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나는 미래의 스포츠 방송

미래의 스포츠 방송, 그리고 이와 연계된 게임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엔진소리에 귀청이 터질 것 같다. 바로 내 앞에 1번 차가 보인다. 1.4톤이 넘는 화끈한 쇳덩어리가 시야에 가득하다. 손을 내밀면 상대방 차량의 뒤 범퍼에 닿을 것 같다. 760마력,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나의 경주용차 시보레와 상대방 차 사이의 공간에는 늘씬한 슈퍼모델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까 말까할 정도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나는 상대방을 앞지를 아주 조그만 틈새를 발견했다. 온 힘을 다해 그 틈새로 파고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결승점까지의 전력질주 뿐. 눈앞에 체크무늬 깃발이 보인다. 내가 탄 8번차는 2017년도 데이토나 500 대회의 승자가 됐다. 나는 불과 몇 cm 차이로 유력한 우승 후보를 제치고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했다.

하지만 내가 탄 자동차는 실물이 아니라 디지털 렌더링된 시보레이며, 내 방 소파에 앉아 플레이스테이션5를 통해 실시간으로 경주를 펼친 것이다. TV에서는 방금 내가 플레이하면서 펼친 멋진 모습을 원하는 어떤 각도로도 보여 준다...’

물론 이것은 2017년의 모습이다. 하지만 실감나는 스포츠 방송, 그리고 이와 연계된 실제 같은 게임의 발전은 갈수록 빨라질 전망이다. 현재 이 같은 기술의 발전은 스포츠비전이라는 회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시카고에 있는 방송기술회사 스포츠비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스포츠 방송 기술을 여러 가지 발전시켜 왔다. 예를 들면 본루로 날아가는 커브볼의 비행 모습을 그래픽을 사용해 1cm 내외의 오차범위로 정확하게 보여준다. 또한 퍼스트-다운 라인을 디지털로 만든 마커를 사용해 원래 필드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 넣는다. 이런 것들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스포츠 방송 기술이 됐다.

스포츠비전은 1996년 창립됐다. 당시 스포츠비전의 엔지니어들은 화면상에서 하키 퍽을 빛나게 해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방송에서 추적하기 쉽도록 했다. 퍽 안에 적외선 방사체를 심은 덕택이었다.

이른바 ‘하키 원리주의자’들은 이 같은 기술을 싫어했다. 스포츠비전의 최고경영자인 행크 애덤스는 당시 자기 회사의 핵심 과학자 일부는 캐나다에 가면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 스포츠비전은 독립된 회사로서 필요한 기술혁신을 신속히 이루어 나갔다. 회사의 초기 기술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퍼스트-다운 라인 마커다. 노란색의 퍼스트-다운 라인 없이 미식축구 경기를 시청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상상하기 어렵게 됐다.

오늘날 스포츠비전은 스포츠 방송과 관련한 방송기술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1년에 3,000여건의 방송에 참여하고 있다. 그 중에는 미국 프로농구 리그인 NBA, 나스카 레이스, 골프 토너먼트 등도 있다.

경기장과 선수들에 대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한 스포츠비전은 시청자들이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선수의 시각으로 경기를 보게끔 한다.

또한 경기 안내서 뒤에 나온 통계 수치를 보여주는 대신 각 팀의 코칭스태프도 접하기 힘든 자료를 팬들에게 먼저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자동차 경주 방송의 경우 이 회사는 컴퓨터로 계산한 차량의 유체역학적 분석 자료에 가상의 공기 흐름을 결합시켜 한 차량이 발생시키는 공기의 흐름이 근처를 달리는 차량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보여준다. 공기의 흐름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이런 기술이야말로 시청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전달해 주는 스포츠비전 기술력의 정수다.

스포츠비전의 기술력은 축구 경기의 시청 방식도 바꾸어 놓고 있다. 방송 프로듀서들은 경기의 스틸 이미지를 얻은 후 시청자의 시각을 경기장 내의 어디에라도 위치시킬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우선 소프트웨어로 선수를 지우고 위치를 표시한 후 각도를 바꾼다. 그리고는 새로운 각도에 맞춰 선수의 사진을 조정한 후 다시 겹쳐 넣는다. 이 같은 공정은 약 5분 정도의 사진조작을 통해 이루어지며, 카메라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한다.

다른 스포츠에도 이 기술을 적용하려면 공정을 자동화해야 하지만 그에 따르는 난관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모든 선수에게 카메라를 하나씩 장착시켜 원격 카메라 영상 추적을 실시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NBA에서는 코치들을 위한 디지털 방식의 게임 재구성 기술을 스포츠비전에 주문 중이다.

스포츠비전의 과학자들은 쿼터백의 시각에서 본 패스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함으로서 쿼터백이 허술한 방어 진형을 보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시뮬레이션은 게임 제작에 쓰일 수도 있다. 스포츠비전의 엔지니어 켄 밀른즈는 “현장에서 모은 데이터와 비디오 정보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의 셋톱박스 성능은 게임 콘솔의 처리능력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셋톱박스의 성능이 개선된다면 자동차 게임 팬들은 자기만의 가상 자동차를 몰고 경기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팬들이 경기에 전혀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경기를 통해 게임의 즉석 시나리오를 만들 수도 있다.

야구 게임에도 비슷한 것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투수가 던지는 공을 게이머 타자가 닌텐도 위(Wii)를 사용해 쳐내는 실시간 게임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수준의 쌍방향성을 다른 게임에도 적용시키는 것은 어렵다.
팀플레이는 고도의 협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쿼터백이 무슨 수로 가상의 리시버에게 패스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밀른즈는 실제 경기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비디오 게임에 옮겨 담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렇게 되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의 동작은 실제 선수의 동작과 점점 유사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데이터 수집이 철저해질수록 가상 렌더링도 실감을 더해간다.
앞으로 10년 내에 거실에서 홀로 그래픽으로 게임을 즐기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스포츠 게임은 실제 스포츠 다음으로 인기 있는 놀이가 될 것이다. 물론 게임과 실제의 차이점을 분간해 낼 수 있다면 말이지만.

색상으로 차량 주변의 공기 흐름 묘사


스포츠비전은 나스카 또는 인디 카의 트랙 및 각 자동차에서 전송한 원격 측정 및 GPS 데이터를 결합시켜 경주 현황 이상의 정보를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스포츠비전은 컴퓨터로 계산한 유체역학과 차량의 위치 데이터를 사용해 차량의 항력계수 같은 중요하지만 보이지는 않는 물리적 요소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한다. 스포츠비전은 해당 지역의 기압 및 기타 자료를 가지고 색상이 들어간 가상 바람으로 차량 주변의 공기 흐름을 묘사한다.

이 때 속도 같은 부가 정보도 화면상에 나타난다. 지난해에는 약 10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바람을 잘 받은 차량은 1위를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받지 못하면 뒤집혀 화재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퍼스트-다운 라인

퍼스트-다운이란 미식축구에서 새로운 공격권을 말하며, 퍼스트-다운 라인은 새로운 공격 지점을 노란색으로 표시하는 가상의 선이다. 퍼스트-다운 라인을 만드는 과정은 게임 시작 전 카메라로 경기장을 촬영, 디지털 지도를 만든다.

경기 중 한 기술자가 라인을 가상의 디지털 지도 위에 위치시키면 다른 기술자는 기후와 경기장 조건에 맞춰 색 견본을 보정한다. 그러면 소프트웨어는 뚜렷한 노란색 선을 실시간으로 생성한다

올림픽 선수: 브라이언 셀, 30세, 미국 마라톤 선수

특징: 동반자(WING MEN)

육상경기는 고독한 스포츠 같지만 셀에게는 많은 동료가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는 핸슨스-브룩스 오리지널 디스턴스 프로젝트 그룹의 일원이다. 미시건 주에 있는 이 그룹은 최고의 육상선수들이 모여 함께 숙식하며 운동을 한다.

셀은 이렇게 회고한다. “대학 졸업 후 저는 줄곧 혼자서 훈련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늘어지는 게 느껴지더군요. 함께 훈련할 동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지난해 11월 그가 남자 올림픽 마라톤 선수권을 얻었을 때 그의 바로 뒤에서는 핸슨스-브룩스 오리지널 디스턴스 프로젝트 그룹의 선수 10여명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어떤 각도에서도 볼 수 있는 경기


스포츠비전은 자동으로 사진을 조작, 어떤 각도에서도 경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 같은 사진 조작은 자동차 경주 시청에서 가장 유효하다.

자동차에는 GPS를 달기 쉬울뿐더러 사람과는 달리 불규칙한 운동을 하는 팔다리가 없기 때문에 달리는 중에도 어떤 각도에서건 렌더링하기가 쉽다.
렌더링이란 2차원의 화상에 광원, 위치, 색상 등 외부 정보를 고려해 사실감을 불어넣어 3차원 화상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스포츠비전이 nascar.com에서 구현하는 자동차 경주에서는 팬들이 데일 언하트 2세의 운전석 시각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축구 경기에서는 선수의 팔다리가 불명확하게 나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각도를 바꿨을 때 선수가 사지절단 장애자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면 약간의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앞으로 5~10년이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