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탱크와 해저터널 보호하는 '얼음과 물'

해저 LNG 저장탱크나 해저터널 등 해저시설물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물이다. 그런데 이 같은 물을 녹으면 물이 되는 얼음과 물 그 자체로 막는다면 모순일까. 아니다.

현재 해저시설물 차폐기술로 연구되고 있는 아이스 링이나 워터 커튼은 바로 이 같은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다. 아이스 링 기술은 해저에 설치된 LNG 저장탱크 외벽에 두꺼운 얼음층을 형성하도록 해 저장탱크를 보호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워터 커튼 기술은 석유류의 경우 물과의 비중 차이로 섞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저장탱크의 내부 압력이 외부의 수압과 동일할 경우 저장 공간은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다는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물을 이용해 물을 막는 방법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인 셈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저시설물 차폐기술연구단이 개발한 아이스 링(Ice Ring) 기술은 해저에 설치되는 LNG 저장탱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 기술의 핵심은 저장탱크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수압을 견디는 것, 그리고 영하 162℃의 극저온 상태로 액화된 천연가스를 보다 안전하게 저장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부의 수압으로부터 저장탱크를 보호하는 것은 고비용의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지하 암반의 경우 영하 80℃ 수준의 저온은 견뎌내지만 영하 162℃의 극저온은 견뎌내기 어렵다.

이 같은 극저온이 암반에 전달될 경우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주변 암반층은 열 수축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같은 열 수축은 대규모 균열로 이어지게 된다.
그동안 대부분의 LNG 저장탱크는 지상에 건설돼 왔다.

국내에서도 일부 LPG 저장탱크만이 지하 또는 반(半)지하 형태로 건설돼 왔다. LPG 저장탱크의 경우 6만 톤을 기준으로 이보다 큰 것은 지상, 이보다 작은 것은 지하에 구축하는 것이 저렴하다. 하지만 운영비의 경우 지하 저장탱크가 지상 저장탱크보다 3분 1 정도 싸다.

아이스 링 기술은 해저에 LNG 저장탱크를 구축함으로써 공간의 절약과 함께 보다 우수한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LNG 저장탱크는 항만에 인접한 곳에 건설되기 때문에 해저 공간의 활용은 보다 효율적이다.

아이스 링 기술의 원리

아이스 링 기술의 원리는 단순하다. 해저에 설치된 LNG 저장탱크 외벽에 두꺼운 얼음층을 형성하도록 함으로써 저장탱크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통상 해저시설물의 경우 바닷물이 암반의 틈새로 흘러들게 되고, 이렇게 유입된 물의 압력으로 저장탱크가 부담해야하는 수압은 커지게 된다.

이를 피하고 싶다면 저장탱크가 들어서 있는 암반층을 완벽하게 방수처리 해야 한다. 하지만 방수처리를 해도 암반층에 가해지는 수압이 저장탱크의 외벽에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에 견고성을 유지하기 위한 추가적 비용이 소요된다.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이스 링 기술은 저장탱크가 설치되는 주변부에 물을 채워 얼리는 형태다.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저장탱크를 공처럼 감싼 형태로 물이 채워지고, 저장탱크에 영하 162℃의 극저온 상태로 액화된 천연가스가 주입되면 저장탱크 외벽의 물은 얼게 된다. 저장탱크의 재질은 일정 수준의 견고성을 유지한 채 내부의 극저온을 차단하면서도 외부에 얼음을 얼릴 정도가 돼야 한다.

저장탱크를 공처럼 감싼 얼음층은 단단한 암반처럼 저장탱크를 보호하게 되고, 암반층으로부터 전달되는 수압을 견디게 된다. 특히 이 기술은 방수처리보다 적은 비용으로 건설이 가능하며,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원리상으로는 단순하지만 이를 실제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얼음층이 완전히 형성된 다음에는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수압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된다. 문제는 액화된 천연가스를 주입할 경우 영하 162℃에 달하는 저장탱크 내부의 온도가 암반층에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장탱크의 제일 안쪽을 요철 형태의 주름진 스테인리스 강철로 구성하고, 여기에 폴리에틸렌 폼 형태의 단열재를 감싼 뒤 마지막으로 콘크리트로 외벽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하면 저장탱크 내부는 영하 162℃의 극저온이지만 콘크리트 외벽을 통해 암반층에 전달되는 온도는 영하 30℃ 수준에 그치게 된다.

또한 액화된 천연가스를 부분적으로 주입해 저장탱크 주변이 동결될 수 있는 온도까지 내린 후 수압조절을 통해 가장 먼 밑바닥부터 얼음이 얼도록 한다. 그리고 수위를 높여가며 얼리게 된다. 이렇게 하면 저장탱크와 근접한 암반층은 건조된 상태로 동결되고, 일정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은 완전한 얼음층이 된다.

이 같은 아이스 링 기술은 저장탱크에 균열이 발생할 경우에도 얼음층이 2차 방호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급격한 가스 누출을 억제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해저시설물 차폐기술연구단장인 신희순 박사는 “아이스 링 기술은 국내에서 독자 개발한 것으로 곧장 건설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면서 “현재 지질자원연구원 내에 설치된 소형 연구시설을 통해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이 기술은 SK건설을 통해 경남 통영에 건설되는 LNG 비축기지에 적용될 예정이다.


이이제이의 기술, 워터 커튼

워터 커튼 역시 해저시설물 차폐기술연구단이 연구 중인 기술이다. 원천기술은 프랑스의 지오스톡(Geo-Stock)이 보유하고 있지만 연구단은 육상에서 사용된 기술을 해저용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석유류의 지하 저장탱크에 적용되는 워터 커튼 기술은 석유류가 비중 차이로 인해 물과 섞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저장탱크 내부의 압력이 외부의 수압과 동일하다면 저장 공간이 안전하다는 원리에 기초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유류의 저장에는 LNG와 같이 높은 압력이 필요하지 않고, 지하 암반의 통상 온도인 15℃ 내외에서 저장할 수 있다. 워터 커튼 기술은 해저 저장 공간의 암반층에 최소한의 보강시설만 한 뒤 그대로 석유류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외부의 지하수를 그대로 유입되도록 한다.

유입되는 지하수는 물과 기름의 비중 차이로 저장 공간의 아래쪽으로 모이고, 석유류는 물 위에 떠 있는 상태가 만들어진다.

지하수의 유입으로 저장 공간에는 일정한 압력이 형성되고, 이 압력을 통해 저장 공간의 외벽에는 계속적으로 유입되는 물로 이뤄진 차단벽이 형성된다. 이때 저장탱크 중심부에 있는 수압조절용 파이프를 통해 지하수를 뽑아냄으로써 일정한 수압 유지 및 석유 저장량을 조절하게 된다. 즉 물로 물을 차단하는 기술인 셈이다.

이 같은 산업용 시설물과 함께 최근 관심이 부각되는 분야가 바로 해저터널이다. 해저시설물 차폐기술연구단은 지난달 노르웨이와 일본 등 해저터널 건설 경험이 있는 나라의 과학자와 기술자를 초청, ‘해저터널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의 주제는 지난해부터 논의가 제기됐던 한·중·일 해저터널 건설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여부.

과학자들은 한·중·일 해저터널의 경우 차량이 직접 달리는 도로 형태보다는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한 유로터널처럼 기차가 달리도록 하고 차량은 기차에 실어 수송하는 형태가 적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한·중 터널의 경우 평택과 중국 웨이하이(威海)를 연결하는 374km의 노선을 비롯해 인천~웨이하이(362km), 태안~웨이하이(320km) 등의 노선이 논의되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은 부산 또는 거제도에서 시작되는 국내 노선, 그리고 쓰시마 섬과 가라쓰를 연결하는 일본 노선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길이는 약 230km. 양국의 국경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 구간은 30km 내외고, 나머지 대부분은 일본 노선이다.

한·중·일 해저터널 모두 바다를 건너는 국가 간 장거리 해저터널이기 때문에 건설 용이성 및 안전성 확보가 필요하다.

또한 이를 위해 각 노선에 약 6개 내외의 인공 섬을 건설해야 한다. 이들 인공 섬은 건설장비 투입 등의 필요성은 물론 해저터널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임시 피난처 등으로 활용된다.

현재 한·중 터널의 경우 서해의 최대 수심이 80m에 불과해 건설 측면에서는 최대 수심이 220m에 달하는 한·일 해저터널보다 용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수심이 깊은 한·일 해저터널은 보다 강한 수압을 견디는 구조가 필요하다.


해저터널 위한 요소기술

해저시설물 차폐기술연구단은 지난 2005년부터 해저터널 건설을 위한 요소기술을 연구해 왔다. 지금은 해저 탄성파 탐사를 통해 최적의 입지를 찾아내는 해저 지반조사 기술을 비롯해 해저터널의 방수 및 배수 설계기술, 그리고 바닷물의 유입이 우려되는 지반을 보강하는 그라우팅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해저터널은 육상터널과 달리 막대한 바닷물의 수압을 견디는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건설기술뿐만 아니라 수압을 견디는 암반층이 있는 노선을 찾아내는 기술도 필요하다. 또한 건설단계에서도 실제 크기의 터널을 뚫기 전에 수평으로 지층을 시추하는 선진 천공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세이칸 해저터널을 뚫으면서 수평으로 250m까지 가능한 선진 천공기술 확보했지만 국내에서는 약 30m 내외에 불과하다.

방수 및 배수 설계기술은 해저터널의 암반 벽과 터널 외벽 사이에 발생하는 바닷물 유입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기술이다. 방수와 배수가 이뤄지지 않으면 암반으로부터 전달되는 압력이 터널의 외벽에 그대로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라우팅 기술은 암반 사이의 틈으로 바닷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틈으로 미세한 시멘트 형태의 보강재를 주입, 지반구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 기술의 핵심은 최적의 압력으로 보강재를 주입하는 것. 만일 주입 압력이 높을 경우 암반의 틈이 더욱 벌어질 수 있고, 반대로 압력이 낮을 경우에는 보강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해저터널이 건설된 사례가 없다. 유일하게 건설된 것은 부산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 노선의 3.7km 구간이 침매터널 방식으로 건설됐을 뿐이다. 침매터널은 육상에서 터널 형태로 제작된 180m 길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바다에 침수시킨 뒤 이를 연결해 전체 터널을 완공하는 방식이다.

강재윤기자 hama9806@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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