성적인 성적취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여러 번 입증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게이든 아니든 남성의 성을 가진 사람들은 여성에 비해 나이가 어린 파트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성 관계를 맺을 기질이 여성보다 많다”고 밝혔다.
빌레인 교수는 “따라서 게이의 뇌가 이성애자 여성과 비슷하다든지, 혹은 레즈비언의 뇌가 더 남성화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영국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제인 치젤스카는 카롤린스카연구소 연구진의 이번 발표에 대해 “성적 취향이 인간의 신경계에 다르게 내장된 구조 때문이라는 주장은 성(性)에 대한 구시대적 고정관념만 키우는 꼴”이라고 혹평했다.
치젤스카는 “남성성과 여성성 또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로 이분화하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의 시각이 틀에 박혀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그렇다면 양성애자는 어느 쪽에 속하는가”라며 “또한 게이는 ‘여자답기’ 때문에 방향 감각이 남성보다 떨어져 길을 헤매고 양성애자 남성은 여자와 사귀어야 ‘진정한 남성’으로 입증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결론적으로 동성애자를 구분 짓는 특징은 우리 몸의 어떤 한 부분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또한 동성애자는 그것이 생리학적인 차이건 성적코드의 문제이건 간에 이성애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이상형이 다르듯 ‘내겐 너무 완벽한 당신’을 찾는 모든 과정에 있어 태초부터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글_김승연 서울경제 기자 bloo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