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발이 먼저냐, 스프가 먼저냐

재미있는 과학상식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말처럼 우리 생활에 자주 회자되는 것도 없다. 그만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 라면을 끓일 때 면발을 먼저 넣느냐, 스프를 먼저 넣느냐 하는 문제도 이 같은 범주에서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라면은 이 두 가지를 넣는 순서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여기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한다. 우선 맛있게 끓인 라면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보자. 우선 면발이 불지 않고, 적절히 익어야 한 다. 그리고 면발에 스프의 맛이 적당히 배고, 국물도 너무 짜거나 싱겁지 않 아야 한다. 이 중에서 면발의 익은 정도는 온도 및 조리시간과 연관이 있다. 면발은 끓는 물에 익히는데, 모든 물질의 끓는점은 다르다.

순수한 물은 100℃에서 끓는다. 하지만 불순물이 용해돼 있을 경우 100℃보다 훨씬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 따라서 물에 무언가 다른 물질이 많이 녹아 있을수록 더 높은 온도에서 끓고, 이때 면발을 넣으면 빨리 익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스프를 먼저 넣으면 녹은 양에 비례해 끓는점을 올릴 수 있고, 이때 면발을 넣으면 불기 전에 조금이라도 먼저 익힐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처럼 용액 의 농도에 따라 끓는점이 상승하는 것을 끓는점 오름 현상이라고 하며, 이 같은 현상은 다른 곳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갖가지 국물 역시 조미료 등이 녹아있는 물이다. 그렇다면 끓는 국물은 끓는 물보다 높은 온도일 것이다. 따라서 끓는 국에 화상을 입었을 때는 물에 데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이번에는 바나나를 생각해보자. 바나나를 먹으면 변비에 걸리기 쉽다는 말은 맞는 말일까. 변비란 배변 활동의 장애를 말한다. 종류도 여러 가지인데, 이 경우 언급되는 변비란 장기의 기능성 문제가 아닌 장 내용물의 특성과 관련된 얘기다. 바나나를 먹으면 변비에 걸리기 쉽다는 것은 타닌 성분 때문에 나온 것이다.

타닌은 주로 떫은맛이 나는 과일에 들어 있으며, 장 내용물의 지방질과 결합해 변을 굳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감 또는 바나나를 먹으면 변비에 걸리기 쉽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타닌은 물 흡수력이 강해서 설사를 멈추는 효과가 있지만 철분과 쉽게 결합하고 배설돼 빈혈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타닌은 과실의 성숙도에 따라 함량이 달라진다. 잘 익은 감을 먹으면 떫은 맛이 거의 없다. 바나나도 마찬가지다. 과일이 익어가면서 그 안에 들어있던 각종 효소들이 서 로 작용하고, 타닌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수용성에서 불용성으로 변하며 함량이 떨어진다. 따라서 푸른빛이 남은 바나나보다는 노랗게 숙성시 킨 바나나를 먹으면 타닌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속설은 어디 까지나 변의 굳기만을 변비와 직결시켜서 나온 얘기다. 과일에는 타닌 이외 에도 여러 요소들이 들어 있으며, 그 중 하나가 식이섬유다. 변비와 미용에 좋다며 한창 광고하던 음료수들이 식이섬유 성분을 내세 우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노랗게 잘 익은 바나나는 효소의 작용에 의해 수 용성 식물 섬유인 펙틴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펙틴은 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해 오히려 변비와 설사에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식이섬유는 바나나 껍질의 안쪽, 즉 실 같은 부분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잘 익은 바나나를 가려먹는다면 거꾸로 변비를 예방할 수도 있다. 단 숙성이 너무 오래 진행된 경우 펙틴이 줄어들며 과일이 무르게 변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섭취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설탕보다 물엿이 건강에 좋다는 말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당분이 전혀 없는 음식이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얼핏 단맛을 느낄 수 없는 음식에도 조리과정에서 약간의 설탕 정도는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당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포도당으로 분해돼 혈액으로 흡수되고 에너지로 쓰인다. 하지만 당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문제가 된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식품의 경우 여러 가지 식품첨가물이 들어가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설탕이다. 설탕은 사탕수수, 사탕무 등의 식물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한동안 천연물로 알려 졌다. 하지만 설탕은 정제과정에서 단백질, 미네랄 등 대부분의 성분을 빼고 단맛만 부각시키기 때문에 인공감미료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설탕의 남용은 당분을 과잉 공급하는 원인이 되고, 이것이 누적되면 당뇨와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 이때문에 황설탕이나 흑설탕 등이 더 낫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결국 정제설탕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물엿의 주재료는 옥수수다. 옥수수 내에 있는 전분을 정제해 추출하고, 이것을 효소 가수분해해 물엿을 제조 한다.

물엿이 혈당을 높이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고 나서부터 물엿의 용도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미국에서는 물엿이 비만을 유발하고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지나친 당분의 섭취를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 진정으로 건강을 생각하는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짧은 상식 하나. 사과는 먹는 시간에 따라 아침에는 금, 점심에는 은, 저녁에는 동이라는데, 그 이유는 뭘까. 우리 몸의 신진대사가 오후보다는 오전에 활발하기 때문에 저녁에 과일의 당분을 섭취할 경우 쉽게 중성지방으로 저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는 섬유소가 많아서 저 녁에 먹으면 장이 소화하는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소화하는 시간이 비교적 많은 아침에 먹는 것이 좋은 것이다. 또한 사과의 산도는 위액의 산도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돼 위가 나쁜 사람이 먹어도 좋다.

음식은 살아가는데 필수 불가결하지만 종 류가 워낙 다양해 잘못된 인식이나 근거 없는 속설 또한 적지 않은 편이다. 또한 가공식품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유해물질이 알려지기도 하고, 그에 따라 소비자들의 혼란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럴때일수록 과학적인 근거를 따져보는 것이 건강하고 즐거운 식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글_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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