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롱비치의 일몰 직후. 존 다비리는 목제 도크 끝에 서서 물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흰색 스니커즈와 폴로 줄무늬 셔츠를 입은 그는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장관, 즉 소프트볼 크기 만한 수백 마리의 문 해파리가 떼 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보러 온 보트 선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녹색 레이저가 물속을 비추면서 다비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물속에서는 그의 대학원생 한 명이 주문 제작한 고화질 비디오카메라와 물 입자 발광 레이저(water-particle-illuminating laser)를 가지고 해파리 한 마리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었다.
대학원생은 자주 물 위로 나와 생체역학 교수의 지시를 받은 다음 또 다른 해파리의 움직임을 기록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 기록 내용은 소프트웨어에 입력돼 해파리가 와류고리라고 불리는 도넛 모양의 물 흐름을 만들어내면서 적은 힘으로도 앞으로 나가는 원리를 밝혀줄 것이다.
이미 다비리의 발견 내용은 데이터 수집용 부이, 군용 잠수함, 심지어는 해안의 풍차에도 쓰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군의 차세대 잠수함도 해파리와 같이 부드러운 소재를 써서 만든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비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하는 것은 자연물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와류고리처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설계 특성을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생물은 자연 속에서 한계에 맞춰 진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엔지니어에게 그런 한계는 없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해파리와 비슷한 물건으로 시작합니다만 나중에는 철과 프로펠러를 이용해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인간의 장점을 이용해서 해파리와는 닮지 않았지만 그 원리를 응용한 더욱 우수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다비리는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버스를 타고 프린스턴 대학으로 왔다. 나이지리아 이민자(아버지는 수학교사, 어머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아들인 다비리는 항상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생물은 자연 속에서 한계에 맞춰 진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엔지니어에게 한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3학년 때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유명한 하계 펠로우십 제안을 받았다. 다비리는 이미 포드 자동차의 인턴십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교수의 만류로 포기하고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그 곳에서 그는 수족관 물탱크 앞에 진을 치고 살았다. 이것은 다비리가 꿈꾸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10학년 이후로 생물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고 해양생물에 관심도 없었다. 톨레도에서 자라면서 수영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여름 프로젝트를 하면서 해파리의 움직임을 참조해 좌심실의 혈류 이동을 추적, 앞으로 생길 문제를 예보하는 논문까지 썼다. 이 덕분에 그는 생체역학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이듬해 다비리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대학원생으로 들어왔다. 그는 4년 만에 박사학위를 땄고 프린스턴, 일리노이 대학으로부터 교수직 제안도 받았다. 그의 나이 불과 24세 때였다.
그 이후로 다비리는 연구실과 바다를 오가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실제 세계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레이저 이미징 체계 같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다음은 해파리의 움직임을 3차원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개발할 것이다.
다비리는 앞으로 자연물에서 영감을 얻은 기술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그는 “생물학, 공학, 그리고 기술 간의 연계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현실에 찌든 시각에서 벗어나 생물체를 정밀한 기계로 본다면 747기나 해파리나 그 움직임에 관한 공식은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