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nano)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다. 1 나노초(ns)는 10억분의 1초, 그리고 1 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m를 뜻한다. 다시 말해 100만분의 1을 뜻하는 마이크로를 넘어서는 극미세 가공기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나노기술은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극미세 세계에 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하고, DNA 구조를 이용한 동식물의 복제나 강철섬유 등 새로운 물질의 제조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나노기술은 일반 물리의 지배도 받지만 양자역학의 지배도 동시에 받는 세계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한마디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이너스페이스(Innerspace,1987)’를 보면 적혈구만한 크기의 잠수함이 등장한다. 사람의 몸에 투입된 이 잠수함은 인체 구석구석을 항해하며 암세포를 발견하고 치료한다.
이렇게 세포보다 더 작은 의학용 나노로봇이 등장한다면 우리 몸의 질병세포를 매우 효율적으로 격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노기술이 제시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먼 미래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미 나노기술을 적용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산화아연을 나노 단위로 작게 만들어 자외선을 차단하는 자외선 차단 화장품이 바로 그것. 산화아연은 물과 알코올에 녹지 않는 자외선 차단 성분으로 크기는 500nm 정도다. 내광성, 내건성, 내열성이 커서 햇볕이나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막을 형성한다.
또한 티타늄다이옥사이드라는 나노 물질을 첨가, 청소하지 않아도 스스로 깨끗해지는 유리창도 나왔다. 이산화티탄이라고도 불리는 티타늄다이옥사이드는 입자의 크기가 30~50nm로 가시광선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같은 제품이라도 ‘나노’라는 이름을 붙이면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나노기술은 한계에 다다른 현재 기술을 대체할 강력한 차세대 기술이다. 생활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든 나노기술은 인류에게 장미 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최근 뉴욕 타임스는 유전자변형 기술과 함께 나노기술을 지구를 파멸로 몰고 갈 기술로 지목했다. 나노기술에 어떤 위험이 있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경고를 했을까.
■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재앙(?)
나노기술은 기본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요소를 갖고 있다.
가령 나노기술로 나노 단위의 로봇, 즉 나노봇(nanobot)을 만들었다고 하자. 나노봇은 특정한 기능을 하도록 만든 분자 크기의 로봇이다. 전자회로를 가진 로봇이 아니라 우리 몸 안의 효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처음 제작할 때 움직임을 예상해서 설계하지만 일단 몸 안에 들어가면 나로봇 개체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는 없다.
실제 나노세계는 일반 물리의 지배도 받지만 양자역학의 지배도 동시에 받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나노봇은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들어가며, 세포 속으로 손쉽게 침투할 수 있다. 만약 세포 속으로 들어간 나노봇이 예상과 다르게 세포를 변형시켜 세포의 정상적인 성장과 분열 현상을 방해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정상세포를 암으로 바꾸는 치명적인 결과가 생길지도 모른다.
나노봇은 너무 작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을 때 제거할 방법도 없다. 나노봇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미국의 에릭 드렉슬러 박사도 나노기술의 미래를 암울하게 내다봤다.
그는 자신의 저서 ‘창조의 엔진’에서 나노기계가 자기복제를 통해 생물을 죽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즉 자기복제를 하는 나노봇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마치 꽃가루처럼 바람을 타고 이동하면서 주위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먹어치우면 지구 생태계를 불과 며칠 만에 회색 먼지로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나노입자 위험성에 대한 경고
나노봇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나노입자는 이미 시판됐으며, 나노입자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사람의 몸은 피부가 있어 해로운 물질이 몸 안에 침투하는 것을 막지만 나노입자는 너무 작아서 피부를 그냥 통과한다. 심지어 세포막도 뚫고 세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몸에 해로운 물질을 나노 수준으로 만들면 치명적이라는 뜻이다.
나노로봇이 통제를 벗어나 자기복제를 하며 주위에 있는 것들을 먹어 치우면 불과 며칠만에 지구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
미국 댈러스의 환경독극물 학자인 에바 오베르도스터 박사는 나노입자가 동물의 뇌를 손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4년 그녀는 흑연으로 만드는 풀러렌 나노입자를 녹인 물에 민물농어를 풀어 놓았다. 그 결과 민물농어 9마리에서 뇌 손상이 크게 나타났는데, 이는 일반 민물농어에 비해 무려 17배나 높은 뇌 손상률이다.
미국 환경보호국(EPA) 산하 국립보건환경영향연구소(NHEERL)의 벨리나 베로네시 박사팀 역시 나노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녀는 선크림과 화장품에 널리 이용되는 산화티타늄(TiO2) 나노입자가 신경세포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환경과학기술지에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생쥐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면역세포는 외부에서 이물질이 들어오면 활성산소를 분비해 태워버린다. 하지만 산화티타늄 나노입자에 1시간 이상 노출되면 활성산소가 과다 분비돼 주변의 신경세포에 손상을 입힌다.
■ 안전하고 정교한 통제가 관건
나노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다. 무엇보다 나노기술은 연구가 시작되지 얼마 되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나노기술이 정보통신, 생명과학, 의료, 환경 등 광범위한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노분자가 환경에 노출된 뒤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나노기술이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지에 대해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기술은 무엇보다 안전하고 정교한 통제가 가능할 때만 인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글_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